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인도네시아에서 2개월가량 산불이 지속되면서 수마트라섬과 보르네오섬 6개주에 화재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하늘이 온통 짙은 연무로 뒤덮이면서 항공기가 결항되고, 호흡기 질환에 따른 사망자도 발생했다. 당시 산불로 인한 연무는 국경을 넘어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태국 남부까지 확산됐다. 대기오염이 심각해지자 말레이시아 일부 주에서 휴교령을 내리는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4일 산림청 등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대형산불은 대부분 ‘이탄지(泥炭地)’에서 발생한다. 이탄지는 습지에 쌓인 식물체의 유기물(이탄)이 완전히 분해되지 않은 채 오랜 시간 퇴적된 땅이다. 산소가 풍부한 환경에서 유기물을 산화·분해해 에너지를 얻는 호기성 미생물의 활동이 적은 열대지방에 많이 분포한다. 인도네시아 이탄지 전체 면적은 약 2000만㏊로, 전 세계 열대 이탄지의 47% 정도를 차지한다. 한반도 면적과 맞먹는 규모다.
이탄지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불이 지표면이 아닌 땅속 유기물층을 타고 장시간 확산되는 지중화(地中火) 현상을 보이기 때문에 진화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2019년에만 40만건 이상의 이탄지 화재가 일어나 85만㏊가 불에 탔다. 이탄지 화재는 눈에 보이는 피해로만 그치지 않는다. 이탄지는 전 지구에 분포하는 식물이 흡수하는 탄소량의 두 배 이상을 저장할 수 있고, 일반 토양에 비해서는 탄소 저장량이 10배 이상이다. 전 세계 이탄지 면적은 지구 표면의 3%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탄지에 저장된 탄소량은 전 세계 토양 탄소 저장량의 42%를 차지한다. 그래서 ‘지구의 탄소저장고’로 불린다.

산불 등으로 이탄지가 훼손되면 그 안에 저장된 유기물이 이산화탄소나 이산화질소, 메탄 등 온실가스 형태로 대기에 배출돼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요인이 된다. 학계에서는 전 세계 열대 이탄지가 저장하고 있는 탄소량을 75Gt(기가톤·1Gt=10억t)으로 추정한다. 인도네시아 이탄지는 이 가운데 약 37%인 28Gt의 탄소를 저장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훼손된 이탄지는 보전 상태로 있을 때보다 1㏊당 연간 24t가량의 탄소를 더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9년 이탄지 산불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곳 중 하나가 수마트라섬 중부에 위치한 잠비주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법정보호구역으로 지정한 잠비주의 론드랑 이탄지보호림도 2015년에 이어 4년 만에 다시 발생한 산불로 초토화됐다. 축구장 1만7200개 크기인 1만2400㏊ 규모의 이탄지보호림을 지탱하던 다양한 수종의 열대림이 파괴됐고, 보호림이 온통 잿빛으로 변했다.
지난달 9일 잠비주 무아로잠비군 론드랑 이탄지보호림 서쪽 지역을 찾았다. 2019년 대형산불 이후 생명력 강한 고사리류만 겨우 자라나던 척박한 땅에서 다양한 생명이 다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열대우림에 서식하는 대표적 활엽수인 풀라이(Pulai)와 젤루퉁(Jelutung) 등 여러 종류의 나무가 성인 허리 높이부터 2~3m 높이까지 자라나 있었다. 언뜻 봐서는 산불이 휩쓸고 간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습지의 유기물 모인 ‘이탄지’
탄소 저장량 많아 보전 필수적
2019년 큰 산불로 초토화돼
산림청, 생태복원 노하우 전수
활착률 92% 성공적인 재조림
올해부터 72억원 투입 ‘2단계’
주민들 “숲 되찾게 된 것 감사”
발이 푹푹 빠지는 습지를 가로질러 한참 걸어가자 한가운데 세워진 나무 전망대 위로 인도네시아 국기와 함께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한쪽에는 ‘이탄지 복원을 통한 기후변화 대응’ ‘대한민국 산림청 잠비주 이탄지 복원사업지’라고 한글로 적힌 현수막과 안내판도 설치돼 있었다. 대형산불로 훼손된 이 일대 이탄지 복원사업은 한국·인도네시아 산림당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협력 사업으로 추진됐다.
두 번의 산불이 론드랑 이탄지보호림을 휩쓸고 간 이후인 2020년 9월 한·인도네시아 양국 간 이탄지 복원에 관한 업무협약이 체결됐다. 양국이 산림협력 사업을 위해 현지에 설립한 한·인니산림협력센터가 복원사업을 맡았다.
이탄지 복원은 일반적인 산림 복원과는 다른 과정을 거친다. 훼손된 습지를 촉촉하게 재습윤화하는 과정이 선행된다. 수로를 막아 일정 깊이 이상 지하수위가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론드랑 보호림 내 약 1000㏊를 대상으로 재습윤화 사업이 이뤄졌다.
안정적인 습지관리가 가능해진 후 재조림이 진행됐다. 약 200㏊에 19개 수종 16만그루의 묘목을 심었다. 사후관리 과정을 거쳐 2025년부터 활착률(식재목 생존율) 조사가 이뤄졌다. 식재 후 최소 3년이 지난 현재 활착률은 92% 이상으로 나타났다. 조림사업에서는 활착률이 80% 이상만 돼도 성공적인 결과로 평가된다.
론드랑 이탄지 복원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던 배경에는 한국 산림당국의 산림생태복원 노하우와 철저한 현지 조사, 현지 당국 및 주민과의 협력이 있다. 한·인니산림협력센터는 이탄지 복원을 위해 현지 대학·기업 등과 협력해 현장조사를 시행하고, 이탄지의 수량과 토양 등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거쳐 식재 수종을 결정했다.
복원사업에서 주민 참여도 중요한 고려 요소였다. 이탄지 훼손은 주로 주민들에 의해 이뤄진다. 농사를 짓기 위해 이탄지에 있는 물을 빼고 불을 놓아 개간하는 과정에서 대형산불이 발생하곤 한다. 이탄지 보호 필요성에 대한 주민들의 공감대나 대체 소득 보장 없이는 훼손을 막기 힘들다. 론드랑 이탄지보호림에 자리한 10개 마을을 대상으로 주민 교육을 진행하고, 양계·양어장이나 염소농장 등을 운영할 수 있게 지원했다. 복원사업을 위해 마을 주민들이 직접 묘목을 키우고, 재조림 과정에도 참여할 수 있게 했다.
론드랑 이탄지보호림 인근 라와사리 마을에 사는 주민 마흐풋은 “과거에 숲이었던 곳이 화재로 개활지가 된 이후 묘목을 함께 키우고 재조림 사업에 참여하면서 다시 우거진 숲이 되는 모습을 지켜봤다”며 “한국 정부의 도움으로 주민들은 마을에서 양계장과 양어장을 운영하며 일정한 소득을 갖게 됐고, 잃어버린 숲도 되찾게 된 것에 크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론드랑 이탄지보호림 복원사업은 한국 정부가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으로 33억원을 투입해 시행했다. 복원사업 지역은 전체 보호림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이탄지 복원사업의 성공적 모델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사업은 2022년 국무조정실이 선정한 ODA 우수 사례로 꼽혔다. 2023년까지 1차 사업이 마무리됐고, 올해부터 72억여원을 투입해 5년에 걸친 2단계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2단계 사업에서는 복원 대상 지역을 확대하는 동시에 산불관리 등 재난 예방 시스템 구축도 병행할 예정이다.
안드리 유스하르 잠비주 산림국장은 “최근 기후변화로 재난이 잦아지는 상황에서 이탄지 복원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며 “한국과의 협력사업이 좋은 성과로 이어졌고, 기후변화가 심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국과 계속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론드랑 이탄지 복원사업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국제협력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 당국은 이탄지 훼손과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2016년 대통령 직속으로 이탄지복원청을 설립했지만, 산림을 체계적으로 복원·보호할 경험과 자원이 부족했다. 이탄지 복원에 필요한 재원과 자원의 상당 부분을 해외 원조에 의존하고 있다. 노르웨이와 영국, 호주 등 여러 국가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이탄지 복원 필요성에 공감해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재정 지원에 더해 산림 생태계 복원 경험도 전수하고 있다.
국제적인 산림협력 배경에는 기후변화나 지구온난화가 국경을 초월한 문제라는 인식이 있다. 차준희 산림청 해외자원담당관은 “인도네시아 이탄지 복원을 위한 국제사회의 꾸준한 노력이 있었으나 성과가 제한적이던 상황에서 한·인니 협력을 통한 이탄지 복원이 하나의 국제적 기준을 제시하는 성과를 냈다”며 “산림청은 현재 라오스와 온두라스 등 개발도상국에서 산림 전용과 황폐화를 줄이고 탄소배출을 저감하는 국외산림탄소축적증진(REDD+) 사업 등을 병행하면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국제협력 사업을 지속·확대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