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용 한국문학번역원장
문화적 맥락 이해하는 번역가 양성 과제
작가 황석영·조남주·박상영·정보라 등
해외출간 지원… 부커상 후보작도 늘어
‘산실’ 번역아카데미 非학위제로 운영
인재 육성 발목… 대학원 전환 역점 추진
서울국제작가축제 확대… 예산 증액 절실
전수용(71)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역대 번역원 원장 중 가장 행복하면서도 부담스러울 법도 하다. 지난해 8월 9대 번역원장으로 취임한 지 두 달여 만에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뉴스가 발단이었다. 스웨덴 한림원이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55) 작가를 선정한 것이다. 123년 역사의 노벨문학상을 아시아 여성이 받은 건 처음일 정도로 한국을 넘어 아시아의 경사였다. 우리 국민 대다수가 오랜만에 뿌듯함을 느끼며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특히 지금까지 한강 작가의 책 76종이 28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는 것을 지원해 한강과 그의 작품에 대한 세계적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 번역원 식구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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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2001년 설립된 한국문학번역원은 한국문학 작품의 번역·출판 지원과 전문 번역가 양성 등을 통해 한국문학 해외 진출과 교류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 당시 전 원장에게도 축하 전화가 빗발친 이유다. 우리 문학을 전 세계인이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하는 번역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번역원의 역할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그 어느때보다 커졌다. 그 덕에 지난해 말 국회에서 문학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돼 숙원 사업이던 한국문학번역대학원대학교가 들어설 길도 열렸다.
전 원장으로선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번역원의 위상과 역량을 더 끌어올려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 셈이다.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한국문학번역원에서 만난 전 원장은 “번역대학원대학을 세워 유능한 번역가를 더 많이 길러내고, 한국문학을 보다 체계적으로 해외에 소개할 적기라고 생각한다”며 우리 문학이 세계 문학으로 도약하도록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잡은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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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 수상을 계기로 번역원의 지원사업이 큰 관심을 받았다.
“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출판된 책이 지난해 말 기준 약 2200종에 이른다. 과거 5년(2019∼2023년)간 한국문학 해외 누적 판매 부수는 약 195만부에 달했다. 2021년 조사 때부터 5개년 누적 판매 부수가 157만부, 185만부, 195만부로 3년 연속 늘었다. 한강 작가는 2023년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메디치상을 탔는데, 프랑스판이 그 해에만 1만6000부가 팔렸다. 한강 작가뿐 아니라 번역원 지원을 받은 황석영, 조남주, 박상영, 정보라 작가도 국제 무대에서 각광받고 있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황보름) 등 ‘힐링 소설’, ‘아몬드’(손원평) 등 영 어덜트(YA) 문학도 강세다.”
번역원이 국내 작가 중 가장 많이 지원한 작가는 한강이다. 그동안 한강의 책 76종을 28개 언어로 번역하는 데 8억5000만원, 세계적 문학 행사나 도서전시회에 한강 작가를 파견하는 데 7000만원 등 모두 합쳐 10억원가량을 지원했다.
―현 시점 한국문학 번역의 가장 큰 과제는.
“유능한 번역가들을 더 많이 길러내는 것이다. 번역원 번역아카데미에서 강의하는 달시 파켓이 영화 ‘기생충’(2019)에서 ‘짜파구리’를 ‘ramdong(ramen+udong·라멘우동)’으로 번역한 것처럼, 문화적인 벽을 넘어 이쪽과 저쪽의 상응하는 요소를 찾아내는 자질이 중요하다. 문화적 콘텍스트를 이해하는 번역가를 육성하는 게 핵심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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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아카데미가 번역가 육성 역할을 해왔다.
“2년 과정인 번역아카데미에 현재 74명이 재학 중이다. 세종학당이나 각국에서 한국학 프로그램을 수료해 한국어를 잘하는 원어민들을 선발해 전문 문학번역가로 성장시키고 있다. 번역아카데미 입학 경쟁률은 3대 1∼5 대1 정도다. 7개 언어권(영어, 불어, 독어, 서어, 노어, 중어, 일어)으로 운영하는데 지금 재학생 국적은 21개국으로 다양하다. 수료생들의 번역서 출간 건수가 지난해 65건에 달할 만큼 큰 활약을 하고 있다. 수료생이자 전직 아카데미 교수인 안톤 허는 2022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의 ‘저주토끼’를 번역했다. 지난해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는 아카데미 사제지간인 김소라, 배영재 번역가가 공동 작업했다.”
―번역아카데미를 대학원대학으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는.
“현재 아카데미 정규과정 신입생을 매년 30여명 선발하는데, 대학원으로 전환하면 60명 규모로 늘릴 수 있다. 수적 증가의 문제만은 아니다. 번역아카데미가 비학위과정인 탓에 정식 학위가 아닌 수료증밖에 줄 수 없는 현실이다. 이 때문에 선뜻 2년을 투자하기 망설여진다는 인재가 많다. 석사학위가 주어지면 실력 있는 (해외)학생들이 더 많이 모이게 될 것이다. 또 번역만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기가 쉽지 않다. 학위를 받아야 자기 나라 대학에서 강의하며 생계를 해결하고 한국문학 번역을 해나갈 수 있다. 아울러 이들은 본국에서 또 다른 차세대 번역가를 양성할 것이다. 학위과정으로 전환하면 해외 대학들과 학점 교환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도, 번역가와 수요자를 연결해 주는 번역센터를 운영할 수도 있게 된다. 대학원 설립 기틀이 마련된 만큼 연내 교육부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한국문학 번역가 지원과 권리 신장을 위한 노력은.
“번역가 간담회를 매년 개최해 이들의 의견을 수렴에 정책에 반영한다. 번역가에게 지급하는 번역 지원금 상승률이 낮다는 의견이 있어, 지난해 지원금을 권당 평균 100만원 정도 상향했다. 번역가들이 프리랜서(자유계약직) 신분인 탓에 저작권 관련 분쟁이 생겨도 대응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 번역원이 법률 지원 관련 예산을 신설하기도 했다. 해외 파견이나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해 번역가들이 현지 출판인들과 네트워킹(교류)하도록 돕기도 한다. 2018년부터 저작권 지원사업을 운영해 지난해까지 138건의 판권계약을 성사시켰다.”
―교류 강화를 위해 추가로 추진 중인 사업은.
“여러 국가 출판인들이 만나는 장이자 출판 계약이 활발하게 성사되는 마켓인 서울국제작가축제를 2006년부터 열고 있는데 올해 확대하려 한다. 국내외 출판인 초청 수를 늘리고 작가와 번역가, 국내외 출판계 인사들이 유기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려 한다. 신진 번역가들이 번역한 작품 시놉시스를 직접 홍보하고 실제 계약으로 성사되도록 하는 기회도 늘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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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에 대한 국제 관심도를 높일 방안은.
“한국문학을 체계적으로 해외에 소개하기 위해 해외 현지 저술을 지원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 현대언어학회(MLA)의 연례 학회에 한국어 문학 세션이 확장세를 보이고 있는데, 한 세션을 번역원이 지원해 구성하는 방안도 생각 중이다. 학회에서 발표된 결과물을 바탕으로 유력 학술지나 문예지에 특집호를 만들 수도 있고, 한국문학을 다룬 좋은 해외저술에 상을 주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해외 독자 확보를 위한 노력도 필요할 것 같다.
“한국문학에 대한 담론을 현지어로 유포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한국 작가 SF소설 한두 편을 재미있게 읽은 해외 독자라면 작품들의 관계망을 연결하고 싶어할 것이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 한 감독이 연출한 작품들을 쭉 보면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명확한 그림이 그려지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의 여성문학·스릴러·탐정소설 등 테마를 잡아 쓴 책이나 장르별 대표작을 소개하는 책, 또는 역사적 배경을 소개하는 저술이 있다면 한국문화를 대중에게 이해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고전 번역사업도 추진하고 있는데.
“그동안 번역되지 않은 고전, 근현대 주요 작품 중 시대별로 5편씩 선정해 매년 기획 번역을 하려 한다. 번역원의 노력 대부분은 이미 잘 팔리는 책을 더 잘 되게 하는 일에 기울인다. 그럼에도 상업적 성공을 기대하기 어려운 분야이지만 꼭 소개해야 할 작품은 공공기관으로서 사명감을 갖고 추진하려 한다.”
―기관 운영과 사업 추진에 어려움은 없나.
“올해 번역원의 예산 약 140억원 중 인건비를 제외한 사업비는 100억원 정도다. 그중 약 40억원이 번역·출판 지원 사업, 23억원이 번역아카데미 운영에 들어간다. 나머지는 콘텐츠 제작과 홍보, 번역도서관과 번역원의 한국문학 해외진출 활성화 플랫폼(KLWAVE) 운영 등에 투입된다.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국회에 추가 예산을 신청해 번역가 양성, 해외 출간 지원 등을 확대하려 했지만 지난해 말 국회 예산 증액이 무산돼 기회를 놓쳤다. 번역원 평균 인건비가 낮은 탓에 이직률이 높아 연속성 있게 진행해야 할 사업이 차질을 빚기도 한다. 번역대학원대학 설립을 위해서라도 사업비 증액이 절실한 상황이다.”
대담=이강은 문화체육부장, 정리=이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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