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는 옳았다.”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2023년 여자월드컵 출전국을 16개에서 32개로 늘린 결정을 스스로 내린 평가다. 그런데 FIFA는 불과 2년도 지나지 않아 한 차례 확대안을 발표했다. 2031년 대회부터 여자월드컵을 남자월드컵처럼 48개국 체제로 열겠다는 방침이 공식적으로 선언됐다. BBC는 “이번에도 FIFA는 옳은 선택을 한 것일까”라며 11일 바판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지난해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열린 여자월드컵은 여러 이변과 함께 순조롭게 진행됐다. 모로코, 남아공, 나이지리아 같은 아프리카 팀들이 16강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다. 랭킹 81위 잠비아는 일본과 스페인에 0-5로 대패했지만, 랭킹 44위 코스타리카를 3-1로 꺾고 조 3위를 차지했다. ‘이변의 연속’이었다. 전체 32개국 중 승점을 한 점도 얻지 못한 국가는 단 3팀(코스타리카, 아이티, 베트남)에 불과했고, 베트남을 제외하면 모두 득점에도 성공했다. 반면, 네덜란드가 베트남에 7-0, 노르웨이가 필리핀에 6-0 대승을 거두는 등 일방적인 경기력 격차도 분명 존재했다.
여자월드컵에 나선 경험이 있는 나라는 지금까지 44개국뿐이다. 출전국 확대는 단지 경기 수 증가를 넘어, 각 대륙별 예선 기회 확대로 이어진다. 긍정적인 부분은 소규모 축구협회와 정부의 관심을 유도하고, 여성축구 인프라에 대한 장기적 투자 동기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축구협회 JT 배트슨 회장은 “여자월드컵은 많은 국가에 월드컵 출전 기회를 줄 뿐 아니라, 남자 축구보다 실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잉글랜드 사리나 위그먼 감독도 초기엔 회의적이었지만, 2023년 대회를 경험한 후 “더 많은 국가가 참가하면서 더 경쟁력 있는 대회가 됐다”고 입장을 바꿨다.
물론 우려도 적지 않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것은 경쟁력 저하다. 남자월드컵이 48개국으로 확대됐을 때처럼, 여자 대회 역시 ‘수준차로 인한 몰입도 하락’, ‘시청률 감소’ 등은 불가피하다. 잉글랜드 대표팀 출신 골키퍼 카렌 바슬리는 “선수 혹사, 일정 포화, 회복 시간 부족, 시즌 일정과 충돌 등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월드컵 출전이 곧 체계적인 지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2023년 대회에선 자메이카 대표팀이 훈련장 부족, 자비 출전 등 준비 환경 문제로 연일 협회를 비판하기도 했다.
FIFA는 2018년 ‘여자축구 전략’을 수립하고, 2027년까지 전 세계 6000만 명 여성 축구인 양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전 회원국(211개국)에 자체 여자축구 전략 수립을 요구하고,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재정 지원과 기술 자문을 확대 중이다. 바슬리는 “2031년까지 실질적인 발전을 이루기엔 시간이 촉박하며, FIFA가 여성축구에 대한 진정한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FIFA는 2027년 대회부터 남자대회와 동일한 상금 체계 도입도 약속했지만, 말뿐인 공약이 되지 않기 위해선 이행력이 중요하다.
오는 2026년 북중미 남자월드컵부터 48개국 체제가 처음 도입된다. 애초엔 3개국씩 16개 조로 운영해 2위까지 진출시키는 안이었지만, 승부 조작 가능성 등으로 비판이 일자, 4개국씩 12개 조 체제로 바뀌었다. 각 조 1·2위 + 성적 좋은 3위 8팀이 32강 토너먼트를 치른다. 총 경기 수는 기존 64경기에서 104경기로 늘어나고, 대회 기간도 10일 가량 연장된다. 여자 대회가 동일한 방식으로 운영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여자월드컵 48개국 확대는 ‘수평적 확장’ 결정판이다. 더 많은 국가에 기회를 제공하고, 여성 스포츠 발전을 가속화할 수 있는 중대한 기회다. BBC는 “하지만 단순히 출전국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며 “인프라 투자, 선수 복지, 제도적 보완 없이 치러지는 월드컵은 오히려 여성축구의 가치를 희석시킬 수 있다”고 걱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