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 후 8년 가까운 기간 동안 한 번도 방한하지 않았다. 서방 주요국 정상으로는 이례적이다. 한국을 찾은 프랑스 정상은 2015년 11월 당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마지막이다. 이후 2016년 6월 박근혜, 2018년 10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각각 국빈으로 프랑스를 방문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 2023년 한 해 동안 두 번이나 프랑스에 가서 마크롱과 회담을 했다. 그런데도 답방이 성사되지 않고 있으니 ‘외교적 결례’라는 지적이 나올 법도 하다.
따가운 시선에 프랑스 정부도 부담을 느낀 것일까. 지난해 9월 한국을 방문한 에마뉘엘 본 프랑스 대통령실 외교보좌관은 국내 취재진과 만나 “2025년 중 마크롱 대통령의 방한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프랑스는 한국을 인도태평양 지역의 중요한 파트너로 여긴다”며 “혼란과 위기가 가득한 지금의 세계에서 양국의 협력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교가에선 마크롱이 한국에 온다면 그 시점은 올 하반기가 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변수가 돌출했다. 느닷없는 12·3 비상계엄 사태로 국제사회, 특히 자유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한국의 국격이 바닥까지 추락한 것이다. 계엄을 선포한 윤 대통령이 국회 탄핵소추를 당해 직무가 정지되며 한국은 당분간 ‘정상 외교가 불가능한 나라’가 되었다. 정국 혼란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일각에선 ‘연내 마크롱 방한은 물 건너갔다’는 비관론까지 제기되니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마크롱이 그제 한국의 설날을 맞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한국어로 “건강과 번영, 행복이 가득한 을사년을 기원한다”고 인사의 글을 올렸다. 한국이 어서 정치적 안정을 되찾길 바란다는 말처럼 들린다. 탄핵 정국의 와중에 외국 정상의 방한 일정을 둘러싼 협의가 중단된 나라가 어디 프랑스 하나뿐이겠는가. 우리 정상의 해외 순방 추진도 협상 개시와 동시에 제동이 걸린 사례가 부지기수일 것이다. 수출 주도형 경제 구조를 가진 한국에 외교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국정 공백이 하루빨리 해소돼 프랑스 등 여러 우방국과의 정상 외교가 복원되길 고대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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