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안양의 한 에어컨 냉매가스 충전업체는 평소 6만~7만원이었던 가정용 에어컨 출장 비용을 올여름 10만~11만원 수준으로 올렸다. 예전에도 여름철 출장 비용은 평소보다 비싼 편이었는데, 최근에는 냉매가스 원가까지 오르며 가격을 더 높여야 했다. 업체 사장 A씨는 “냉매 가스통(20㎏) 한개의 소매가격이 지난해보다 3배가량 올라 20만원 가까이한다”며 “원가와 인건비 모두 고려한 것”이라고 전했다.
올들어 처음으로 서울에 폭염경보가 내리는 등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찾아온 가운데, 에어컨과 냉장고 등에 쓰이는 냉매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다. 대부분을 중국에서 수입하는 냉매 현지 가격이 계속해서 오른 영향이다.

7일 화학제품 유통업계 자료에 따르면 자동차 등의 에어컨 냉매로 많이 쓰는 ‘R-134a’ 가스의 중국 시장 가격은 올해 1월 t당 4만4438위안(약 848만원)에서 5월 4만8438위안(약 924만원)으로 9% 상승했다. 특히 가정용 에어컨에 냉매를 채울 때 가장 흔히 쓰는 ‘R-410a’의 중국 시장 가격은 1월 t당 4만3875위안에서 5월 4만8750위안으로 11.1% 상승했다. 업계 관계자는 “냉매는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하는데, 따로 정해진 국제 가격이 없고 중국 내 가격이 오르면 그대로 수입 가격도 따라 오른다”고 설명했다.
냉매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최근 기온 상승으로 중국 내 냉매 수요가 많아지고, 원가도 상승했기 때문이다. 현지의 한 산업컨설팅 업체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6월 (중국의) 에어컨 생산량은 2053만 대로 전년 동기 대비 11.6%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그중 국내(중국) 판매량은 29.3%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중국에서 전기차 등 자동차 생산과 판매가 늘어나고 있는 점 역시 냉매 수요를 끌어올리고 있다. 보고서는 “R-134a와 같은 인기 냉매 제품 공장은 최대 생산능력으로 가동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공급 부족으로 인해 시장이 마비되는 현상이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도 냉매 개발이 가능한 기업이 있지만, 중국 업체의 가격 경쟁력에 밀려 현재는 완제품을 수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최근에 나온 친환경 냉매는 글로벌 화학기업이 보유한 특허 장벽에도 막혀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HFC-134a(냉매 R-134a의 화학물질명) 국내 소비량의 99%는 수입에 의존했다.
국내 냉매 수입사 관계자는 “냉매 가격이 오른다고 당장 에어컨이나 냉장고 가격에 반영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다가오는 가을 이사철에 에어컨 가스를 충전하는 집이나 자동차 에어컨 가스를 주입하는 비용은 바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냉매 수요는 일정 수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따로 비축은 하지 않는다”며 “탱크로리로 수입해서 제습기나 에어컨을 만드는 기업에 소분해서 바로 납품한다”고 설명했다.
냉매는 당장 수급에 차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는 점이 문제다. 중국 내 가격 불안정에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또 중국이 희토류나 핵심 광물처럼 수출 통제를 수단으로 해서 글로벌 공급망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도 리스크 요인이다. 강천구 인하대 제조혁신전문대학원 초빙교수는 “과거 요소수 사태처럼 특정 국가로부터의 수입에 70~80% 이상 의존할 경우 해당 국가의 상황 변화에 따라 직격타를 맞을 수밖에 없다”며 “냉매를 생산하는 다른 아시아 국가로 수입선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냉매와 같이 여전히 중국 의존도가 높은 품목의 공급망 문제에 대해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냉매와 같이 국내 생산을 하지 않는 경우, 다른 나라를 통해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기업에 중국과의 단가 차이를 보조해 주거나 비축하는 비용을 일부 지원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