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이후 조기대선’ 유사한데
8년 前 대남 선동 행보와 대비
관영매체 관련 보도조차 없어
‘따로 살자’ 선언 후 무관심 일관
전문가 “북풍 영향력 없다 판단”
현직 대통령의 탄핵과 이로 인한 장미 대선까지 한국에서 8년 전과 유사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지만 북한의 반응은 큰 차이가 난다. 8년 전 보수 재집권을 막아야 한다고 외치던 북한은 없고 의도적인 침묵만 포착된다. ‘적대적 두 국가’ 기조 등으로 고조된 남북 단절 분위기와 계엄 국면에서 북한이 언급되면서 존재감이 부각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14일까지 북한은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등 관영매체를 통해 한국의 대선 관련 보도를 한 건도 하지 않았다. 통일부 당국자도 “대선에 대한 북한 측 언급이나 특이동향은 없다”고 확인했다. 이는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5월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북한이 대남 선동에 열을 올린 것과 대비된다.
당시 노동신문은 “박근혜 탄핵으로 파멸의 운명에 처한 괴뢰 패거리는 지금 흩어진 보수 세력을 규합해 재집권 야망을 실현해 보려고 피를 물고 날뛰고 있다”며 “괴뢰 보수패당의 재집권을 절대로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선거가 열리면 북한은 메시지 도발 등으로 국내 갈등을 부추겨 영향을 끼쳤는데, 최근에는 이런 분위기가 사라지는 추세다.
가장 큰 이유는 2023년 말 북한 당국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면서 한국에 무관심 정책으로 일관하는 기조에 있다고 분석된다. “남북이 따로 살자”는 선언 이후 2024년 한 해 동안 북한은 각종 단절 조치를 취했다. 과거 북한이 대남 선전에 활용한 매체들 대부분이 폐기되거나 일시적으로 운영을 중단한 상태라는 점은 이러한 기조 변화가 굳어지고 있는 정황으로 해석된다.
이에 더해 지난해 말 ‘12·3 비상계엄 사태’ 때 북한과의 연관성이 비중 있게 등장하자 북한이 한국 정치에 개입하려는 행보는 최대한 자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계엄 이후 국내에서는 윤석열정부가 평양 무인기 침투, 쓰레기 풍선 부양 원점 타격 등으로 북한과 군사충돌을 유도한 뒤 이를 빌미로 비상계엄을 선포하려 했다는 ‘북풍 공작’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박 전 대통령 때는 탄핵 과정을 내부에 신속하게 전달하며 체제 선동에 활용했던 북한은 윤 전 대통령 파면 소식은 외신을 인용해 건조하게 보도할 뿐 평가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통일학연구원장)는 한국 대선에 대한 북한의 침묵에 대해 “북한 입장에서 결코 나쁘지 않은 상황이 펼쳐지고 있고, 여기에 혹시라도 자신들이 개입하고 있다는 인상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측면”이라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가장 강경한 대북 정책을 한·미·일 협력으로 추진한 눈엣가시 같던 윤 정부가 이제 끝났기 때문에 일정 부분 북한이 바라는 대로 됐다”며 “계엄이나 탄핵 때도 제3자적 입장만 밝힌 것은 이런 상황에 굳이 위험 부담을 얹지 않으려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또 “한국에서 북한에 대한 여론이 점점 나빠지면서 어차피 북풍으로 미칠 수 있는 영향이 없다는 판단도 있었을 것”이라며 “북한에 대한 국내 지지 세력을 부추길 여지가 굉장히 줄어들었고, 효과보다 비용이 크다는 결론을 내린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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