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협, 한·미 통상현안 전문가 좌담회 개최
美 전문가 "韓, 유능한 동맹으로 역할 할 것"
전략산업 협력 강화, 방산·조선·반도체 집중
[서울=뉴스핌] 김아영 기자 = 최근 한미 통상 협상 타결로 관세 불확실성이 해소된 가운데, 전략산업 중심의 실질 협력 확대와 민관 공조가 후속 대응의 핵심 과제로 부상했다. 관세 조정에만 그치지 않고, 방산·조선·반도체 등 전략 산업을 중심으로 양국간 실질 협력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5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진화하는 한미 경제동맹: 관세를 넘어 기술 및 산업협력으로' 좌담회를 열고, 통상 전문가들과 함께 향후 대응 방향을 짚었다.

김창범 한경협 상근부회장은 개회사에서 "7월 30일 한미 간 관세를 포함한 통상 협상이 상호 관세 15%와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펀드 조성이라는 큰 틀로 최종 타결됐다"며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지속됐던 불확실성이 1차적으로 해소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게임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듯 앞으로 우리 기업의 피해는 최소화하고 기회의 창을 넓히는 데 집중해야 한다"며 "한미 동맹이 기술과 산업 협력으로 진화하는 상호 이익의 단계로 옮겨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반도체 등 전략 산업 중심으로 후속 협상 준비해야"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제프리 쇼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 펠로우는 "이번 협상은 한국의 협상단이 매우 철저히 준비해 큰 성과를 거둔 사례"라며 "경제뿐 아니라 정치·안보 관계까지 이어질 수 있는 협력 경로를 마련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현재까지 합의된 것은 앞으로 계속 협상을 이어가기 위한 틀(framework)에 불과하다"며 "이 협정의 성격이 아직은 미완성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쇼트 선임 펠로우는 "한국이 향후 수년간 미국 내에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한 점은 상호 윈윈 전략으로 볼 수 있다"며 "이 중 40% 이상이 조선 분야에 집중되는데 이는 미국의 조선 산업을 회복시키는 데 한국 기업의 기술력과 경험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협정은 양국에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가치가 약화된다는 점에서 비용이 따른다"며 "조선, 반도체 등에서의 협력이 무역 시장 개방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제도화 통한 전략 정렬 필요…中과의 균형 대응 강조"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태 안보의장은 "한국 산업계의 놀라운 성취에 경의를 표한다"며 "조선, 반도체, 에너지 저장 시스템 등에서 세계적 선도 국가로 자리 잡았으며 이는 전 세계 소비자와 정책결정자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크로닌 의장은 "미국은 핵심 산업의 기반이 약화됐고 특히 철강 같은 기초 소재 생산 능력이 감퇴했다"면서 "이는 일본이나 한국 같은 동맹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미 양국이 경제와 안보 경계를 넘어 실질적으로 협력하기 위한 방안으로 다섯 가지를 제안했다.
크로닌 의장은 "방산산업 통합, 조선 및 해양 인프라 복원, 반도체 공급망 확보, 에너지 안보 강화, 제도적 정비 등은 단순한 무역을 넘어 평화 유지와 기술적 충격으로부터 사회를 방어할 수 있는 전략적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조선 협력과 관련해 미국의 보호무역법인 존스법(미국 국내 조선소 건조 선박만 자국 항만 간 운송 허용)이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언급했다. 다만, 대규모 투자 예산을 통해 일부 수정하거나 유연하게 적용해 조선 협력을 현실화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크로닌 의장은 "미국은 동맹 기반의 산업 정책이 필요한 국가로 미중 간 전면적인 디커플링이 아닌 핵심 공급망의 자립과 회복력 확보가 목표"라고 힘줘 말했다.
◆"FTA 약화는 아쉬워…투자 조항 구체화가 관건"
이어진 토론에서는 국내 전문가들도 후속 협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정부의 전략적 대응을 주문했다.
유명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과거보다 높은 15% 관세는 아쉽지만 보호무역주의 시대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며 "자동차 부문 혜택 축소는 아쉽지만, 투자 펀드 조항은 새로운 영역이므로 향후 정교한 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기업들이 미국 투자에 집중하며 국내 산업 공동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만큼 정부가 적극적 규제완화 정책을 통해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최석영 전 제네바무역대표부 대사는 "정권 교체로 인한 시간 제약 속에서도 협상을 마무리한 건 성과"라며 "합의 문안의 모호성이 EU, 일본과 유사하므로, 향후 분쟁 방지를 위한 준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학장은 "한미 FTA의 효력 약화는 유감이나, 시대 변화의 상징"이라며 "투자 조항을 구체화하고 FTA의 투자자 보호 조항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날 좌담회에서는 미·중 경쟁 속에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 미국의 보호무역법이 한·미 조선 협력에 미칠 영향, 한미 경제 전략 협력의 제도화 방안 등에 대해서도 활발한 논의가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고율 관세 시대에 돌입한 만큼, 한국은 산업 경쟁력 강화와 동맹국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실질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ay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