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때 마을 사람들은 나보고 ‘저 애는 장님이다, 쓸모없다’고 했다.”
인도 여자 중거리 장애인 육상 선수 락쉬타 라주(24)가 BBC에 밝힌 어린 시절 기억이다. 그런 그가 이제는 아시아 정상급 육상 선수로 성장했고 스스로 “이제는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라주는 인도 남부 외딴 마을에서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났다. 10살 때 부모를 모두 잃고, 청각·언어 장애가 있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그는 “장애를 가진 할머니와 함께여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에게 인생 전환점이 찾아온 건 13살 무렵이다. 학교 체육교사가 “너는 훌륭한 선수가 될 잠재력이 있다”고 격려한 게 시발점이 됐다. “시각장애인인 내가 어떻게 달릴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잠시, 교사는 가이드 러너와 함께 뛰는 방식을 설명했다. 끈(테더)으로 서로 손목을 연결하고, 가이드가 길을 안내하는 식이었다.
2016년 15세에 전국대회에 나간 라주는 라훌 발라크리슈나를 만났다. 중거리 선수 출신인 그는 부상 후 장애인 육상 코치 겸 가이드 러너로 활동 중이었다. 발라크리슈나는 선수 시절 국제무대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가이드 러너로서 라주와 꿈을 이어가기로 했다. 훈련 환경이 열악한 라주를 위해 발라크리슈나는 자비로 뒷바라지하며 2018년부터 방갈로르로 이주해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했다. 발라크리슈나는 “곡선 구간이나 다른 선수가 추월할 때 미리 알려줘야 한다”며 “작은 것 하나하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2018년과 2023년 파라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라주는 2024년 파리 패럴림픽 여자 1500m에 출전했다. 비록 메달 획득엔 실패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를 환영하며 축하 퍼레이드를 열었다. 라주는 “옛날에 저를 비웃던 사람들이 깃발을 흔들며 환영했다”고 환하게 웃었다.
인도의 또 다른 시각장애 육상 스타 심란 샤르마(25)도 패럴림픽 무대를 밟았다. 그는 2021년 도쿄 패럴림픽에서 레인 이탈 실격을 경험한 후 가이드 러너 필요성을 절감했다. 자신과 보폭과 속도가 맞는 파트너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샤르마는 같은 훈련장에서 뛰던 아바이 쿠마르(18)를 만나 짝을 이뤘다. 두 사람은 2024년 세계장애인육상선수권(일본) 200m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단숨에 세계 정상에 섰다. 같은 해 파리 패럴림픽 2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는 인도 시각장애 여성 육상 선수 최초 패럴림픽 메달이었다. BBC는 “가이드 러너들의 처우는 열악하다. 선수와 함께 뛰며 메달을 받아도 안정적인 급여나 장기적인 보장은 없다”며 “가이드 러너들은 선수들이 지급하는 상금 일부와 후원금에 의존하고 있다”고 전했다. 패럴림픽인도위원회(PCI)도 “숙식과 훈련비는 지원하지만, 정규직 일자리 보장은 어렵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