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산 것들을 불러내는 수작
아마추어 소년들의 연기 뛰어나
전쟁과 인간에 대한 질문 담아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영화 '여름정원'은 잊고 살았던 것들을 불러내는 영화다. 유년 시절의 추억과 여름날의 기억들을 소환한다. 블록버스터 영화에 길들여진 우리의 입맛을 반성하게 만들기도 하는 작지만 아름다운 영화다.
1980년대 일본 영화 뉴웨이브를 이끌었던 소마이 신지 감독의 1990년대 대표작인 '이사'와 함께 주목받는 영화다. 유모토 가즈미의 소설 '여름이 준 선물'이 원작이다. 일본 간사이(関西) 지방의 여름을 배경으로 소년들을 주인공으로 한 성장 서사다.

영화의 주인공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세 친구(기야마, 가와베, 야마시타)다. 이들은 야마시타의 할머니 장례식을 계기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에 죽는 순간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다. 결국 동네에서 홀로 사는 괴짜 노인의 죽음을 지켜보기로 한다. 이 노인은 폐가처럼 버려진 집에서 며칠에 한 번씩 편의점을 다녀오는 일 외에는 두문불출한다. 세 소년은 집요하게 괴짜 노인을 관찰하며 여름방학을 맞는다.
과거의 상처로 세상과 담을 쌓았던 노인은 조금씩 아이들에게 문을 열면서 세대를 초월한 우정이 싹튼다. 세 소년도 저마다의 이유로 삶이 녹록지 않다. 생선가게나 물려받으라고 말하는 부모와 살고, 아버지의 부재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노인의 죽음을 기다리던 아이들은 방치된 채 버려져 있던 노인의 집을 청소하면서 생기를 불어넣는다. 무성했던 잡초를 뽑고, 깨진 유리창을 다시 달고, 지붕에 페인트를 칠한다. 그러면서 노인과 아이들은 서로의 문을 연다.
2차 대전 당시 참전했다가 필리핀에서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돌아온 노인에게 아이들은 미래이자 희망이 됐다. 순수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세 소년의 관찰이 소년들과 노인 사이의 우정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저 여름의 정원을 둘러싼 소품처럼 보였던 영화는 노인이 마음의 문을 열고 소년들에게 엄청난 비밀을 털어놓으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된다. 삶과 죽음, 가족과 관계, 전쟁과 인간의 이야기로 발전한다.

결국 노인은 소년들과 함께 가꾼 정원에 코스모스가 만개할 무렵 세상을 떠난다. 죽음이 궁금했던 아이들도 노인의 죽음을 통해 생명의 순환과 삶의 소중함을 체험하며 한 뼘씩 성장한다. 여름 정원에 날아다니는 나비는 삶과 죽음의 사이를 오가면서 윤회를 이야기한다. 노인(미쿠니 렌타로)은 자라나는 세대(소년)들을 통해 구원을 얻고 편안하게 눈을 감는다. 이 영화가 단순한 성장 서사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유다.
'여름정원'이 뛰어난 이유는 연기 경험이 없는 아마추어 아역 배우들로 우리네 삶의 고단함과 그 속에 숨은 아름다움을 펼쳐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가와베, 야마시타 역을 맡은 오 타이키와 마키노 겐이치는 이 작품이 처음이자 마지막 출연작으로 남았다. 괴짜 노인 덴포 키하치 역에는 베테랑 배우 미쿠니 렌타로가 출연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초등학생이라면 그저 학원을 오가는 아이들쯤으로 여기는 우리의 풍토와는 사뭇 다르다. 촬영은 '러브레터',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등으로 잘 알려진 시노다 노보루 촬영감독이 맡아 무성한 녹음과 여름 햇살을 아름답게 포착했다. 브라질 출신의 세계적인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 세르지오 아사드의 음악이 더해져 잊을 수 없는 여름의 기억을 스크린에 깊이 새긴다.
2024년 4K로 복원된 '여름정원'은 일본, 대만, 프랑스 등 전 세계 순회 개봉을 마쳤으며, 2025년 8월 6일 국내 관객과 만난다. 영화가 끝날 무렵이면 너무나 일찍 세상과 작별한 소마이 신지(1948~2001년) 감독이 그리워진다.
oks3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