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내 빅20 기업 영업익 87% 줄 때, 주한美기업 93% 늘었다

2025-02-27

지난 15일 서울 중구 명동 애플스토어. 국내 애플 매장 중 최대 규모인 이곳에서 요즘 인기 제품은 혼합현실(MR) 헤드셋 ‘비전 프로’다. 이날 오후 1시쯤 매장을 찾은 한 남성은 “오늘 체험 예약이 다 찼다”는 직원의 말에 발걸음을 돌렸다. 매장 직원은 “가장 용량이 낮은 256GB 모델 가격이 499만원인데, 재고가 없을 정도로 인기”라고 말했다.

애플코리아는 한국에서 매년 7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다. 하지만 세금은 ‘찔끔’ 낸다. 법인세는 매출이 아닌 이익에 부과하는데, 애플은 제품을 만드는 데 든 원가(매출원가)를 높게 잡는 식으로 이익을 낮추고 세금을 회피한다는 의혹을 받는다. 최근엔 ‘고무줄 매출원가’ 의혹도 일었다. 2021~2022년 95%대였던 애플 매출원가는 조세 회피라는 비판을 받은 뒤 2023년 88.7%로 소폭 줄었다. 법인세가 1년 새 503억→2006억원으로 뛴 배경이다. 그러나 지난해 다시 매출원가율이 92.2%로 올랐다. 법인세는 825억원으로 줄었다. 여론 눈치를 보며 입맛대로 세금을 낸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처럼 대표 주한미국기업들이 한국에서 막대한 수익을 벌어가면서 세금 납부·고용 창출·기부 등엔 인색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한미국기업 ‘빅 20’*의 2023년 국내 매출은 42조61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10.7% 늘었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26일 종가 기준 코스피 상위 20대 기업(개별기준·금융사 제외)의 2023년 매출은 506조1570억원이었다. 전년 대비 5.4% 줄었다. 이 기간 코스피 20대 기업의 영업이익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부진 영향으로 87.7% 급감(56조7344억원→7조9억 원)했지만, 주한미국기업 빅 20의 영업이익은 93% 급증했다.

*주한미국 기업 빅 20 : MS·애플·넷플릭스·구글·IBM·오라클·델·테슬라·GM·쓰리엠·오티스엘리베이터·시스코시스템즈·나이키·맥도날드·P&G·필립모리스·화이자·MSD·라이나생명·AIG손해보험

글로벌 빅테크의 영업이익률은 통상 20~30%다. 하지만 국내 법인의 영업이익률은 대부분 한 자릿수다. 2023년 기준 구글코리아 6.4%, 한국마이크로소프트 4.7%,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 1.5% 등이다. 국내 수익을 해외로 이전해 조세 회피한다는 의심을 사는 이유다.

방식은 다양하다. 구글코리아는 이른바 ‘매출 빼돌리기’ 의혹을 받는다. 한국 수익의 대부분(앱 마켓 결제)은 싱가포르에 있는 ‘구글아시아퍼시픽’에 귀속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성민(가천대 경영학)·강형구(한양대 경영학) 교수 연구에 따르면 구글코리아의 2023년 실제 매출은 12조1350억원으로 추정되는데, 이 경우 법인세는 최대 5180억원에 달한다. 감사보고서(매출 3653억원, 법인세 155억원)와 각각 33배 이상 차이가 난다. 같은 기간 매출 9조6706억원을 기록한 네이버는 법인세 4964억원을 냈다. 전성민 교수는 “기업 간 형평성 문제가 있고, 국내 기업 입장에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분석했다.

로열티 납부 명목으로 본사로 이익을 넘기는 '꼼수'도 있다. 한국맥도날드는 2021~2023년 3년 연속 적자를 냈다. 미국 본사와 계약에 따라 매년 매출의 5%를 로열티로 꼬박꼬박 지급한 영향이 크다. 신규 점포를 열 때마다 4만5000달러도 내야 한다. 한국맥도날드는 2023년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반면 로열티 등으로 발생한 지급수수료는 685억원에 달한다.

주한미국기업의 고용 창출 효과도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 구인·구직 플랫폼 ‘워크넷’에 기업들이 공시한 자료에 따르면, 대표 주한미국기업 18곳의 지난해 총근로자 수는 2만3019명(단시간 근로자 제외)으로 나타났다. 전년 대비 1.3% 감소했다. 기업당 평균 약 1278명을 고용한 셈이다. 총근로자 수가 가장 많은 건 한국맥도날드(1만6487명)지만, 단시간 근로자가 89%에 달한다.

반면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양질의 일자리를 대거 창출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직접 고용 중인 직원 수는 약 14만 명으로 추산된다. 트럼프 1기 출범 이후 8년간 간접고용 효과까지 더하면 총 83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근로자 연평균 급여는 10만4000달러다. 전체 외국계 기업 평균(8만7000달러)보다 19.5% 높다.

한국은 2023~2024년 미국의 최대 그린필드(생산시설 설립) 투자국이다. 삼성전자는 2023년 당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오스틴 공장 건설로 인한 경제효과를 268억 달러(약 38조5000억원)로 추산했다. 오스틴 생산법인이 지방 정부에 내는 세금만 연간 2억4560만 달러(3540억원)다. 2023년 주한미국기업 20곳이 낸 총 법인세(5573억원)의 64% 수준이다.

이렇다보니 미국 기업이 국내에서 과실만 따 먹는 ‘체리피커’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쓰리엠·구글코리아·한국마이크로소프트의 2023년 기부금은 수천만 원 수준이다. 매출에 비해 미미하다. 20곳 중 8곳은 감사보고서에 기부금 내역을 아예 공개하지 않았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기업들은 소비재 상품이 아니면 한국에서 투자나 홍보에 잘 나서지 않는 편”이라며 “반면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투자와 고용 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꼬집었다.

재계 관계자는 “미 기업의 한국 법인은 아시아 거점이 아니라, 매출·수익을 집계하고 관리하는 수준”이라며 “이들에겐 한국이 적극적인 투자나 사회공헌 없이도 돈 벌 수 있는 ‘머니 머신(money machine)’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미국 기업이 국내에서 납세, 고용, 기부에 인색한 상황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세 협상 테이블에 올릴 만하다”고 강조했다.

주한미국기업은 국내법에 따라 세금을 성실히 낸다고 해명했다. 애플코리아는 ‘애플 개발자 아카데미’ 개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공헌을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맥도날드 측은 “매출 증가에도 적자인 이유는 원부자재 가격 상승에도 지속적인 국내 고객 중심 활동과 다양한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구글 측은 “법인소득세 대부분을 본국에서 납부하는 건 구글 뿐만이 아니다”라며 “각국 정부가 공정한 과세를 위한 새 제도에 합의해 명확한 규칙을 제공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쿠팡은 미국 기업이지만 투자와 고용 창출에 적극적이다. 현재까지 국내에 6조원 넘게 투자했다. 2026년까지 추가로 3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직고용 중인 근로자 수는 8만 명 이상이다.

김기환·최선을·나상현·노유림 기자 choi.sun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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