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대표적 시인이며 작가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T S 엘리엇은 ‘지식 속에서 우리가 잃은 지혜는 어디에 있으며, 정보 속에서 잃은 지식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물었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빠르게 잠식해 가는 지금, 그의 질문은 우리가 스스로 성찰해야 함을 일깨운다. 엘리엇은 이미 20세기 초에 문명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지혜의 본질을 잃어감을 지적했다. 그는 단순히 많은 지식이나 빠르게 접근 가능한 데이터가 지혜나 통찰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일찍이 비판했다.

엘리엇은 1934년 집필한 ‘The Rock’에서 이 문장을 남겼다. 1차 세계대전이 남긴 상흔에 이은 1930년대 대공황의 충격은 유럽 사회를 물질적 회의감과 정신적 공허함에 빠뜨렸다. 산업과 문화적 급변기의 시작으로 인간의 삶은 혁신적으로 바뀌었지만, 그로 인해 정신적 중심이 무너지고 인간의 가치관이 흐려진 시대였다. 엘리엇은 이러한 상황에서 정신과 문명의 방향을 다시 묻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그때와 다르지 않다. 오히려 그때보다 더 위태로운 상황으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지혜란 삶에 대한 총체적이면서도 근본적인 통찰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지혜는 학교 교육의 산물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그것을 얻으려는 노력의 산물이다”라고 한 것처럼 지식은 정보에 불과하다. 2024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의 52.1%가 생성형 AI를 사용한 경험이 있으며 주로 정보 검색과 과제 수행에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소년보다 일반인의 AI 사용률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기업교육 전문기업 휴넷의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직장인들의 88.4%가 이미 정보 검색, 글쓰기 및 보고서 작성 등에 AI를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산업현장에서 업무 생산성과 성과 면에서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인구감소 추세인 현상을 비춰보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AI 활용이 증가하면서 인간의 인지능력과 비판적 사고능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는 단순히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경고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스위스비즈니스스쿨 게를리히 교수의 연구(2025)는 AI 사용이 많을수록 비판적 사고력이 낮아진다는 사실을 밝혔다. 특히 젊은 층의 AI 의존이 사고력 저하와 관련이 있음을 지적했다.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 생성으로 전 세계 트렌드를 주도한 ‘생성형 AI’의 뒤를 이어 인간처럼 사고하는 ‘추론형 AI’와 스스로 업무를 처리하는 ‘AI 에이전트’가 속속 등장하면서 인간의 사고를 AI가 대신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글로벌 리서치회사 IMARC는 2033년 한국의 AI 시장 규모는 40조 원 수준으로 급속성장을 예견했다. 이제 우리는 AI의 기술 수용을 넘어, 인간 고유의 사고능력과 지혜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를 성찰해야 할 때다. AI는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이다. 깊은 사색과 성찰이 진정한 지혜의 출발점이며,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인천 칼빈대 국제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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