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연구
2021년 3월 11일. 쿠팡이 뉴욕증권거래소의 오프닝벨을 울렸다. 11년 전 한국서 시작한 이커머스 스타트업이 뉴욕증시 상장기업으로 변신하는 순간. 창업자 김범석 쿠팡 Inc. 의장과 강한승 쿠팡 대표 등 주요 경영진이 요란하게 박수를 치며 자축했다. 거라브 아난드 최고재무책임자(CFO)도 그곳에 자리했다. 김범석 의장의 왼편 끝에 선 그는 오프닝벨이 울린 순간, 불끈 쥔 주먹을 하늘을 향해 연신 뻗어올렸다.
거라브 CFO는 쿠팡이 뉴욕증시에 상장한 이래 분기별 실적발표(컨퍼런스 콜)에 김범석 의장과 함께 빠짐없이 등장한다. ‘쿠팡의 입’이자 명실상부한 쿠팡의 2인자다. 쿠팡 내부에서는 “거라브가 김범석의 대리인으로 통한다”는 이야기가 정설로 굳어졌다. 숱한 인재들이 쿠팡을 거쳐갔지만, 오랫동안 자리를 지킨 이들은 많지 않다. 거라브 CFO처럼 김범석의 리더십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는 인물들, 그들이 쿠팡을 움직인다.
쿠팡연구 7회 핵심질문
Q1. 쿠팡의 핵심 ‘키맨’은 누구인가
Q2. 이들은 쿠팡을 어떻게 움직이나
Q3. 쿠팡, 지금 이대로 괜찮을까
김범석과 함께 쿠팡을 움직이는 3인
쿠팡은 투자 정보 사이트에서 주요 경영진(management)을 5명으로 소개한다. 창업자인 김범석 쿠팡Inc. 의장-거라브 아난드 CFO-강한승 대표-해롤드 로저스 최고행정책임자(CAO)-프라남 콜라리 부사장 순이다. 공식적인 서열이 존재하지 않지만, 쿠팡에서는 대체로 이 순서를 권력의 크기로 여기는 분위기다. 쿠팡의 계열사 대표들이 각자 맡은 사업에만 권한을 행사한다면, 이들은 전사적인 업무 조정에 깊숙이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김범석 의장의 최측근으로 ‘좌 해롤드, 우 거라브’란 말이 나올 정도로 상장 전후 두 사람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면서 “지금은 여기에 한국사업을 총괄하는 강한승 대표까지 3인이 쿠팡의 핵심 인물로 통한다”고 말했다.
김범석 의장의 두터운 신임만큼 이들은 두둑한 보수를 받고 있다. 쿠팡의 2023년 연례보고서(annual report)에 따르면 거라브 아난드 CFO는 지난해 150만 달러(20억원)의 보너스를 받았다. 강한승 대표는 113만 달러(15억원), 헤롤드 로저스 CAO는 85만달러(11억원)을 각각 받았다. 이들은 ‘상장 대박’에도 나란히 함께 했다. 쿠팡이 상장 당시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거라브 아난드 CFO는 126만7500주, 헤롤드 로저스 CAO는 82만4000주, 강한승 대표는 60만524주의 스톡옵션을 각각 받았다. 이를 통해 50억~100억원에 이르는 수익을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① 아마존 출신 재무통 거라브 CFO
‘우리는 아마존과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쿠팡이지만, 사업 초기만 해도 그들은 아마존의 방식을 철저히 따랐다. 일하는 방식부터 조직문화, 물류 시스템 구축까지 아마존의 방식을 차용했다. 쿠팡은 초기에 아마존 출신의 직원을 많이 뽑고 많이 내보냈다. 쿠팡에서 인사 업무를 담당했던 관계자는 “어떤 회사의 시스템을 가져오는 가장 확실하고 간단한 방법은 그곳의 인재를 영입하는 것이다. 쿠팡이 아마존 출신 영입에 공을 들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입한 인사의 능력이 기대치에 못미치는 경우도 많다. 많이 뽑고 그만큼 많이 내보낸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거라브 CFO 역시 아마존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하지만 쿠팡을 스쳐간 숱한 아마존 출신 직원들과는 좀 달랐다. 쿠팡에 재직 중인 외국인 임원 중에 거라브 CFO는 입사 시점이 가장 빠른 축에 속한다. 2017년에 쿠팡에 합류한 그는 글로벌 이커머스 부문 CFO를 시작으로, 최고운영책임자(COO)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인도 뭄바이 공대 출신인 그는 2007~2014년까지 아마존에서 재무를 담당했으며, 인도의 아마존격인 ‘플립카트’에서도 일했다.
플립카트는 아마존 출신 엔지니어가 설립한 후 월마트가 2018년에 인수한 기업이다. 아마존은 인도에도 진출한 상태지만 토종 이커머스 플립카트가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커머스업계 관계자는 “거라브는 세계 1위 이커머스 기업 아마존에서도, 그 아마존으로부터 아성을 지켜낸 플립카트에서도 모두 일한 경험이 있다. 아마존을 따라가면서도 향후 글로벌 이커머스 경쟁을 준비해야 하는 쿠팡으로서는 최적의 영입 인재였던 셈”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