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전세대출 규제 강화 여파로 전국 주택 전세가격이 하락하는 가운데 기존 전세 보증금에 맞춰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집주인들이 증가하면서 이른바 ‘역전세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13일 법원 등기정보광장의 임차권 등기명령에 의한 집합건물(아파트·연립·다세대주택) 임차권 설정 등기 신청 건수는 9월 대비 10월에 전국적으로 크게 늘었다. 임차권 등기명령은 전월세 계약 기간이 종료됐지만 집주인이 임차인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때 임차인이 등기부등본에 미반환된 보증금 채권이 있다는 사실을 명시하는 제도다. 임차인의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법원에서 보장해주는 장치로 신청이 늘었다는 것은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집주인이 증가했다는 의미다.
지난달 서울 지역 임차권 설정 등기 신청 건수는 791건으로 전월(591건)보다 200건 증가했다. 경기 지역도 지난달 1009건의 임차권 설정 등기가 신청돼 전월(861건)에 비해 늘었으며 부산 지역도 623건으로 전월(360건)보다 신청 건수가 많아졌다. 올해 상반기 집값 상승과 함께 전세가격도 올라가며 임차권 설정 등기 신청 건수는 감소세였으나 지난달부터 전세가 상승 폭이 감소하면서 임차권 설정 등기 신청 건수가 증가로 돌아섰다.
특히 서울 지역의 경우 25개 구 중 19개 구에서 임차권 설정 등기 신청 건수가 증가했다. 저가 빌라 주택과 오피스텔이 밀집한 강서구(128건→174건), 금천구(48건→63건)뿐만 아니라 강남구(17건→26건), 서초구(7건→23건) 등에서도 해당 건수가 대폭 늘었다.
이 같은 현상은 정부의 대출 규제 강화에 따른 전세가격 하락 영향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9월 이후 가계대출 관리 압박에 은행권이 가산금리를 올려 전세자금대출 이율이 높아진데다 전세자금대출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편입이 논의되면서 전세가격은 2년 전보다 낮아졌다. 강남구 도곡동 삼성래미안 전용면적 84.89㎡는 지난달 12일 12억 5000만 원에 전세가 계약돼 직전(14억 원) 대비 1억 5000만 원이나 떨어졌다. 강서구 화곡푸르지오 전용 156.87㎡도 지난달 14일 직전(9억 2000만 원)보다 1억 원 낮은 8억 2000만 원에 거래됐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다방이 2022년 3분기와 올해 3분기 동일 주소지와 면적의 전세 거래를 비교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 강서구는 평균 전세 보증금이 1억 9018만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833만 원 하락해 가장 큰 폭으로 전세금이 떨어졌다. 이어 금천구가 1627만 원 하락해 역전세 비중이 61%를 기록했다. 구로구(1507만 원)와 양천구(1442만 원) 등도 전세금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지난달 강제경매 신청 건수도 증가했다. 9월 342건이었던 서울 집합건물 관련 강제경매 소유권이전등기 신청 건수는 지난달 433건으로 늘어났다. 임차권 등기명령에도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임차인은 전세금반환소송에 이어 강제경매를 진행해야 한다. 강제경매 신청 건수도 서울에서 강서구가 157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주현 지지옥션 전문위원은 “서울 아파트는 대출이자 부담으로 역전세가 확산할 수 있으나 강제경매까지는 안 갈 것”이라며 “기피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연립·다세대 주택은 전세가 하락 폭이 아파트보다 더 크기 때문에 강제경매 건수가 계속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