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디저트·단청 키보드 ‘K기념품’…전통멋 살리고 유행 입히고

2024-11-24

파스텔 색조의 반가사유상이나 찬 음료를 담으면 얼굴이 붉어지는 선비가 그려진 잔. 박물관 굿즈를 뜻하는 ‘뮷즈’를 비롯해 한국 전통문화를 녹여낸 관광 기념품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8월엔 ‘2024 대한민국 관광 기념품 공모전’이 열렸다. 올 한해 대한민국 관광 기념품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2019년부터 수상자 대상 마케팅 교육을 맡아온 이주희 제일기획 제작본부 팀장에게 올해 관광 기념품 트렌드를 들어봤다.

케이(K)-프리미엄=올해 한국 관광 기념품은 질적으로 크게 발전했다. 이 팀장은 “올해 공모전엔 당장 명품 매장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만큼 질 좋은 기념품이 많았다”고 입을 열었다.

가격대부터 차별성이 돋보인다. 올해 대상 수상작인 ‘감선옥 오리지널 세트’는 판매 가격이 11만5000원인 고급 디저트다. 경남 산청 곶감 안에 국산 잣·대추·유자를 버무린 소를 넣어 만들었다. 최근 10년 동안 공모전 대상 수상작은 대부분 3만원을 넘기지 않았고, 가장 비싼 기념품도 5만원가량이었다. 공모전 심사 때 ‘판매 가격이 품질 대비 적절하게 책정됐는지’ 평가한다. 이를 고려하면 올해 기념품은 비싼 가격을 감수할 만큼 품질이 우수했다는 의미다.

‘명품은 디테일에서 나온다’는 말처럼 디테일을 챙긴 고급 마케팅도 한몫했다. 깔끔하면서 꼼꼼한 포장은 물론 사용한 재료와 제작법을 밝히며 기성 기념품과 차별화했다. 은상을 받은 ‘생과방 약과 12구 묶음’은 전통 조청을 사용하고 녹차·흑임자·바닐라 등 다양한 맛을 가미, 전통 디저트를 재해석해 호평받았다. 그 덕분에 2024년 파리 패션 위크에서 손님용 디저트로 채택되기도 했다.

힙 트래디션(hip tradition)=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기념품도 눈에 띄었다. 많은 기념품이 한국 전통문화를 대표하는 나전칠기·단청·색동·청자·백자 등을 활용하면서도 젊은 감각을 입혔다. 이 팀장은 “아날로그문화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층이 과거와 현대문화를 잘 결합한 ‘뉴트로’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며 “반가사유상을 요즘 유행하는 파스텔톤 색상으로 만든 뮷즈처럼 트렌드를 전통과 잘 결합하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기성품이 아니라 자신만의 조합을 직접 만드는 개인화 트렌드도 두드러진다. 한국적 디자인을 현대적 제품과 조합한 ‘한국의 미 단청 기계식 키보드 키캡’이 그 사례다. 키보드에 원하는 키캡을 끼워 개성을 드러내는 시도는 개인화의 상징이다. 단청 무늬를 입힌 이 제품은 아이디어와 예술작품같은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동상에 선정됐다.

전통문화를 현대 기술에 접목하기도 한다. 프리미엄 제품상을 받은 ‘한글 품은 교통 반지’는 ‘안녕하세요’를 전국 팔도 사투리로 반지 표면에 새긴 기념품이다. 교통카드 기능도 있어 지갑이 없어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기에 편리하다. 이 또한 실용성을 추구하는 요즘 문화를 반영한 사례다.

로컬 굿즈=지역 특징을 살린 기념품도 빼놓을 수 없다. 올해 공모전엔 ‘로컬 특화’ 부문이 새로 생기면서 로컬이 중요한 화두임을 보여줬다. 로컬 특화 기념품이 아니더라도 지역식자재나 이야기를 담은 제품이 공모전에 많이 나왔다.

지역상품이 단순 특산물 가공품에 그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좋은 로컬상품은 그 지역에 가고 싶게 만든다. 강원 영월 토마토로 만든 ‘그래도팜 토마로우 스파이시 토마토잼’이 그렇다. 이 잼은 영월에서 기른 유기농 방울토마토에 레몬과 고추를 곁들인 제품으로 동상 수상작이다. 그래도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농장에서 자라는 토마토와 함께 각종 농장 체험과 지역행사 소식이 올라와 있다. 이 팀장은 “지역 콘텐츠를 잘 묶어내면 토마토잼을 사려던 사람이 영월 여행을 가고 싶도록 만든다”고 말했다.

경남 남해 앵강마켓이 만든 ‘떡차: 앵강향차’도 좋은 지역브랜드 사례로 금상을 받았다. 앵강향차는 고려 시대부터 상비약으로 사용한 ‘향약차’를 남해의 농산물과 혼합해 현대적으로 재현한 고체 차(茶)다. 앵강마켓은 지역에서 숙소와 카페를 함께 운영하며 각종 특산물로 기념품을 만든다. SNS엔 남해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 한가득이다. 이런 홍보로 앵강마켓의 기념품을 알게 된 사람들이 남해를 찾아오게 되는 선순환구조가 이뤄지는 것이다.

이 팀장은 “최근 박물관 기념품을 구매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한국적인 것이 힙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며 “진정성 있는 우리 지역 이야기가 담긴 기념품이 더 많이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적인 물건이 가장 가치 있다고 여기는 문화가 점차 퍼지는 오늘날, 뻔한 선물 대신 한국적인 기념품을 선물해보는 건 어떨까.

정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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