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 "상대를 적이 아닌, 거래 상대로 봐라"

2025-02-13

6일 서울 종로구 총무원 청사에서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을 만났다. 그의 최우선 관심사는 ‘선(禪)명상’이다. 종단 차원에서도 명상에 한껏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이유가 궁금했다. 우선 진우 스님의 출가담부터 물었다.

왜 출가하셨나.

“강원도 강릉이 고향이다. 초등학교 6학년 마치고 바로 절로 갔다. 따지고 보면 일종의 ‘강제 출가’였다.”

뜻밖의 대답이다. 왜 강제 출가인가.

“제가 3대 독자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사업 등으로 무척 바빴다. 보다 못한 조부모께서 ‘3대 독자 대우를 안 하다’며 데려가 직접 키우셨다. 할머니는 불교에 신심이 깊은 대보살이었다. 다니시던 절의 주지 스님이 ‘이 아이는 스무 살까지 절에서 커야 좋다’고 말했다. 그렇게 출가해 절에서 중ㆍ고등학교에 다녔다. 내 뜻과는 상관이 없었다.”

절집 생활, 가보니 어땠나.

“새벽에 일어나 대중 공양(식사)을 준비했다. 법당 청소에 빨래까지, 행자 생활은 힘들었다. 어떻게 3대 독자를 절에 보낼 수가 있나. 분명 친할머니가 아닐 거다. 몇 년간 원망도 하고 오해도 했다. 얼른 스무 살이 되어서 세상에 나갈 꿈만 꾸었다.”

진우 스님은 고교 시절 공부를 곧잘 했다. 궁금한 것도 많았다. 불교 서적은 안 읽어도, 장 자크 루소와 파스칼 등 서양 사상가들의 철학에 심취했다. 매일 대학노트에 자신의 사유를 서너장씩 쓸 정도였다. 그러다가 생각지도 못한 사고를 당했다.

“고1 때였다. 평행봉 운동을 하다가 손목을 심하게 다쳤다. 힘줄이 늘어나 아무리 펜을 잡아도 글씨가 제대로 써지지 않았다. 글을 제대로 못 쓰니 공부도 안 됐다. 나는 절망했다. 희망이 없었다. 심지어 죽어버릴까 생각도 했다. 우울증의 끝판이었다. 그러다가 춘원 이광수의 『원효대사』를 읽었다. 그 책이 내 삶을 바꾸었다.”

어떻게 바꾸었나.

“원효대사가 어떤 분인가. 요석 공주가 어떤 분인가. 나라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걸 내던지고 원효 대사는 거지 굴로 갔다. 거지들과 함께 생활하며 무애행(無礙行)을 했다. 충격이었다. 당시 나에게는 ‘거대한 자유’로 읽혔다.”

거대한 자유, 어떤 건가.

“아, 꼭 좋은 환경이 구비된 곳에서만 인간이 즐겁거나 행복한 것은 아니구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삶이야말로, 정말 좋은 삶이구나. 그걸 깨우치게 됐다. 이까짓 글씨 좀 못 쓰면 어때. 놓아버렸다. 그랬더니 극복되더라.”

고교 1ㆍ2학년 때 읽은 황산덕(전 법무부 장관) 법사의 『중론송』과 신소천 스님의 『금강경 강의』는 불교를 더 깊이 알게 했다. “용수 보살의 공(空) 사상을 읽으며 인간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기가 막히게 높은 차원이 있음을 알게 됐다. 『금강경 강의』를 읽을 때는 찌릿찌릿했다.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우리가 굳이 색(色)과 공(空)을 구분할 필요가 없겠구나. 그게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더라. 이 때문에 지금의 양자물리학도 어렴풋이 깨닫게 됐다.”

막상 스무 살이 되자 진우 스님은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대신 강원도의 오대산 상원사 선방을 찾아갔다. “우울증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가보았다. 궁금했다. 인간은 왜 괴로워해야 하는가. 이 괴로움은 어디서 오는가. 강한 의문이 있었다. 나는 근원적인 솔루션을 원했다. 그 길이 참선이더라.” 진우 스님은 상원사 선방을 나온 뒤에도 전남 담양 용흥사 몽성선원에서 10년간 선 수행을 했다. 지금도 역대 총무원장을 통틀어 ‘선(禪)명상’을 가장 강조한다.

우리에게 왜 명상이 필요한가.

“세상은 상대적이다.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 건강하면 반드시 병이 든다. 행복이 있으면 반드시 불행이 온다.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하나가 생기면 다른 하나가 동시에 생긴다. 시차만 있을 뿐이다. 해 뜨는 시간과 해 지는 시간이 다르듯이. 인류가 즐거움과 행복을 추구하는 한, 괴로움과 불행도 올 수밖에 없다.”

그런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괴로움과 즐거움은 서로 의지한다. 하나만 없앨 수는 없다. 괴로움을 없애고 싶은가. 그럼 즐거움도 없애야 한다. 불교에서는 그 자리를 ‘중도(中道)’라고 부른다. 생사고락(生死苦樂)이 사라지는, 평온의 자리다. 그걸 찾아가는 길이 선명상이다.”

현대인은 다들 먹고살기 바쁘다. 명상을 하면 어떤 이로움이 있나.

“운동선수가 연습을 어떻게 하나. 실전처럼 한다. 그럼 능률이 오른다. 실전에 가서는 어떻게 하나. 마음을 비우고 연습처럼 한다. 그럼 연습 때 쌓은 실력이 마음껏 발휘된다. 명상도 똑같다."

어떻게 똑같나.

“평상시에 마음을 비우고 고요를 익힌다면, 실제 삶에서 급박한 일을 당할 때 실력이 나온다. 예전과 달리, 마음의 여유를 갖고 지혜의 안목으로 대처하게 된다. 삶의 문제를 더 수월하게 풀 수 있다.”

총무원 청사 밖에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우리 사회는 비상계엄 사태로 혼란스럽다. 진우 스님이 생각하는 해법을 물었다.

“상대를 적으로 보면 내가 다 가져야 한다. 조금도 양보할 수가 없다. 그런데 다 가지려고 하다 보면 다 잃을 수가 있다. 따지고 보면 상대도 나와 같은 배를 탄 이웃이다. 정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면 차라리 ‘거래의 상대’로 봐라. 그래야 주고받고 가 된다. 그래야 대화와 타협이 가능해진다. 반은 가지고 반은 내준다고 생각해라. 보다 품격 있는 정치가 가능해진다.”

이런 혼란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제는 1987년 개헌의 결과물이다. 40년 다 돼 간다. 이 시대에 안 맞는 옷이다. 국민적 합의와 개헌을 통해 옷을 바꾸어줘야 한다. 국방과 외교는 대통령이, 내치는 총리와 내각이 맡아서 권력을 분산하는 정치 시스템을 꾸려야 한다. 좀 더 품격 있는 정치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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