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제약사의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백신이 잇따라 국내에 도입되고 있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RSV 백신 연구에 나서고 있지만 개발 완료까지는 다년의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6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RSV 백신 '아렉스비'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품목 허가를 받았다. 미국 화이자 '아브리스보'는 허가 심사 중이며 모더나 '엠레스비아'도 식약처 허가 신청을 준비 중이다.
아렉스비는 지난해 5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승인되며 세계 최초 RSV 백신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후 같은 해 6월 아브리스보, 7월 엠레스비아까지 속속 FDA 허가를 받았다. 세 백신 모두 유럽 의약품청(EMA)에도 승인받은 상태다.
사노피·아스트라제네카가 RSV 예방 의약품으로 개발한 항체주사제 '베이포투스'도 지난 2022년 EMA 승인에 이어 지난해 4월 식약처, 같은 해 7월 FDA 허가를 받으며 각국 시장에 진출했다. 사노피코리아에 따르면 베이포투스는 최근 서울대병원을 비롯해 강남차병원, 고려대학교안암병원, 고대안산병원, 분당차병원, 양산부산대병원 등 의료기관 약사위원회(DC, drug commitee)를 통과하며 처방권에 진입했다.
머크(MSD) 역시 지난달 단일클론 항체인 클레스로비맙(Clesrovimab, MK-1654)에 대한 FDA 승인 신청이 수락되며 시장 출시를 앞두고 있다. 승인결정예정일은 6월 10일로, MSD는 승인을 받을 경우 북반구 환절기 시즌에 맞춰 출시한다는 방침이다. 다른 제품과 마찬가지로 유럽과 한국 등 다른 국가로도 진출을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클레스로비맙은 접종 기간 1회 접종 방식으로, 승인되면 같은 접종 방식을 지닌 베이포투스와 경쟁하게 된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가 앞다퉈 RSV 예방 의약품 경쟁에 뛰어드는 이유는 RSV 백신의 미충족 수요가 상당한 규모인 데다가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업 데이터호리존 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RSV 백신 시장은 2032년까지 22억달러(한화 약 3조2357억원)에 도달할 전망이다.
아렉스비의 지난 2023년 총매출은 11억5205만파운드(한화 약 2조원)로 출시 첫해에 블록버스터급으로 부상했다. 지난해 경쟁 제품 출시로 매출 상승세가 둔화했지만, GSK는 중장기 전망은 여전히 밝다고 보고 있다.
베이포투스는 지난 2023년 5억4700만유로(한화 약 8291억원)의 매출을 보고했는데, 지난해에는 공급 제약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매출 12억7000만달러(한화 약 1조8672억원)로 블록버스터(연매출 1조원 이상 의약품)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RSV는 주로 호흡기 상피세포를 공격하는 바이러스로 감염된 세포 간에 융합(syncytia)을 일으킨다. 모든 연령대에서 감염될 수 있지만, 생후 2세 이하의 영유아와 기저질환을 앓는 고령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WHO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RSV 관련 급성 하기도 감염자는 연간 3300만명으로 추산된다. 매년 5세 미만 어린이의 경우 약 300만 명 이상의 입원과 5만 9600명의 병원 내 사망이 발생하고, 6개월 미만의 영아에서 약 140만 명의 입원과 2만 7300명의 병원 내 사망이 발생한다.
한국 질병관리청 역시 RSV를 위험한 질병으로 정의하고 있다. 질병청 국가정보 포털에 따르면 RSV는 감기와 유사한 증상을 나타내는 급성 호흡기 감염 바이러스로 독감, 코로나19와 함께 대한민국 4급 법정 감염병에 속한다. 국내 RSV로 인한 입원환자 수는 연간 약 1만 명에 이르며, 국내 유행시기는 주로 10월부터 3월까지다.
국내에서도 질병청이 최근 국회 종합감사에서 겨울철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백신의 국가예방접종(NIP)사업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는 등 관련 시장이 커질 기미가 보이고 있다. 호라이즌 그랜드뷰 리서치에 따르면 국내 RSV 백신 시장은 오는 2030년까지 3억670만달러(한화 약 4511억5570만원)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현재까지 국내 도입된 의약품이 모두 다국적 제약사 제품으로 국산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지원 백신실용화 기술개발사업단은 세부과제 중점분야 중 미래대응·미해결 분야에서 RSV를 선정했다. 영유아의 높은 치사율과 더불어 백신 부재 등의 문제점을 인식해 유전자재조합 항원 생산 기반 RSV백신을 개발 중이며, 현재 비임상 단계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유바이오로직스와 SK바이오사이언스가 RSV 백신 개발에 나섰다.
유바이오로직스는 RSV 백신 후보물질(EuRSV)을 발굴해 지난해 국내 임상1상을 개시했다. EuRSV는 RSV 바이러스의 F 단백질 항원과 리포좀 면역증강제가 혼합된 재조합 단백질 백신으로, 체액성 면역(B세포 활성화)와 세포성면역(T세포 활성화) 반응을 모두 극대화할 수 있다.
이번 임상에서 유바이오로직스는 만 19세 이상 80세 이하 건강한 성인 100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용 의약품인 EuRSV를 2회 투여한 후 용량별 안전성과 내약성을 평가할 계획이다.
유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향후 임상2상과 3상은 국내 포함 해외에서 진행을 고려 중"이라며 "(EuRSV은) 이르면 2027년 이후 상용화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 2023년 mRNA 기반 프리미엄 RSV 백신을 5대 핵심 연구개발 사업 중 하나로 선정했다. 이미 지난 2018년부터 RSV 백신 개발 연구를 시작해 2029년 상업화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아직 후보물질 탐색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윤기욱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사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까지 영유아 및 소아의 가장 중요한 건강 문제 중 하나가 RSV 감염이었다"면서 "새로운 시대에 적절히 대비하기 위해서는 새로 개발된 단클론항체, 백신들에 익숙해지고 국내 RSV 특성에 대한 역학 데이터를 수집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내에서 이러한 단클론항체, 백신들을 생산해 내어 백신 주권을 행사하고 보건, 경제적 국력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