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속 시간 벌기 끝 '비용 치를 차례'"…삼성전자 위기는 그 시작

2024-10-29

“내년부터 미중 갈등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이득을 보는 측면이 사라지고 치러야 할 비용이 더 커질 겁니다.”

최근 실적 부진에 직면한 삼성전자가 겪는 위기를 두고 우리 나라 대표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비단 삼성전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기업 전반의 문제라는 시각이 나왔다. 그간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갈등을 이용해 중국의 추격을 따돌릴 시간을 벌었던 우리나라로서는 이 유효기간이 사실상 끝났다는 진단이다.

추격에 밀어내기까지…중국산 초토화

29일 서울 광화문 달개비 콘퍼런스 하우스에서 진행된 내년도 한국 경제를 글로벌 산업·정치·금융 지형도의 흐름에서 짚는 ‘2025 한국경제 대전망(21세기 북스 펴냄)’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근 서울대 경제학 교수는 “그간 우리나라 산업이 미중 갈등으로 인해 미국이 중국의 추격을 견제해주고 시간을 벌어 이득을 봤다면 내년부터는 그 효과는 모두 소진되고 비용이 점점 커진다”며 “중국의 추격을 저지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삼성전자의 경우) D램도 쫓기기 시작하는 데다 비메모리도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특히 중국의 내수 부진으로 인해 쌓인 재고로 중국이 일종의 ‘밀어내기’ 정책의 대상을 한국 시장으로 삼으면서 국내 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제조업이 실력은 좋지만 실력 발휘하기에 대외 사정이 좋지 않은 편”이라며 “중국에서 쏟아지는 제품에 대해서도 덤핑 관세를 취하거나 환경 규제 등을 통한 방어를 하고 있지 않은데 정부가 적극적으로 역할에 나서지 않으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08년 설립된 사단 법인 경제추격연구소는 이근 서울대 경제학 교수를 중심으로 50여명의 경제 전문가가 모여 2017년부터 ‘한국 경제 대전망’을 망라하는 책을 9회째 내고 있다. 이번 전망에는 반도체 경기 회복과 자동차 수출의 지속 여부를 비롯해 소비회복 및 내수 부진 탈출 여부, 미국의 정치 경제 변화에 따른 글로벌 지형 변화 등이 내년 경제 전망을 좌우하는 요소로 꼽혔다. 이들은 매년 다음 해의 경제 키워드를 내놓는데 2025년의 경우 ‘동상이몽에 빠진 세계 각국, 동분서주해야 하는 한국’으로 꼽았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가 양분되는 상황이 끝나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유럽, 아시아 관계 없이 모두 보호 무역 정책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현태 서울대 국제학과 교수는 “지정학적 위험과 정치적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나라의 길 찾는 게 과제”라며 “인플레 문제가 다시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집값 따라 줏대 없는 대출 정책… 부동산 빈부 격차 심화

부동산 시장의 경우 대출을 억제해 가계 부채 상승을 방어하고 있지만 이 역시 임시변통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 국면에 접어들 경우 내수 진작보다는 가계 부채가 급증하는 역효과가 더 클 수도 있다는 것이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 교수는 “가계 대출은 서울에서 늘지만 집 계약은 경기권에서 늘어난다”며 “지방과 서울은 물론이고 서울과 수도권 안에서도 양극화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짚었다. 허 교수에 따르면 대출을 억제하는 조치로 부동산 정책 방향을 선회하면 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는 이들만 집을 구매하고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동진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대출 총량 규제외에도 허브를 통한 특별 대출이 늘어난 게 걱정”이라며 “미시적, 정책적으로 추진 방향이 바뀌는 것보다는 일관성 있게 대출 정책이 유지돼야 금리 인하도 효과를 보고 실물 경제도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당선 시 … 금리 인하 방향도 원점으로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 자체가 현실화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있어 가장 큰 변수로 꼽히는 것은 내달 진행되는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다. 이날도 행사 시작 전부터 모인 십여명의 교수들은 미국 대선 이야기를 주 화제로 올리며 트럼프의 지지율이 소폭 앞서고 있다는 것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근 교수는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강력한 관세 정책을 시행할 것이고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은 심화되고 달러 환율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환율이 높아지면 금리를 내리기 힘든 상황이라 내수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한은에서 금리 인하를 정책적 도구로 사용하지 못할 가능성도 높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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