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부터 노인까지 감염병 창궐 우려
백일해 신고건수 2년새 1546배 증가
코로나19 팬데믹 방역 조치가 해제된 이후 수두, 홍역, 백일해, 성홍열, 장내세균(CRE), 매독 등 감염병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19 기간 자연 면역력이 전반적으로 약해진 가운데, 방역 조치 해제 이후 느슨해진 분위기를 타고 전염병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아동에게는 수두와 홍역, 성홍열, 백일해가, 노인에게는 그 어떤 항생제도 듣지 않는 CRE 감염증이, 성인에게는 현재 일본과 미국에서 유행 중인 매독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의료현장에선 “아비규환 사태를 맞지 않으려면 정부가 고삐를 세게 당기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문한다. 하지만 의정 갈등 여파에 따른 의료 공백과, 정치적 혼란이 초래한 리더십 위기로 강력한 방역 대책을 펴는 데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백일해 신고건수 2년 만에 1546배↑
18일 더불어민주당 김현정 의원실이 질병관리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수두 신고 건수는 2022년 1만8547건에서 2024년 3만1583건으로 2배 가량 증가했다.
홍역은 같은 기간 0건에서 49건, 백일해는 31건에서 4만7928건, 성홍열은 505건에서 6550건, CRE감염증은 3만548건에서 4만2820건, 매독은 401건에서 2798건으로 늘어났다.
사라졌던 홍역이 2년 만에 국내에 재등장하고, 백일해는 1546배, 성홍열 13배, CRE감염증 1.4배, 매독 7배 가량 증가한 것이다.
집단 생활을 하는 아동에게는 수두와 성홍열, 백일해가 파고들고 있다. 수두는 온몸으로 퍼지는 발진과 미열을 동반하는 2급 감염병으로, 환자의 수포액과 직접 접촉하거나 환자의 호흡기 분비물을 통해 전파된다. 전염성이 강해 학교나 학원 등 밀폐된 장소에서 감염자와 함께 생활하면 ‘빛의 속도’로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 집단생활을 하는 12세 이하 어린이들의 발병률이 높다.
‘백일 간 기침을 한다’는 데서 이름 붙여진 백일해는 지난해 국내에서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영아 사망 환자가 발생했다. 현재 유행이 지속 중으로 의료계에선 올해 소아 환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실상 사라졌다고 인식된 성홍열(Scarlet fever)도 몸풀기를 하고 있다. 성홍열은 1980∼90년대 국내에서 유행하다가 1990년대부터는 연간 100명 내외로 신고되는 등 사라진 감염병으로 여겨졌으나 최근 무서운 확산세를 보이고 있다.
◆해외여행 전 홍역 백신 접종해야
노인을 중심으로는 ‘슈퍼세균’인 CRE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요양병원 등에서 장기적으로 집단 생활을 하는 노인을 대상으로 최근 집중 발생하고 있다.
CRE 감염증은 중증 감염 등에 주로 쓰이는 카바페넴계 항생제에 내성을 지닌 세균 감염질환이다. 항생제의 무분별한 사용과 오용이 주로 원인으로, 특히 요로감염과 신우신염 환자에게 무분별하게 항생제가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민권식 인제대 부산백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한국 의료가 세계 톱 수준이지만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선 후진국 수준인 분야가 있다”며 정부의 항생제 내성 관리 예산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일반 성인에게선 매독이 퍼지고 있다.
일본과 미국, 유럽의 환자 수 급증과 맞물려 국내 환자가 늘어난 것으로 당국은 분석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2020년 4급으로 낮췄던 매독을 최근 3급 감염병으로 상향 조정했다.
일본은 매독 감염자 수가 2013년 1000여명에서 2022년 1만3228명으로 13배 급증했고, 미국과 유럽도 갈수록 감염자 수가 늘고 있는 추세다.
보건당국은 “매독은 초기 치료가 중요한 만큼 증상이 의심되면 반드시 인근 병원을 찾아달라”고 당부했다.
당국은 아직 국내 신고 건수(49건)는 미미하지만 확산이 우려되는 홍역에 대해서도 “지난해 감염된 49명 모두 해외여행을 다녀오거나 여행객과 접촉한 사람들이었다”며 “여행 전 백신을 접종하고, 여행 중에는 방역수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또 “영아의 경우 홍역에 걸리면 폐렴·중이염·뇌염 등 합병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 감염되지 않도록 더욱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정 의원은 “국무조정실은 새로운 팬데믹에 대비해 ‘방역체계 선진화’를 국정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며 “독립적인 전문가 자문기구 설치와 감염병 대응을 위한 중앙·지역 거버넌스 활성화, 방역통합정보시스템과 감염병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 등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급증하고 있는 어린이와 노인 등 감염병 취약계층에 대한 예방 대응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며 “미국, 일본 등 주변국에서 극성을 부리는 매독 등 성병이 국내에서도 유행하는 만큼 촘촘한 방역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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