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멘탈”에 대하여

2024-12-18

한국에서 흔히 사용하는 신조어인 “유리멘탈”은 감정적으로 쉽게 상처를 받거나 스트레스를 잘 받는 사람을 일컫는다. 영어권에서도 유리를 사용하는 비유가 많다. 예를 들어, “breaking the glass ceiling”= “유리천장을 깨다”라는 표현은 장벽을 극복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고, 신데렐라에 나온 “glass slipper”=“유리구두”는 안성맞춤, 또는 특별한 기회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glass wall”=“유리벽”은 특정 역할이나 분야로의 이동을 막는 차별을 의미한다.

우리는 “번아웃”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유리멘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작년 세계치과의사연맹(FDI) 총회에서 치과의사와 번아웃 신드롬에 대한 흥미로운 강연을 들었다. 연자는 영국 치과의사 출신으로 현재 호주 치과의사협회에서 법정분쟁으로부터 치과의사들을 보호하는 자문 팀을 담당하는 변호사이다. 그녀 또한 진료실에서 겪은 스트레스와 심리적 불안에 지쳐 치과의사가 아닌 법조인으로 직업을 변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가 소개한 치과의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번아웃 신드롬(burnout syndrome)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정서적 고갈(emotional exhaustion)을 호소하는 여성 치과의사는 64.4%, 남성 치과의사는 56.7%이고, 70% 이상의 치과의사가 Imposter Syndrome(가면 증후군)을 겪고 있다고 한다.

사전에 따르면, 가면증후군이란 “자신이 이룬 성과나 능력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는 불안감이나 두려움을 느끼는 심리적 상태”이다. 왜 이렇게 많은 치과의사가 이런 증상을 겪고 있는 것일까. 우선 치과진료의 결과가 방사선 촬영을 통해 진단과 기록이 비교적 용이하다는 점은 큰 장점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단점으로 여겨질 수 있다. 누구나 진료를 하다 보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다른 의료분야와 다르게 우리는 꽤나 루틴하게 치근단, 파노라마 엑스레이로 기록을 남기는 것이 익숙하고, 결과가 뛰어났던 진료도, 스스로 부정하고 싶은 진료도 적나라하게 남아있게 된다. 그리고 그 환자가 다른 병원을 내원하였을 때, 다른 치과의사가 그 결과를 보고 다소 가볍게 이전 진료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점들이, 치과의사들을 가면증후군에 더 취약하게 만든다고 한다. 사실, 이 현상의 요점을 보면, 본인이 진료하는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에게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발간한 기사에 따르면, 의료진 번아웃으로 인해 초래되는 경제적 손실은 연간 46억 달러(약 6조 5000억 원)이라고 한다. 이러한 경제적 손실뿐만이 아니라, 의료진 과로로 인한 오진은 열 케이스 중 하나이고, 5%의 인적오류는 의료진이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면 개선될 수 있다고 한다. 치과의사를 비롯한 의료진에게 강요되는 압박감이 많고 진료환경이 쉽지 않은 우리나라이지만, 가끔은 휴식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다양한 일로 세계 여러 나라의 치과의사들과 소통을 많이 해왔지만, 그 중 우리나라 치과의사들이 가장 부지런하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나라 치과의사들은 한 시간에 한 환자만, 고 수가를 받으며 여유롭게 진료할 수 있는 미국과 너무나 다른 진료환경에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시작하는 학회 대강연장을 가득 채우고, 새로운 술식을 배우기 위한 여러 세미나와 강연 등록에 아주 열정적이다. 분명 그 열정과 노력은 높이 평가 받아야 마땅하다.

유리는 연약하기도 하지만 단단하기도 한 물질이다. 급격한 온도변화를 견디고 빛을 통과시킨다. 여러모로 힘들 수 있는 요즘이지만, 단단해지기를 바란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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