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시원~한 풍자 가득, 마당놀이가 국민연희 아니겠소

2024-11-22

[비욘드 스테이지] ‘마당놀이 세 아버지’ 손진책·박범훈·국수호

올겨울 다시, 마당놀이다. 2020년 막내린 지 4년만에 ‘마당놀이 모듬전’(11월29일~2025년 1월30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으로 돌아온다. 참 별난 운명이다. 1981년 MBC 창사기념 프로젝트 공모에 손진책 연출이 ‘허생전’으로 당선된 이래, 친숙한 고전을 도구로 오늘의 세태를 풍자하는 민중예술로 30년간 인기를 누렸다. 2010년 막을 내리자 웬걸, 2014년 권위의 상징 국립극장이 부활시켰다. ‘국립극장은 주인인 국민과 놀아줘야 한다’는 당시 안호상 극장장의 의지였다. 이후 극장장이 바뀌자 팬데믹을 계기로 중단됐고, 박인건 현 국립극장장이 또다시 부활을 알렸다.

끈질긴 생명력의 원천엔 ‘세 아버지’가 있다. 손진책(77) 연출·박범훈(76) 작곡·국수호(76) 안무다. 연극계와 국악계, 무용계의 아버지이기도 한 이들은 20대였던 1973년 남산 개관 때부터 국립극장과 함께 성장한 ‘남산의 터줏대감들’이다. 각각 국립극단과 국립국악관현악단,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을 지냈다. “내가 여기서 월급받은 첫 남자무용수였잖아요. 기네스북에도 올랐다고 누가 그러던데.”(국수호, 이하 국) “극장장이 누가 됐든 우리가 주인같아요. PD들이 조금만 표정이 안 좋아도 섭섭하고 화가 나죠.(웃음)”(박범훈, 이하 박) “그런 주인의식 때문에 우리가 만든 마당놀이가 여기서 매년 겨울 ‘호두까기인형’같은 국민연희로 정착되길 바라는 겁니다.”(손진책, 이하 손)

마당놀이, 친숙한 고전 빌려 세태 풍자

‘레전드’ 윤문식·김종엽·김성녀가 심봉사·놀보·뺑덕으로 컴백한다니 갸웃한데, ‘춘향전’‘심청전’‘흥보전’을 하나로 엮는 아이디어가 신박하다. 하긴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을 3각관계로 엮은 뮤지컬도 나왔으니. “대표작들을 모아서 분열의 시대에 기운도 모으고, 세 전설도 불러모으고 관객도 다시 모으자는 뜻입니다. 마당의 특성이 세대간 조화기도 하고, 고전이 가진 영원한 힘을 다 뭉쳐보려는 거죠.”(손)“사랑방에서 이사람 저사람이 이야기하는 식이라 재미는 있는데, 연습실은 지금 정신없어요. 심청 했다가 춘향 했다가 막 바뀌니까 그 다음은 뭐지? 싶은 거죠.(웃음)”(국)

마당놀이는 고유명사지만, 움직이는 장르기도 하다. 젊은 시절 ‘우리 연극’ 찾기에 열중했던 손 연출이 국악계와 무용계에서 가장 핫했던 두 예술가를 끌어들여 마당굿을 확장, ‘길놀이-고사-꽃놀이-뒤풀이’ 틀로 만든 거대한 ‘가무악일체’ 양식 안에서 레퍼토리가 돌아간다. “우리 전통 연희가 정통성의 맥을 따지면 부여의 영고 때부터 가무악일체였고, 그게 마당놀이 본질이에요. 우리 민족 DNA 안에 가무악이 있는 것이니, 원형의 회복인 셈이죠.”(손)

세 사람은 마당놀이 전부터 서로의 작업에서 시너지를 내온 50년 지기 예술동지다. 성깔있는 예술거장들이 50년 넘게 우정을 이어오다니 신기한데, 사진 촬영 때 무릎을 쳤다. 박범훈·국수호 선생이 “대충 찍으라”며 딴청을 피우다가도 손 연출의 “웃어라”는 한마디에 바로 협조한다. “옛날엔 예술가가 적으니 우리끼리 품앗이한 건데, 지금까지도 그러고 있네요. 서로 편하고 양해해주는 사이라서 공연이 실패할 가능성은 없는 것 같아. 국수호 춤, 박범훈 곡을 누가 못 자르지만 나는 자를 수 있거든.(웃음) 늘 힘이 되는 친구들이죠.”(손)“싸우기도 해요. 안무 다 해놨는데 며칠 후 다 잘려 있으면 신경질 내지. 작품을 위해서 그랬나보다 하면서도 절대 빼면 안되는 핵심은 다시 살려야 하니까요.”(국)“그럼 또 연출이 받아줍니다. 음악 입장에서 강하게 주장하다 말다툼도 하지만, 결국 연출이 무마해야죠. 사공이 끌고 가는 거니까.”(박)

사실 아이러니다. 가장 민중적인 예술을 기라성같은 ‘국립 예술가’들이 만들다니. 하지만 웬만한 내공 없이 함부로 덤빌 수 없는 게 마당놀이다. 배우와 연주자, 관객의 호흡이 딱 맞아 떨어져야 해서다. “음악 욕심을 부리면 안되요. 소리 자체에 놀이가 들어가게 작곡을 해야 하죠. 음악을 듣고 연기가 저절로 나오게 하려면 작곡가도 배우가 되야 해요. 후배들도 무용극·연극 등 다양한 장르에서 많은 경험을 해야 할 겁니다.”(박)“춤도 똑같아요. 춤만 추던 사람은 마당놀이 안무가 절대 안되더군요. 연극·오페라·창극을 다 섭렵해서 한국적 아이덴티티가 집약되야 호흡과 몸짓이 나오겠죠.”(국)“깊게 파려면 넓게 파면서 시작해야 되거든. 먼저 사람한테 다가갈 줄 알아야 해요. 예술의 본질이 소통이잖아요.”(손)

14년 만에 재등판하는 스타 3인방 윤문식·김종엽·김성녀의 호흡도 관전포인트다. 김준수·유태평양·민은경 등 국립창극단 간판스타들과 합이 잘 맞을까. “속은 훤한데 몸이 안 따라주고 있어요. 세월을 느낍니다.”(손)“일본의 노(能)는 연세 많은 분이 가면 쓰고 등장해 박수 받은 뒤 가면을 벗어 제자를 주거든요. 끝날 때 다시 나와서 가면 쓰고 끝내죠. 우리도 중간쯤 양보하고 나가는 걸로 알았는데, 그분들 욕심 때문에 끝까지 하기로 했다네요.(웃음) 보니까 좀 더듬기는 해도 기가 살아있어요. 절대 후배들에게 안 밀립니다.”(박)

김준수 등 국립창극단 스타도 총출동

마당놀이의 묘미는 풍자에 있다. 80년대 한국에 청문회가 도입되기도 전에 마당놀이 ‘심청전’에서 청문회 형태를 먼저 선보였을 정도고, 2016년 국정농단 비상시국에도 깨알풍자의 정점을 찍었다. ‘모듬전’에도 속시원한 풍자가 나올까. “두고 봐야죠. 풍자는 굉장히 순간적으로 만들어지는 거니까. 그날그날 포지션에 따라 연출지시가 나옵니다.”(국)“마당놀이는 현실을 읽는 재미거든. 살벌하던 군부독재 때도 풍자를 엄청 했고, 정치인들이 와서 웃고 좋아했죠. 그런데 양극화 되면서 오히려 정치풍자가 힘들어졌어요. 지난 정권 때도 그랬지. 이번엔 글쎄, 조심스럽게 못하기도 하고 조심스럽게 하기도 해야죠.(웃음)”(손)

마당놀이에 풍자가 없다면 앙꼬 빠진 찐빵일 터. 마당의 힘이란 ‘지금 여기’에 참여하는 맛이라서다. “마당이란 우리가 두발 딛고 있는 생활현장이에요. 복고가 아니라 가장 ‘업 투 데이트’한 연극이 마당놀이인 거지. 그래서 배우들에게도 신문 안보면 배우 자격 없다, 사회에 눈 뜨고 말할거리를 가지라고 강조합니다. 배우가 할 얘기가 없으면 허접한 광대 노릇일 뿐이죠.”(손)“탈춤도 양반이 종놈한테 얻어맏는 컨셉트였잖아요. 현대로 와서 독재에 억압받던 사람들이 어디다 풀 수 없을 때 마당을 통해 해소했던 거죠. 그래서 국민연희가 될만하다고 봐요.”(국) “우리는 음악적으로도 ‘기승전결해’거든요. 목적이 풀어주는 거예요. 잘났건 못났건 사람은 자기 집착 속에서 풀기를 원하고, 그런 작품을 만드는 게 예술가들의 몫이죠. 정치풍자도 가슴에 맺힌 걸 풀어주는 데 큰 힘이 있을 겁니다.”(박)“어 시원~하다, 그러잖아요.(웃음)”(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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