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사들, 사고 이후 '소송 버티기'로 책임 회피 논란
- 중대한 사고에도 처벌 지연…책임 묻기 어려운 한국의 현실
[녹색경제신문 = 문홍주 기자] 2022년 1월 발생한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 사건과 관련해 현장 소장 등 관계자들의 책임 및 처벌 수위를 결정하는 1심 재판 선고가 3년만에 열린다.
이번달 20일에 열리는 이번 선고는 39층 아파트 상층부 붕괴로 노동자 6명이 사망한 대형 사고의 법적 책임을 가리는 첫 단계다. 지금까지 서울시는 "붕괴 사고에 대한 HDC의 과실 정도를 판단할 수 없으며, 재판 결과를 지켜보겠다"라며 아무런 처벌도 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들은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은 서울시가 행정처분을 내려도 효력정지를 신청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게다가 1심에서 HDC가 패소하더라도 상고를 통해 처벌을 지연할 것"으로 전망했다. 따라서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 책임의 최종 결론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행정소송과 효력정지 신청 남발, 비슷한 양상 반복
이처럼 건설사들이 사고 이후 처벌을 지연시키기 위해 행정소송과 효력정지 신청을 남발하는 '소송 버티기' 전략은 HDC현대산업개발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표적으로 2023년 4월 발생한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는 건설 현장에서의 안전 관리 부실이 또 한 번 드러난 사건이었다.
국토교통부는 사고 책임을 물어 시공사인 GS건설과 동부건설에 대해 각각 8개월의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지만, 두 건설사는 즉각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효력정지 신청을 통해 처분을 중단시켰다. 법원은 효력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현재까지 영업정지 처분이 유예된 상태다.
사고 건물의 발주처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역시 책임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토교통부와 전문가들은 LH가 발주처로서 안전 관리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지적하지만, 현재까지 LH에 대한 직접적인 법적 처분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편, 해당 사건에 연루된 시공사 및 감리업체 24개사 모두 총 28건의 행정처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며 처벌을 지연시키고 있다.
건설사들이 사고 이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법적 절차를 악용하는 사례는 광주와 인천뿐만 아니라 다른 대형 사고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소송 버티기'는 사고 책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줄어들기를 기대하며 시간을 벌려, 결국 처벌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는 단순한 법적 대응을 넘어 건설사들의 구조적 문제와 안전 불감증을 드러내는 신호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이나 일본의 사례는 어떨까?
해외에서도 건설사들이 사고 이후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시도가 있으나, 각국의 대응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2018년 플로리다 국제대학교(FIU) 근처에서 건설 중이던 보행자 다리가 갑자기 붕괴해 6명이 사망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시공사 FIGG Bridge Group과 설계업체가 안전 결함을 인지하고도 이를 수정하지 않은 점이 지목되었다.
미국의 산업안전보건청(OSHA)은 즉각적인 조사를 통해 책임자들에게 1,000만 달러(약 130억원) 이상의 벌금을 부과했고, 피해자 가족들과의 신속한 합의를 통해 사건 처리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 사고에서 시공사와 설계사는 법적 공방을 시도했지만, 법원의 신속한 판결과 강력한 규제 체계로 인해 책임을 회피하지 못했다.
참고로 OSHA는 중대하지 않은 위반에 대해서는 건당 12,934 달러(약 1,681만원)의 범칙금을 부과할 수 있다. 중대하거나 반복적 위반의 경우에는 건당 최대 129,336 달러(약 1억 6천 813만원) 의 범칙금을 부과할 수 있다.
만약 OSHA의 처분에 이의를 제기할 경우 산업안전보건검토위원회(OSHRC)에 항소할 수 있고, 여기서도 항소할 경우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연방법원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고, OSHRC까지 가는 경우도 드물다.
왜냐하면 처분에 이의를 제기한 기업은 명백한 법적 또는 절차적 문제를 증명해야 하며, 만약 상고 후 패소할 경우 추가 조사를 통해 더 강력한 처벌을 부과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건설사고 발생 시 기업이 신속히 책임을 인정하고 사회적 신뢰 회복을 위해 복구 작업에 적극 나선다. 사고 이후 법적 대응보다 피해자와의 합의 및 보상에 집중하며, 이미지 관리를 최우선으로 한다. 심지어 건설사의 책임을 따져 묻기 힘든, 지진 같은 자연재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자세는 기업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1995년 고베 대지진 당시, 한신 고속도로의 붕괴 사고는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 사고에서 시공사와 관리 당국은 책임을 인정하며 사고 원인을 철저히 분석했고, 일본 정부는 구조 개선 및 복구 작업을 신속히 진행했다.
제도적 보완 필요, 중대재해처벌법 보다 엄격히 적용해야
일본과 미국의 사례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에서도 건설사들의 처벌 지연 관행을 막기 위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 분야 전문가들은 "소송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효력정지 신청 조건을 강화하고,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어도 처벌을 일정 부분 집행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라며 "중대재해처벌법을 보다 엄격히 적용해 사고를 예방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또한, "LH와 같은 공공 발주처의 관리 소홀에 대해 명확히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를 위한 안전 관리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주 화정아이파크와 인천 검단 아파트 붕괴 사고는 건설 현장의 안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연시키고 회피하려는 건설사들의 '소송 버티기' 관행이다.
정책 전문가들은 "해외 사례처럼 강력한 제재와 신속한 책임 추궁이 이루어져야만, 이러한 관행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문홍주 기자 real@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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