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돈내산 ‘무도런’ 후기, “지쳤나요? 아니요” 내 발로 찾은 ‘행쇼’

2025-05-26

“지금 지쳤나요?” “아니요.”

2015년 4월4일 방송된 ‘무한도전’ 422회의 한 장면. ‘식스맨’을 뽑는 과정에서 밤 늦은 촬영을 하는 듯한 지원자 홍진경에게 유재석이 묻고 답한 장면이다.

2025년 5월25일 10㎞ 마라톤 도중 서울 여의도 인근 도로에 나부끼던 그 깃발을 보고 하마터면 “예”라고 할 뻔했다. 아니 열 번도 더 “예”라고 하고 싶었다. 하나의 ‘밈(Meme)’으로도 참가자들과 소통이 가능한 ‘무한도전’, 그 20년의 뜨거운 역사가 서울 여의도에서 한번 더 뜨겁게 용솟음쳤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무한도전’을 위해 MBC의 콘텐츠 스튜디오 MOST 2.6.7과 쿠팡플레이가 손을 잡고 마라톤대회 ‘무한도전Run’(이하 무도런)을 열었다. ‘무한도전’의 시그니처 의상인 붉은색 쫄쫄이를 연상하는 유니폼을 입은 참가자들은 25일 새벽부터 여의도를 가득 메우며 프로그램의 구호 “무한~ 도전!”을 외쳤다. 한때 ‘무도키즈’였던 기자 역시 이 대열에 빠질 수 없었다. 길었던 온라인 웨이팅, 긴 기다림을 거쳐 굿즈를 수령한 ‘내돈내산’으로 직접 열기를 체험했다.

‘무도런’은 다른 마라톤 이벤트에 비해 고가인 9만9000원의 참가비가 필요했지만, 경쟁은 치열했다. 2분 만에 초고속 매진사례가 떴다. 평소에 러닝은 한다고 했지만, 야외 10㎞는 처음이었던 기자는 헬스장 러닝머신의 거리를 10㎞로 갑자기 비정상적으로 늘리며 갖은 허벅지, 무릎, 종아리 통증의 시련을 겪었다. 막상 대회 날이 되자 1시간 30분으로 상정된 완주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인지의 두려움이 엄습했다.

오전 6시45분 여의도공원 인근에 도착했다. 집을 나올 때는 다소 창피할 수 있었을 ‘쫄쫄이 의상’은 여의도공원에 들어서자 강력한 연대의 상징이 된다. 저마다 형형색색의 치장을 하고 “무한도전!”을 외쳤다. 긴 줄을 서 가방을 보관함에 맡긴 다음 출발선으로 이동했다. A그룹부터 F그룹까지 사전에 신청한 시간대에 맞춰 출발하고 M그룹은 자유롭게 참여했다.

코스는 여의도공원에서 마포대교 방향으로 공원을 반시계방향으로 한 번 돈 다음 국회의사당 옆을 거쳐 여의도를 둘러 서강대교를 넘어오는 길이다. 실내 훈련으로 단련한 기자의 구간 계획은 야외 특유의 맞바람과 오르막이 오가는 경사로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레이스 중간 전진, 황광희, 조세호, 남창희 등의 응원과 함께 레이스를 뛰는 정준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출발을 독려하는 하하와 현장 생중계에 합류한 박명수의 모습 또한 반갑다.

서강대교에 올라서자 5㎞ 지점이 보였다. 사전에 계획했던대로 에너지젤 하나를 털어넣었다. 하지만 숨은 이미 계획과는 딴판으로 턱에 차고 있었다. 서강대교를 돌아 나오기 전 6㎞ 지점에서 뛰는 일을 멈추고 걷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도로 주변의 현수막에 눈이 가기 시작한다. “지금 지쳤나요? 아니요” “심장은… 잘 터지지 않아…” “안 죽는다! 일어나!” 등 ‘무한도전’의 명대사들이다.

7㎞ 이후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악전고투를 이어갔다. 8㎞ 언저리를 통과할 즈음 지하도를 지나는데 한 명이 “무한~”을 외치면 나머지가 “도전!”을 따라 했다. 20년이 된 ‘국민 예능’에서나 자아낼법한 광경이다. 결국 그렇게 ‘피니시(Finish)’ 라인이 보이고 걸어서 완주하긴 싫어 마지막 힘을 쥐어짰다.

도착하고 인생 첫 마라톤 완주메달을 받았다. 바나나와 소보루빵, 물과 음료는 덤이다. 참가자들은 가쁜 숨을 내쉬고 각자의 메달을 들고 행사장 여기저기서 인증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여의도공원 광장 곳곳에는 ‘조정특집’의 로잉머신, ‘꼬리잡기 특집’의 전화부스, ‘명수는 12살’의 딱지치기 등 ‘무한도전’의 향수가 넘치는 체험형 프로그램들이 즐비했다.

오전 10시 반이 넘어 대부분의 참가자가 행사장으로 돌아오자 ‘무한도전’ 멤버들을 비롯해 코요태, 지누션, 스윗소로우 등이 참여하는 공연이 이어진다. 박명수는 ‘DJ PARK’으로 변신해 분위기를 띄우고, 하하의 생목 열창도 오랜만에 볼 수 있었다.

‘무한도전’은 2005년 첫 방송 이후 당대를 대표하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2018년 3월31일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 지 7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무도키즈’들은 ‘무도’를 그리워하고 프로그램의 부활을 기대했다. 그들의 열망은 2025년 5월25일 1만명은 훌쩍 넘어 보이는 여의공원에서의 인파로, 그리고 그들의 함성 그리고 눈빛으로 발산되고 있었다.

안양에서 온 40대 부부 조진영·정지철씨는 가족이 함께 참여해 남편 정지철씨만 완주해 메달을 받았다. 그는 “와이프가 ‘무한도전’의 찐팬이라 저도 모르게 신청을 해놨더라”며 웃었다.

아내 조씨는 ‘무한도전’에 대해 “저의 20~30대를 함께 한 동료이자 동지였다. 지금도 설거지를 할 때는 틀어놓고 없으면 허전하다. 여전히 살아있는 나의 친구 같다”면서 “여기있는 연예인들을 좋아했다기보다는 30년을 함께 한 ‘친구’ 같은 느낌이 있다”며 울컥하는 감정을 표현했다.

경남 양산에서 온 직장인 신민섭씨 역시 아내와 아들 등 가족들과 함께 이날 행사장을 찾았다. “새벽에 양산에서 연차를 내고 올라왔다”고 말한 신씨는 “마라톤을 한다고 했을 때 설렜고, 꼭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무한도전’에 대해 “원래 매주 항상 같이 있던, 일상 속에 함께 있던 프로그램”이라며 “끝났지만 ‘짤(짤방·짤림방지)’도 보고 쿠팡플레이를 구독 중이라 다시보기도 보고 있다”고 웃었다.

수원에서 온 41세 안태범씨는 박명수의 분장 캐릭터로 유명한 ‘소년명수’ 차림으로 행사장의 주목을 받았다. 주최 측의 ‘코스프레 이벤트’에서 수상한 그는 홍콩 왕복 항공권을 손에 넣는 행운도 얻었다.

“‘소년명수’를 너무 좋아해 깔깔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 기억을 되살리고 싶어 분장을 했다”고 말한 안씨는 “마라톤의 소식을 듣자마자 ‘무한도전’이 부활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뭉클했다. ‘무한도전’은 제 젊음과 항상 함께했던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무도런’은 참가자들의 성원으로 부산을 차기 개최지로 결정하고, 또 한 번의 레이스를 준비했다. 20주년을 맞아 더욱 뜨거워지는 ‘무도키즈’들의 함성은 전국을 울릴 기세다. ‘무도’는 이제 없지만, 마라톤과 공연에서 거침없이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무도키즈’들의 함성으로 여전히 우리의 가슴 속에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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