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엔트로피』

2024-11-26

이동준의 책이야기- 열 번째

이동준은 광주에서 출생했다. 책을 좋아하고 공상을 많이 한다. 현실로 돌아온지 얼마 안 됐다. 비판적인 사고를 하지만 동시에 긍정의 힘을 믿고 있다. 호기심도 많아서 여러가지 일에 관심이 많고 치과의사로서도 보람을 느끼고 있다. 순진하진 않지만 순수한 편이며 겁도 없다. 도전을 좋아하고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적극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자신을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조선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목포교도소를 거쳐 현재는 전주교도서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하고 있다.

.- 편집자 주

최근 나는 내연기관 차량을 렌트로 이용하던 방법을 떠나 전기차를 구매하고 더 단순하고 본질적인 삶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환경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금전적인 이유가 더 컸다.

전기차는 유지비가 내연기관 차량보다 훨씬 적게 들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경제적 이득이 크다. 마찬가지로 미니멀리즘도 꼭 필요한 것만 소유하며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방식으로 단순히 공간을 깔끔하게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금전적으로도 효율적인 삶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선택을 하며 나는 자원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 삶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낭비, 특히 음식과 자원을 함부로 다루는 행동은 늘 나를 불편하게 했다. 우리는 모두 제한된 자원을 공유하며 살아가는데 이를 생각 없이 소모하는 태도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큰 문제라고 믿는다.

그런 생각 속에서 제러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라는 책은 나에게 더 깊은 통찰을 주었다. 이 책은 엔트로피라는 물리학적 개념을 통해 현대문명의 성장과 그 이면에 있는 문제점들을 파헤치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자원과 에너지 흐름을 재평가하게 만든다. 전기차와 미니멀리즘이라는 나의 선택이 어떻게 이 엔트로피 법칙과 연결되며 더 나아가 환경과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향한 필연적인 길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엔트로피(Entropy)는 현대과학과 철학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물리학의 열역학 제2법칙에서 처음 정의되었다. 이 개념은 폐쇄된 시스템 내에서 무질서, 혼란, 에너지 분산의 정도를 나타낸다. 독일의 물리학자 루돌프 클라우지우스(Rudolf Clausius)가 이를 정의하면서 엔트로피는 물리학적 세계에서 자연의 방향성을 설명하는 도구가 되었다.

본질적으로 제2법칙이 의미하는 바는 이렇다. 우주 안의 모든 것은 일정한 구조와 가치로 시작해서 무질서한 혼돈과 낭비의 상태로 나아가며 이 방향을 거꾸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엔트로피란 우주 내의 어떤 시스템에 존재하는 유용한 에너지가 무용한 형태로 바뀌는 정도를 재는 척도이다. 엔트로피 법칙에 따르면 지구상이건 우주건 어디서든 질서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그 과정에서 주변환경에 더 큰 무질서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오랫동안 역사가들과 인류학자들은 특정 시기와 장소에서 왜 특정 세계관이 형성되었는가를 연구해 왔다. 특정한 환경의 에너지 상황이 그 시대, 그 환경에서 형성되는 세계관의 기본 틀을 규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의 증명을 시도하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의 세계관을 잠시 접어두고 과거 수세기에 걸쳐 우리의 진실에 대한 인식이 어떤 식으로 형성돼 왔는가를 상세히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랜 기간 동안 인간은 자신의 생활을 구성하는 기준이 되는 틀을 만들어야 할 필요를 느껴왔다.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어떻게’와 ‘왜’를 설명할 질서를 확립해야 할 필요성은 모든 사회에서 발견되는 문화형성의 필수요소였던 것이다.

어떤 사회의 세계관에서든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이러한 세계관이 자신의 행동방식이나 현실인식 방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구성원 대부분이 의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즉 세계관이란 것은 아무도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만큼 어릴 적부터 사람들의 마음 속에 철저히 내재화돼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지식과 기술이 축적됨에 따라 세계는 더욱 가치 있는 방향으로 전진해간다고 믿는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또한 개인은 독립된 완결체로서 존재하며 자연에는 질서가 있고 과학적 관찰은 객관적이며 인간은 항상 사유재산을 추구해 왔고 개인간의 경쟁은 항상 있어 왔다고 믿는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은 ‘인간 본성’의 일부이며 따라서 변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다른 사회, 다른 문명, 그리고 역사상의 다른 시점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특성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주장에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이 세계관이 가지는 힘이다. 이 세계관은 우리의 현실인식을 너무나도 강력히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도 있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한다.

현대의 세계관이 형성된 것은 약 400년 전의 일이다. 물론 세월이 지나면서 수없이 수정되고 개선되었지만 초기의 골격은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직도 17세기 뉴턴의 기계론적 우주관의 영향 아래 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뉴턴 역학의 복잡한 여러 측면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뉴턴 역학의 그림자는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뉴턴의 기계론적 우주관은 엔트로피 법칙의 세계관에게 박살이 날 것이다. 먼저 엔트로피 법칙은 역사가 진보의 과정이라는 가설을 파괴하고 과학과 기술이 질서있는 세계를 창조할 것이라는 가설을 파괴한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중세 기독교 세계관이 매우 설득력있는 뉴턴의 우주관으로 대치되었듯이 이제 엔트로피 법칙이 당시의 뉴턴 역학만큼이나 강력한 설득력으로 오늘날의 세계관을 뛰어넘는다.

엔트로피 법칙은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 엔트로피 법칙은 현대세계를 지배하는 진리를 죽여버린다. 그 진리들은 한때 우리에게 안전과 질서의 환상을 심어 주었다. 그러나 이제 그 진리들은 기괴한 거짓말로 전락했고 우리의 존재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므로 엔트로피 법칙이야말로 자유를 향한 탈출구이다.

엔트로피 법칙이 물리적 세계– 모든 것이 유한하고 모든 생물체가 삶의 과정을 마치면 그 존재가 종식되는 세계–만을 다룬다는 것은 중요하다. 엔트로피 법칙은 시간과 공간의 수평적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이다. 따라서 정신적 초월이라는 수직적 세계에 관해서는 할말이 없다. 정신적 차원은 엔트로피 법칙이라는 철칙에 의해 지배되는 차원이 아니다.

정신은 비물질적 차원으로 어떤 경계나 제한도 없다.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관계는 부분과 전체의 관계와 같다. 그리고 부분은 이 전체 속에서 기능하는 것이다. 엔트로피 법칙은 시간, 공간, 물질의 세계를 지배하는 반면 그 자신은 엔트로피 법칙을 생각해낸 정신적 힘에 종속되는 것이다.

어떤 문명이 그 내부의 물질적 세계를 어떻게 구성하는가, 그리고 그 문명이 존재의 물질적 차원에 어느 정도의 중요성을 부여하는가에 따라 정신적 깨달음을 추구하는 행위의 조건이 결정된다. 즉 그 문명의 세계관이 물질적 측면에 기울어져 있을수록 정신적 초월을 지향하는 활동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반면 어떤 문명이 물질적 세계에 덜 집착할수록 인간은 물질세계의 속박을 뛰어넘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심오한 정신적 본질과 하나가 될 수 있다.

열역학 법칙은 물질세계를 지배한다. 인간이 물질적 존재의 틀을 확립하는 데 있어 이 법칙들을 어떻게 다루는가 하는 것은 인간의 정신적 영역이 번영하느냐 쇠퇴하느냐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엔트로피 법칙을 철저하게 이해하는 것은 모든 정신적 탐구가 시작되는 물리적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미래 세대는 우리가 현대라고 부르는 지난 400년간을 역사책에서 읽으면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 것이다. 그들에게는 기계론적 세계관이 매우 유치하게 보일 것이다. 미래 세대는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살 것이다. 우리는 이 패러다임에 적응해야만 한다.

우리는 엔트로피라는 거대한 자연법칙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엔트로피 법칙은 모든 시스템에서 질서가 무질서로 나아가며 이를 되돌릴 수 없음을 알려준다. 이는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과정이지만 인간문명이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려 할수록 이 법칙의 결과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기후변화, 자원고갈, 생태계 붕괴는 모두 우리가 질서를 유지하려는 과정에서 환경에 전가된 ‘비용’, 즉 무질서의 증가로 나타난다.

오늘날의 문명은 이 법칙의 압력 아래 놓여 있다. 우리는 기술적 진보와 과학적 성과로 질서를 유지하려 애쓰지만 이러한 노력은 더 많은 에너지 소비와 환경파괴를 수반한다. 석유,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를 사용해 생산과 소비를 확대하며 문명을 발전시켰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기후변화, 생태계 파괴, 자원고갈과같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결국 현재의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엔트로피의 법칙을 따르는 자연의 경고를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단순히 기술발전에 의존할 것인가, 아니면 더 근본적으로 우리의 생활방식과 세계관을 변화시켜야 할 것인가? 전기차와 미니멀리즘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일부 답이지만 이외에도 여러 실천적 선택들이 엔트로피 증가를 완화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가능하게 한다.

현대문명은 세계화와 대규모 중앙집중적 시스템에 의존하며 발전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에너지와 자원의 대규모 소비를 수반한다. 물리적 거리와 생산규모가 클수록 에너지의 분산과 낭비는 더 커지며 이는 엔트로피 증가로 이어진다.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은 지역화와 공동체 중심의 생활방식이다. 지역에서 생산된 식재료를 소비하는 로컬푸드 운동은 대표적인 사례다. 멀리서 운송되는 식품보다 지역에서 생산된 식품은 에너지 낭비가 적고 환경부담을 줄인다. 더 나아가 공동체 중심의 생활은 대규모 시스템이 초래하는 비효율성을 줄이고 에너지와 자원의 소비를 최소화하는 데 기여한다.

예를 들어 공유경제는 지역화의 연장선에 있는 아이디어다. 공유 차량, 공공 도서관, 공용 오피스 공간과 같은 시스템은 개인이 모든 것을 소유하려는 소비중심적 사고방식을 대체하며 자원의 낭비를 줄인다. 이는 엔트로피 증가를 억제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 의식을 강화해 더욱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든다.

현대경제는 주로 ‘생산-소비-폐기’라는 선형적 구조를 따르고 있다. 이 과정은 자원을 추출하고 제품을 사용한 뒤 폐기하는 흐름을 반복하며 점차 자원고갈과 환경오염을 초래한다. 이는 결국 자원을 무질서한 상태로 만드는 엔트로피 증가의 대표적 예다.

‘순환 경제(Circular Economy)’는 이 선형적 흐름을 재설계하는 접근법이다. 자원의 낭비를 줄이고 제품의 수명을 늘리며 폐기물을 새로운 자원으로 재활용하는 순환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예를 들어 전자제품 제조업체는 고장이 나도 쉽게 수리할 수 있는 제품을 설계하거나 사용 후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를 사용해야 한다. 일부 기업들은 이러한 순환경제 모델을 도입해 폐기물을 줄이고 새로운 생산자원으로 활용하는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재활용을 생활화하거나 중고제품을 구입하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순환경제에 참여할 수 있다. 이는 자원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며 엔트로피 증가를 억제하는 데 기여한다.

식량생산은 인간이 환경에 미치는 가장 큰 영향 중 하나다. 현재의 산업화된 농업시스템은 대규모 에너지와 자원을 투입하며 토양과 물, 생태계에 막대한 부담을 준다. 이는 결국 엔트로피 증가로 나타나며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감소를 가속화한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은 지속가능한 농업과 식생활의 변화다. 유기농 농업, 소규모 지역농업, 그리고 다품종 재배는 화학비료와 살충제 사용을 줄이고 토양과 생태계를 보호하며 지속가능한 농업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식습관의 변화는 엔트로피 증가를 줄이는 강력한 도구다. 육류 중심의 식단에서 벗어나 채식 중심의 식단으로 전환하면 가축사육과 관련된 에너지 소비와 환경파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1kg의 소고기를 생산하는 데는 약 15,000리터의 물이 필요하며 이는 곡물이나 채소보다 훨씬 많은 자원을 소모한다.

모든 변화의 근본은 교육이다. 현대문명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려면 엔트로피 법칙과 자연의 한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의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과도한 소비와 자원낭비가 환경과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가르치는 것은 필수적이다.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환경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거나 엔트로피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철학적 토론을 활성화하는 것은 젊은 세대가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돕는다. 이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엔트로피 법칙은 우리가 직면한 물질적 세계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하지만 이 법칙은 단순히 좌절이나 체념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이해하고 우리의 선택을 조정함으로써 지속가능하고 조화로운 미래를 만들어갈 기회를 제공한다.

전기차와 미니멀리즘, 지역화와 순환경제, 지속가능한 농업과 교육 등은 엔트로피 증가를 억제하기 위한 다양한 접근법의 일부일 뿐이다. 이 모든 실천은 서로 연결돼 있으며 자연의 법칙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제러미 리프킨은 엔트로피 법칙이 단순히 물질적 세계의 한계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정신적·문화적 세계관을 재구성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보’라는 개념이 과학과 기술발전에 의해 지속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엔트로피 법칙은 이러한 믿음이 환상에 불과하며 진정한 진보란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전환은 단순히 기술적 해결책을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즉 세계관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해야 하는 문제다. 인간이 무한한 자원을 소유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 자연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라는 생각은 엔트로피 법칙에 의해 부정된다. 대신 우리는 자원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더 적은 에너지와 자원을 사용하며 질서를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자원과 에너지가 유한한 세계에 살고 있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자연의 법칙을 무시하며 파괴적 성장의 길을 계속 갈 것인가, 아니면 엔트로피의 경고를 받아들이고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으로 전환할 것인가? 이 선택이 우리의 미래와 후손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지를 결정할 것이다.

새로운 세대가 엔트로피 법칙을 이해하고 이 법칙을 바탕으로 한 삶의 방식에서 자유와 창의성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제는 변화를 시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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