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일기] 피로

2025-05-22

가끔 아이들과 아내가 자고 나면, 어두워진 밤의 길을 걸어 나와 불 꺼진 공방에 도착해 또 다시 문을 열고 책상 위에 잠깐 털썩 앉아본다. 아직 깨지 않는 잠을 날리기 위해 5일 전 직접 볶은 원두로 커피를 내려 마시며, 잠깐 앉아 있다. 그 고요한 시간 틈에 문득문득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올해 40이라는 나이를 맞이하게 되는 나는 이제 ‘젊다’고 말하기 모호한 나이, 한창 일할 나이이긴 하지만 동시에 여러 책임감이 가장 무거운 시기다. 20대엔 잘 사용하지 않는 ‘피곤’이라는 단어를 지금은 늘상 나도 모르게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인식하더라도 그 단어가 내뱉어지는 내 입을 닫을 수 없음을 안다.

아침에 일어나 아내와 함께 아이들 학교, 어린이집에 보낼 준비를 하고, 공방에 출근하고,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나오면 픽업하고, 다시 공방에 와서 일하고, 저녁엔 밀린 집안일과 함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다시 매일 그런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숨 한번 돌릴 틈 없이 지낸다. 숨 한 번 쉬려고 내가 잠시 멈추는 순간, 우리 가족의 삶이 흔들릴까 두려워진다. 불안정한 수입과 하루하루 다르게 올라가는 물가는 서로 반비례를 이루는 현실에 잠깐의 쉼은 사치처럼 느껴지게 한다.

20대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내 통장에 돈이 없더라도, 내일이 정해져 있지 않아 불안하더라도, 그래도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나만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이 먹고 자고 배우는 걸 책임져야 한다. 내가 잠깐 쉰다고 세상을 기다려주거나 배려해주지 않는다. 그 불안감과 걱정이 날 쉼 없이 움직이게 만든다.

20대엔 나만을 위한 시간이 얼마만큼 귀하고 소중한지 몰랐다. 지금은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는 것이 사치라고만 생각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누가 당장 내 등 뒤에서 나를 밀어제치는 것은 아니지만 늘 뭔가 모를 불안감이 날 쫓아온다.

그래서 내 입에선 늘 나오는 단어가 ‘피곤하다’이다. 40이라는 나이는 어떤 영화에서의 주인공처럼 한순간 인생이 바뀌는 그러한 마술 같은 삶이 없는 것이 현실임을 인지하게 되는 순간의 명함인 듯하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개인적인 욕심을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눌러야 하는 나이이다.

가끔은 카페에 혼자 앉아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부러워하게 된다. 영화관에 가서 제대로 영화를 보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게 현실임을 알게 되었다. 20대에 당연하듯이 누렸던 것들이 현시점의 나에겐 당연하지 않다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 난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아 참, 아직 공방이고 밀린 일이 눈앞에 있다. 잠깐의 사치를 글을 매월 적어야 하는 시스템의 핑계로 누려봤다. 피곤함을 달고 사는 현 40대의 나에게 다시금 스스로 토닥여본다. 그럼에도 다 마신 커피잔을 내려놓고 다시 밀린 일을 한다. 잡생각을 잠시 어디 구석에다 밀어 넣고, 묵묵히 일한다.

류민수 펜을 든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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