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유학시 장학 당국은 연구 목적으로 여행한다면 ‘무료 특급열차 승차권’을 보내준다고 해서 많은 대학을 찾아다니며 연구도 많이 하고 여행도 즐길 수 있겠구나 하는 환상도 하게 되었지만, 실제로 해보니 그럴 수가 없었다. 한 대학을 찾아가면 자연히 진지하게 연구하게 마련이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자주 옮겨 다니면 연구는 잘되지 않고 호텔 비용만 많이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다. 필자는 이 연구용 특급열차표로 여러 면에서 인연이 있는 독일 명문 프라이부르크(Freiburg, 한때 유명한 하이데거 교수가 재직했었음) 대학과 그 인근의 독일의 정신적 지주로 유명한 튀빙겐(Tbingen) 대학교을 방문하기로 했다. 북독일의 베를린에서 밤에 기차를 타고 침대칸에 누어 밤새도록 내려오니, 기차는 새벽녘에 독일 서남부의 대평원을 가로지르면서 푸르다 못해 검다고 하는 흑림(黑林, Schwarzwald) 아래 프라이부르크 대학도시에 도착했다.
“산 위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은 도로를 따라 노면 위를 흐르고, 옆구리에 책을 끼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학생들은 활기에 차 있었으며, 이곳저곳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여인들은 밝은 표정에서는 마냥 행복해 보였고, 시간을 알리는 저녁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질 때 대학생 식당에서 새어나오는 요리 냄새는 구수하기만 했다.” 이것은 필자의 미숙한 한 시구이기도 하다. 역사이론 중에 “수십 페이지의 사실적 표현보다는 몇 줄의 문학적 표현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말이 있어 써본 것이다.
평소 필자는 서양사를 전공하는 교수로서 ‘서양지성사’를 깊이 연구하는 교수를 알았으면 했는데, 프라이부르크 대학 사학과 펜스케(H. Fenske) 교수가 바로 그러한 분이었다. 펜스케 교수는 자신과 자신의 팀이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읽고 참고했다고 감사와 격려의 편지를 한국 주소로 보낸 분이기도 하다. 비엔나 대학교 예들리치카(L. Jedlicka) 교수의 지도로 이루어진 필자의 학위논문은 좋은 평을 받았고, 오스트리아·독일·스위스에서 발간되는 신문 ‘보헨 프레세(Wochen Presse)’에 그 주요 내용이 게재되었다.
펜스케 교수가 역사와 사상의 관계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해주어 큰 도움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분이 준 두꺼운 역사이론 책 한 권은 그간 필자에게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또한 프라이부르크대학교는 놀테 교수가 하이데거(Heidegger) 교수의 강의에 심취해 청강했던 곳이고, 필자가 여름방학이면 쉬었다가 오던, 해마다 여름이면 수상(水上) 오페라가 공연되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 보덴 호(Boden see)로부터 가까운 곳이라서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도시였다.
다음으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은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사상적·정신적인 면에서 독일의 역사를 이끌어 왔다는 튀빙겐 대학교이었다.
아득한 그때를 생각해 보면 도시에는 깊은 계곡을 따라 푸른 강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고, 매우 적막한 분위기를 풍기는 대학 여기저기에는 조용히 책을 읽거나 열심히 토론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필자처럼 서둘러 구경을 다니는 사람들도 많았다. 관광객을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덧 높은 건물 위에 올라 도시 전경을 바라보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상당히 아래로 보이는 그 큰 집이 바로 헤겔(Hegel)과 셸링(Schelling)이 장학생으로 기거했던 기숙사라고 했다. 그렇다면 헤겔은 이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광란의 프랑스혁명에 감탄했고, 이후 “역사를 이성화와 자유의 증대 과정이다”라고 말했던 것인가?
그곳 분위기가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필자가 살고 있는 전주와 같이 아늑하고 평온한 도시라서 ‘전주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정신적 학문의 세계적 중심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규하 <전북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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