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문학의 독자들에게 공포라는 감정은 장르의 전유물일까? 호러물의 인기는 여전히 높지만, 기후변화와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한 사회변화, 즉 보이지 않는 미래를 마주하고 있는 한명의 생명체로서 우리의 내면을 지배하는 정서는 불안과 공포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장르를 초월하여 온갖 서사물에 기이하고 으스스한 정조가 들어가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불안과 공포의 드라이아이스가 깔리지 않는 소설은 어쩐지 덜 리얼하다고 할까. 어느 순간부터 공포는 현대인의 핵심 감정 중 하나가 되었다.

이 분야의 원조 격인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을 새롭게 펼쳐보았다. 포(사진)는 두 종류의 장르를 만들어낸 천재인데, 하나는 추리물이고 다른 하나는 공포물이다. 그가 만든 최초의 탐정, 오귀스트 뒤팽은 훗날 코넌 도일이 셜록 홈스를 만들 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탐정은 도시의 부산물이다. 익명의, 임시의 세계 속에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지력으로 풀어나가는 탐정은 불안과 공포를 추론으로 몰아내는 현대판 영웅일 것이다. 그러나 이성의 불꽃이 꺼진 자리에 자라나는 우울한 몽상과 마음의 깊은 곳에 자리한 원초적인 공포는 우리의 내면에서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
‘붉은 죽음의 가면극’에는 전염병을 피해 성으로 피신한 왕과 귀족이 등장한다. 밖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죽어 나가지만 이곳은 미녀와 포도주와 갖은 도락이 펼쳐지고 있다. 왕의 취향에 맞춰 동쪽의 푸른 방에서 시작하여 초록, 노랑, 주황, 하양, 보라, 마지막으로 검은 방, 이렇게 일곱 개의 실내 공간이 있다. 방마다 색깔을 맞춘 창문과 태피스트리가 걸려있는데 마지막 방에만 검은 방에 진한 핏빛 창문이 걸려있다. 가장무도회가 열린 날, 전염병 환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정체불명의 무도자를 쫓아 독자는 왕과 함께 이 방들을 질주한다. 강박과 불안을 다양한 기교를 통해 보여주는 포의 어두운 낭만주의는 인간의 마음 안쪽을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처럼 다채롭고 찬란하게 보여준다.
김성중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