
국내 대형병원의 의약품 납품이 소수 도매상에 집중돼 사실상 독점 구조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8개 대형병원은 1개 도매상이 의약품 공급의 90% 이상을 독점하고 있었는데, 이 같은 구조는 리베이트로 이어질 소지가 커, 보건당국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에 공급된 의약품 대부분(98.1%)은 도매상을 통해 공급됐다. 전국에 3462개의 도매상이 운영되고 있는데, 이 가운데 8%(288개)가 상급종합병원 전체의 공급을 맡고 있는 소수 집중 구조다.
소수 도매상이 공급을 독점하는 형태는 주로 국공립이 아닌 사립 상급종합병원에서 발생하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의 의약품 도매상 공급현황을 국공립과 민간으로 구분해서 살펴본 결과, 지난 3년간 국공립 상급종합병원 가운데 90% 이상을 한 도매상이 독점한 사례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반면 사립 상급종합병원에서는 2022년 7곳, 2023년 5곳, 2024년 8곳으로 해마다 발생했다.
독점 도매상이 병원 한 곳에 독점 공급하는 의약품 규모만 수백억원에 달했다. A상급종합병원은 지난해 13개 의약품 도매상으로부터 총 781억원의 의약품을 공급받았는데, 이중 1개 도매상이 전체 공급액의 97.92%인 765억원을 공급했다. 같은 해 B상급종합병원도 11개 의약품 도매상으로부터 총 814억원의 의약품 공급을 받았는데, 이중 1개 도매상이 전체 공급액의 97.57%인 795억원을 공급했다.
소수 도매상의 독점 공급은 병원 측에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통로로 악용돼 온 만큼 구조적 문제로 지적된다. 도매상이 대형병원의 납품권을 사실상 독점하게 되면, 거래선이 고정돼 경쟁이 사라진다. 이 과정에서 병원 관계자에게 금품이나 배당금 등을 건네 납품권을 유지하는 리베이트형 독점이 형성된다.
지난 8월 검찰은 한 도매상이 유령법인을 세워 병원 이사장 가족에게 배당금 명목으로 수십억원을 건네는 등 허위 급여·입찰 담합을 통해 의약품 납품권을 확보한 사건을 적발했는데, 리베이트 규모가 50억원에 달했다.
현행 약사법으로는 이 같은 독점 규모를 규제하기 어렵다. 약사법 제47조 ‘의약품등의 판매질서’에서는 의약품 도매상과 의료기관 대표가 2촌 이내의 친족 또는 50%초과 지분소유인 특수한 관계일 경우에만 의약품 판매를 제한할 뿐 공급과 관련해선 제재가 어렵다.
김선민 의원은 “대형병원이 1개의 의약품 도매상과 사실상 독점적 공급을 받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사실상 독점적 공급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리베이트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보건복지부는 대형병원과 의약품도매상 간 사실상 독점적인 공급 행태에 대해 조사하고, 적정 비율로 공급돼 리베이트가 발생하지 않도록 약사법을 개정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