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멋대로 국정’의 끝판왕, 의료대란 9개월

2024-11-06

지난 2월6일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 규모 발표로 촉발된 이른바 의료대란이 만 9개월을 지나고 있다. 현 상황은? 한마디로 기가 막힌다.

의료대란 뒷수습을 위해 2월부터 9월까지 쏟아부은 건강보험 재정만 2조원이 넘는다(국회예산정책처). 앞으로 얼마가 될지는 가늠조차 어렵다. 최근 정부는 의료개혁과 관련해 2028년까지 10조원 이상의 건보재정 투자를 추진한다는 계획까지 밝혀, 건보재정은 1~2년 내에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된다. 의사들이 떠나고 있다. 전공의 9000명가량이 수련병원을 떠났고, 전공의들의 집단사직 이후 병원을 지키던 전문의들도 필수의료 분야를 중심으로 줄줄이 병원 문을 나서고 있다. ‘의료개혁’이라고 이름 붙인 독단적 국정운영의 처참한 성적표다.

의료대란 사태는 전 국민의 근심거리가 됐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아프지 말라”는 말이 인사가 될 지경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10%대로 주저앉은 대통령 지지율, 부정평가의 이면엔 의료대란이 주요 순위에서 빠지지 않는다. 의료대란은 윤석열 정부 무능의 상징이 되고 있다. 전국 35개 지방의료원 중 의사 구인난으로 개설한 진료과목을 모두 운영하는 곳은 3분의 1에 불과하다. 안 그래도 가뭄이던 필수의료과의 전문의 배출은 아예 손꼽을 정도로 줄었다. 필수의료과 전공의 중 수료 예정자는 응급의학과 1명(2024년 3월 임용 608명), 내과 91명(1922명), 외과 19명(447명), 산부인과 12명(474명) 등이다.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겠다던 목표와 정반대의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대체 뭘 위한 의료개혁인가.

당초 2000명은 요지부동인 듯 보였다. 2000명의 근거가 무엇이냐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정부는 2000명은 최소한의 증원 규모로 단 한 명도 줄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총선 이후 2025학년도에 한해 증원 인원의 50~100% 범위에서 자율적으로 감축 모집을 허용했고, 증원 규모는 1500명 선으로 조정됐다. 휴학 불허 방침을 유지하던 교육부는 2학기도 절반이 지난 지난달 29일에야 조건 없는 승인으로 입장을 바꿨다. 앞서 지난 7월에는 유급 판단 시기를 학기 말에서 학년 말로 변경하고 F학점을 받아도 유급에서 제외키로 했다. 꼼수와 변칙의 연속이다. 지난달 6일엔 의대 교육과정을 5년제로 단축할 수 있다는 안을 내놨다가 후폭풍이 거세자, 이틀 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강제성이 없다. 단축 못하면 안 해도 된다”며 물러섰다. 원칙은 애초에 무너졌다.

일주일 후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다. 의료대란 와중에 의대 지원 수험생은 폭증세를 기록하고 있다. 의료계에선 내년 3월이면 정원이 대폭 늘어난 25학번 4500명에, 올해 휴학하거나 유급한 학생들이 가세해 최대 7500명을 한번에 가르쳐야 하는 ‘교육 불가능 난장판’을 걱정하고 있다.

교육 상황보다 더 큰 문제는 의대 증원이 향후 10년간 의사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현 사태 해결의 핵심은 의대생과 전공의의 복귀다. 이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전공의, 전문의 배출이 차례로 중단되는 의사 공급 절벽을 맞게 된다. 인턴, 군의관, 공보의 부족 등도 도미노처럼 따라올 것이다. 당장 2025년도 의사 국시 실기 합격자는 불과 266명으로 지난해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실정이다.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교육부를 비롯한 정부의 논리는 입시가 이미 진행되고 있어 의대 증원 규모는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자초한 것이다. 의대 증원 규모 발표 이후 전공의를 비롯한 의료계의 첫번째 요구는 2025학년도 증원 규모 재논의에서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 이를 귀담아듣지 않은 정부가 3개월여 후인 5월31일 입시안을 발표했고, 이제 와서 수험생, 학부모를 볼모로 겁박하는 중이다.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비과학적’인 생각이 의료대란을 불렀다. 장단기 로드맵도, 향후의 파장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도,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입장 조율도 없었다. 명백한 정책 실패다.

의료만이 아니다. 아직도 대통령은 가는 곳마다 ‘4대(의료, 연금, 노동, 교육) 개혁’을 완수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 5일 대통령실은 의대 정원 확대 등 4대 개혁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자화자찬했으니 아연할 노릇이다. 무섭다. 더 이상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의 시스템을 망가뜨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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