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촉발된 정치 혼란에 관가의 송년 분위기도 얼어붙고 있다. 연말에 잡아뒀던 회식이나 식사 자리를 취소하거나 축소하는 식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내수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공공기관에서 계획된 연말 행사 등을 그대로 진행해달라”고 당부했지만 탄핵 국면 속 공직 복무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지적이 나올 것을 우려하는 모습이다.
13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대다수 부처에서 계엄 사태 이후 대규모 송년 모임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중앙 부처의 한 과장은 “직원들에게는 평소와 다름없이 관계 기관이나 타 부처를 만나라고 독려한다. 내수를 생각하면 그렇게 하는 게 맞다”면서도 “아무래도 국·과장급 공무원들은 구설수를 우려해 불필요한 약속은 미루는 상황”이라고 귀뜸했다. 세종시에 거주하고 있는 한 사무관은 “공식적으로 회식 자제령이 내려온 것은 아니다”면서도 “이럴 때일수록 공직 기강이 흔들리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있어 대규모·저녁 모임을 하기보다 소규모·점심 모임으로 진행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통상 민간 관계자와의 점심 자리에서 술을 권하면 넙죽 받았지만 요즘에는 사양하고 있다”며 “보수적인 공직 분위기를 고려하면 단체로 모이는 것에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정부 부처는 직원 100여 명이 참석하는 송년회를 연말께 개최할 예정이었지만 탄핵 정국으로 치달으면서 실·국장급 간부만 모이는 점심 자리로 축소하기로 했다.
연말이면 으레 열렸던 각 부처 장차관과 출입기자단 사이의 송년회도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형편이다. 최 부총리는 당초 이달 중순 기자단과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뒤 송년 만찬을 가질 계획이었으나 해당 일정은 무산됐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보건복지부, 농림축산식품부 역시 이달 초순 장관 또는 차관이 참석하는 기자단 송년회를 개최하려 했으나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급히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양수산부는 비상계엄 사태에 더해 경주 어선 침몰 사고까지 발생하면서 기자단과의 송년 만찬을 취소하게 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종시를 포함한 주요 지역의 자영업자들은 연말 특수가 실종됐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공무원들의 경우 업무 특성상 세종시 뿐만 아니라 서울 주요 지역에서 업무 관계자 및 언론 등 외부인들과의 만남 자리가 잦다. 정부세종청사 인근에서 소갈비집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예약이 전혀 들어오지 않고 있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며 “이같은 추세면 이번 달 매출은 지난해보다 20~30%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15~30인 규모의 기업인 저녁 예약은 취소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예약 취소는 공무원들이 대부분이다. 최근 사태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미안해하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지방에 이전한 공공기관들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당시보다 더 심하다는 푸념도 나온다. 전남권에 위치한 한 공기업 관계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송년회를 미루고 있다”며 “불확실한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몰라 당장 신년회 일정을 잡기도 애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금융 공기업 관계자도 “이럴 때 물의를 일으키면 안된다는 생각에 다들 눈치만 보는 형편”이라며 “식사 자리에 가더라도 1차만 하고 다들 귀가하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경북권에 본사를 두고 있는 한 공기업의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송년회 없는 연말이 대세가 되는 추세였지만 올해는 유독 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소상공인 10명 중 9명 가까이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매출에 타격을 입었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10일부터 사흘간 전국의 음식·숙박업, 도소매업, 개인서비스업 종사 소상공인 16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8.4%가 “비상 계엄 선포 이후 매출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매출이 50% 이상 줄었다는 소상공인도 전체의 36%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류필선 소상공인연합회 전문위원은 “조사 결과 응답자의 90.1%가 연말 경기를 부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며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른 매출 감소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