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한·미 협상 결과를 브리핑하면서 “공정한 내용”이 없고 “우리가 하고 싶어서 이렇게 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주무장관의 이런 언급에도 불구, 대세는 국익을 지켰다는 상찬이다. 이 사달을 초래한 원흉 미국에 화가 나지만, 매판 세력 국민의힘에 행여 공격의 빌미를 줄까 걱정하는 시민들의 마음에 필자도 공감한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엔 한·미 양해각서의 내용이 너무 비극적이다. 진정으로 제4기 민주정부의 성공을 위하는 길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지면에 비해 양해각서의 문제점이 많아 현금흐름 사례 분석으로 확인되는 일부 사항만 짚는다.
양해각서 제15항에 따르면 미국이 결정해 한국 재정 자금이 집행된 투자 사업으로부터 매년 ‘자유현금흐름’(‘현금흐름’)이 수령되고 일정한 우선순위에 따라 분배가 이루어진다. 선순위는 미국 연방정부와 주정부에 납부할 약 25% 세율의 법인세다. 후순위로 ‘간주배분액’이 분배된다. 간주배분액은 부록 A의 ‘정의’에 따라 이자와 원금의 합이다. 투자 존속 기간에 걸쳐 간주배분액을 전액 지급받으면 원리금이 정상 회수된다. 미국과 한국에 매년 간주배분액이 각각 전액 분배될 때까지는 양국 몫이 5 대 5이다. 원금은 투자 존속 기간 동안 매년 균등 분할 상환된다. 이자는 원금 잔액에 소정의 ‘간주이자율’을 곱해 구한다.
만약 양국 모두 간주배분액을 분배받고도 남는 잉여 현금이 있다면 해당 연도에 미국 9, 한국 1의 비율로 마저 분배된다. 일종의 ‘캐시 스윕’이다. 다만 필자의 계산으로는 9 대 1의 분배 규칙이 실제 적용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정작 문제는 그에 앞서 간주배분액이라도 정상 회수될 수 있느냐 여부다.
예를 들어 1년차 연말에 200억달러가 투자되고 2년차부터 6년차까지 5년간 매 연말에 현금흐름을 수취한다고 하자. 간주이자율이 5%라면 간주배분액은 2년차부터 6년차까지 50억, 48억, 46억, 44억, 42억달러가 된다. 이 경우 한국이 원리금을 정상 회수하려면 현금흐름이 2년차부터 6년차까지 100억, 96억, 92억, 88억, 84억달러 이상 발생해야 한다. 그래야 제15항에 따라 이를 5 대 5로 나눠 양국에 매년 간주배분액이 각각 전액 분배될 수 있어서다. 그런데 현금흐름이 이 정도로 발생하려면 투자 사업의 수익률은 법인세를 낸 뒤에도 복리로 무려 38% 이상이어야 한다. 간주이자율에 비해 허황된 수치다. 문제는 막상 세후 복리 수익률 38%가 안 되면 원리금 정상 회수도 안 된다는 사실이다. 양해각서의 함정은 양국에 동일 금액이 분배되는 간주배분액에 원금이 포함되는 점에 있다. 이는 한국의 투자 원리금 정상 회수 가능성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양해각서 제9항에 따르면 한국은 투자 금액을 미국 측 요구대로 납입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 경우 수익 배분 규칙이 조정되어 한국과 미국은 간주배분액 대신에 ‘수정배분액’, 즉 원금만을 분배받는다. 이자를 포기해야 하는 셈이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한테서 투자받지 못한 미조달 금액조차 남김없이 챙길 수 있는 별도의 장치가 있다. 그것이 ‘캐치업’ 금액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200억달러 투자를 결정했는데 한국이 1년차 연말에 180억달러만 납입했다고 하자. 수정배분액은 투자 존속 기간 5년간 매년 36억달러일 수 있다. 만약 현금흐름이 2년차부터 4년차까지 82억, 80억, 74억달러라면 양국이 수정배분액을 매년 36억달러씩 분배받고도 잉여 현금이 생긴다. 이 경우 미국은 2년차부터 4년차까지 연말에 잉여 현금 10억, 8억, 2억달러를 캐치업 금액으로 가져가 미조달 금액 20억달러를 전액 수취할 수 있다. 3년간 한국은 108억달러를, 돈 한 푼 안 낸 미국은 128억달러를 분배받는 것이다.
한·미 양해각서와 미·일 양해각서를 비교해보면 두 문서는 틀이 같고 기실 대체로 ‘복붙’에 가깝다. 이번 한·미 합의에 대해 미국이 일본과 협상을 거치면서 한국과의 협상 내용까지 미리 설계를 마쳤고 미·일 합의의 종속적 틀 안에 한국을 포섭한 결과라고 진단하는 이유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한국 경제는 미·일 연합의 산업·통상 체계 안으로 더욱 강하게 흡수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이번 양해각서로 그 성격의 일단이 드러난 한·미·일 협력 체계란, 미국이 한국의 재정을 조공으로 바칠 것을 강요하고 본전 회수마저 좌절시키는 수탈 구조를 담은 체계다. 그 길이 과연 진정 민주정부가 성공하는 길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