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트리거 60' 29. 강남개발과 아파트

주택 수는 전국의 2.2%이지만 몸값, 그러니까 주택 가격의 총합은 그 일곱배인 전국의 15%를 차지하는 곳. 종합부동산세 부과 기준인 공시가격 12억원을 넘는 아파트의 70%가 몰려 있는 곳. 바로 서울 강남이다. 더 정확히 말해 강남ㆍ서초ㆍ송파구다. 강남이 어떤 곳인지는 싸이의 ‘강남 스타일’ 덕에 외국인들도 많이 알지 않을까. 실제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 영문판은 강남 스타일을 ‘신흥 부유층(new rich)의 라이프스타일’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한때 JTBC가 방영했던 시트콤 ‘청담동 살아요’(2011~12년)가 보여주듯, 강남의 지명은 과시의 상징이 됐다. 나아가 ‘반포 아크로리버파크’처럼 강남의 지명에 덧붙은 고급 브랜드 아파트는 ‘지위재(positioning goodsㆍ얻음으로써 자신을 다른 사람과 구별해 주는 것들)’의 자리에 올랐다.
50~60년 전만 해도 지금의 강남은 존재하지 않았다. ‘영동(永東)’이란 지명에서 보듯, 그저 ‘영등포의 동쪽’일 뿐이었다. 1975년 강남구가 성동구와 영등포구에서 떨어져 나왔고 88년 서초구가 강남구에서, 송파구가 강동구에서 분리됐다.
60년대 강남은 쓸모없는 땅이었다. 과수원과 채소밭 천지였고, 68년까지만 해도 강남은 일반 가정은 고사하고 지역 전체에 공중전화도 한 대 없는 동네였다.(『강남의 탄생』, 한종수) 여기다 지대가 낮아 툭하면 홍수가 났다.
강남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주택난 때문이었다. 60년 서울은 터질 지경이었다. 전쟁이 끝난 53년 100만 명 정도였던 서울 인구는 60년 250만 명으로 폭증했다. 급증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서울시는 처음 기존 도심을 고밀화하거나 동대문ㆍ수유 등 강북을 개발했으나 턱없이 부족했다.
첫 개발 대상은 지금 강남 아닌 화곡동
그래서 눈을 돌린 곳이 강남이다. 여기엔 군사적 이유도 있었다. 6ㆍ25 전쟁 당시 강북에 주거지가 밀집해 군사 작전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는 판단이다.(『강남』, 김시덕) 또한 강남은 피난 가기 편한 곳이기도 했다. 서울시는 66년 세운 ‘서울 도시기본계획’을 통해 한강 이북 40%, 한강 이남 60%의 인구분산정책을 추진했다. 60년대 후반에는 북한군 특수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하고, 북한이 미국의 정찰함 푸에블로호를 납치하는 등 남북관계가 극도의 긴장 상태를 맞으면서 강남을 개발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애초 서울시가 개발을 시작한 강의 남쪽은 지금의 강남이 아니라 강서구 화곡동이었다. 이곳에 택지를 조성해 단독 주택을 공급했다. 그러나 개발하기 무섭게 땅값이 뛰었다.(『소비의 한국사』, 김재원 등) 너무 올라 택지를 개발해도 구매 가능한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결국 서울시는 화곡동 개발을 중단하고 대체지를 찾았다. 그게 지금의 강남이다. 그곳은 쓸모없는 땅이 워낙 넓어 값이 많이 오르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강남 개발을 위해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은 홍수를 막는 일이었다. 한강 수위 조절을 위해 소양강댐을 지었고(73년) 제방과 강변도로(현 올림픽대로)를 만들었다. 이어 한강 변을 매립해 택지를 조성했다.
인구 유입을 위해 정부는 총동원령을 내렸다. 72년 임시조치법을 만들어 78년 말까지 부동산투기억제세(양도세의 전신)ㆍ영업세ㆍ등록세ㆍ취득세ㆍ 재산세ㆍ도시계획세 등을 면제했다.
75년엔 한강 이북 택지개발을 금지했다. 강북은 대거 그린벨트로 묶었고, 강남은 많이 빠졌다. 최종적으로는 대법원 등 사법부와 검찰청만 옮겨가긴 했지만, 서울시청·한국은행 등 공공기관과 금융기관 본점의 강남 이전도 추진했다.
처음에 개발한 강남의 택지는 아파트용이 아니었다. 그러다 방향이 바뀌었다. “단독주택을 지어서는 서울 시내 전역에 집을 깔아도 인구를 수용할 수 없었다. 아파트 말고는 해결책이 없었다.”(김병린 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 자료)
박정희는 진작부터 아파트를 근대화의 상징으로 부각했다. 62년 마포아파트 준공 치사에서 마포아파트를 “혁명 한국의 상징”이라며 “현대적 시설을 완전히 갖춘 마포아파트 준공은 생활 혁명을 가져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76년 정부는 아파트만 지을 수 있는 ‘아파트 지구’ 제도까지 도입했다. 11개 지구를 지정했는데 6개가 강남이었다. 사실상 강남 아파트 개발을 위한 것이었다.
서울 중산층도 강남의 아파트를 선호했다. ‘피난 가기 쉬운 지역에 있는, 살기 편한 주택’이어서다. 73년 7월 반포1단지를 분양할 때는 당시만 해도 보기 드물었던 승용차 100여 대가 몰려들었다.(『한강개발사』, 이덕수) 그때 반포1단지는 행정구역이 ‘영등포구 동작동’이었고 단지 이름도 ‘남서울 아파트’였다.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세운, 4000가구에 가까운 첫 아파트 대단지였다. 30~40평대로 한강 조망보다 남향이 우선돼 5층짜리가 남쪽을 항해 일렬로 배치됐다.
사교육과 고급 일자리 메카로 자리 잡아
강남 개발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강북 명문 고교의 이전이었다. 76년 경기고를 시작으로 사대문 안에 있던 서울고ㆍ휘문고ㆍ숙명여고 등이 강남으로 옮겼다. 여기에 신흥 명문고들이 가세하며 강남 ‘8학군’을 형성했다. 자녀를 명문고에 보내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고 좋은 직장을 얻게 하려는 부모들이 몰리면서 강남 아파트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90년대 들어 사교육 합법화, 수능 도입, 특목고 확산 등으로 강남은 대치동을 중심으로 ‘사교육 1번지’로 떠올랐다. 고급화 바람이 불어 상업지역에 랜드마크 격인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세워졌다. 판자촌이었던 강남구 도곡동에 2002~2004년 들어선 최고 69층 2500여 가구의 타워팰리스는 초고층 주상복합의 원조가 됐다. 서초동에 삼성타운이 생기며 강남은 테헤란로 일대 등을 중심으로 고급 일자리의 메카로도 자리 잡았다. 90년대 후반 불기 시작한 재건축 바람은 강남 아파트 몸값을 한층 더 밀어 올렸다.
강남 아파트는 중산층 선망의 대상이다. 강남은 대한민국 성장과 발전의 대표적 자화상이며 집중과 효율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강남의 두 얼굴’이라고나 할까. 집중적인 개발은 부유함마저 강남에 집중시켰다. 양극화의 한끝에 있는 ‘그들만의 세상’이란 소리도 들린다. 정의론으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설파했듯 야구장 고급 관람석을 빗댄 ‘스카이박스화’ 우려도 있다. 최근 『정의와 도시』를 펴낸 백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의 서울 비판을 강남 아파트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서울과 수도권만 잘 나가서는 성장이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는 게 백 교수의 지적이다. 마찬가지로 서울에서도 강남만 독주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균형 발전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한다. 부인하기 어렵다. 2024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아파트는 1297만 채로 전체 주택(1987만 채)의 65%를 차지한다. 대략 주택 셋 중 둘은 아파트란 소리다. 1970년 3만3000채이던 것이 50여 년 만에 약 400배가 됐다. 가수 윤수일의 노래 ‘아파트’가 나오기 2년 전인 85년에도 아파트는 82만 채뿐이었다. 아파트 비율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주택 인허가의 88%가 아파트였다. 작년 주택 거래 역시 아파트가 대부분(77%)이었다.

해방 후 우리 기술로 지은 첫 아파트는 59년에 들어선 종암아파트이며, 첫 아파트 단지는 62년 준공한 마포아파트다. 아파트는 초기에 편리함과 현대적 삶의 상징으로 인기를 끌었다. 도둑이 있던 시절, 상대적으로 단독주택보다 걱정을 덜 해도 되는 주거지이기도 했다. 아파트 거래가 폭발적으로 늘며 값이 뛰었고, 환금성이 높아진다는 장점마저 지니게 됐다.
아파트는 이제 한국 문화의 상징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아파트'라는 음주 게임까지 나왔고, 이를 바탕으로 K팝을 만든 가수 로제는 최근 미국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에서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상을 받았다.
하지만 아파트가 모두에게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아파트 공화국’이란 말부터 그늘을 갖고 나왔다. 83년 한국소설문학상을 받은 신석상의 장편 소설 제목으로 처음 쓰였다. 신석상은 소설에서 아파트를 시멘트벽이 갈라놓은 이웃 간 단절과 황금만능주의를 낳고 운영관리 비리의 온상이 된 도시의 ‘괴물’이라며 숨 막혀 했다.
창간 60주년 기획 '대한민국 트리거 60'은 아래 링크를 통해 전체 시리즈를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은 '한강의 변신(1967~2025)'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