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박기' 부추기는 '토지 95% 소유권'
"재개발 수준인 80%로 완화해야 사업 속도"
"지주조합원 제도 법제화로 토지확보 갈등 줄여야"
"업무대행사 등록제·지자체 감독 강화로 투명성 확보"
[서울=뉴스핌] 송현도 기자 = "재건축·재개발 동의율은 75%인데 왜 지역주택조합(지주택)만 95% 소유권을 확보해야 합니까. 이것은 명백한 역차별입니다." (김광수 한국부동산산업학회 정책국장)
무주택 서민의 '내 집 마련' 사다리로 불렸던 지역주택조합(지주택) 제도가 사업 지연과 추가 분담금, 투명성 부족 등의 문제로 조합원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사업 추진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히는 토지 소유권 확보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알박기' 부추기는 '토지 95% 소유권'…"재개발 수준 80%로 완화해야"
27일 오후 2시부터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주택공급 활성화를 위한 지역주택조합 제도개선 정책 세미나'에서는 현행 95%인 사업계획승인 단계의 토지 소유권 확보 요건을 80%로 낮추고, 토지 소유주가 조합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지주조합원' 제도를 법제화하는 등 근본적인 제도 수술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쏟아졌다.
특히 토지소유권 확보 요건 하향 제언이 나온 배경에는 높은 토지 소유권 확보 요건으로 인해 지주택 사업의 추진 동력이 저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김광수 한국부동산산업학회 정책국장의 분석에 따르면, 전국 총 618개 지주택 사업장 중 절반 이상(58.2%)이 초기 단계인 모집신고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립인가 단계는 24.3%, 마무리 단계에 가까운 사업계획승인 단계는 26.5%에 불과했다.

이같이 사업이 지지부진한 원인으로는 지주택 사업의 고질적인 병목 현상이 지적됐다. 특히 조합설립인가(토지 80% 확보) 이후 사업계획승인(95% 확보)까지의 과정이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구간이라는 분석이다. 김 국장이 부산시 102개 사업장을 근거로 분석한 결과, 조합설립인가부터 사업계획승인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050일, 약 3년에 달했다. 김 국장은 "사업 기간의 60~70%가 이 구간에서 소요된다"며 "토지 지주들이 이 95% 규정을 역이용해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는 소위 '알박기'가 발생하고, 이는 고스란히 사업 지연과 조합원의 추가 분담금으로 이어진다"고 비판했다.
특히 그는 재건축(70%), 재개발(75%), 가로주택정비(내년부터 75%) 등 다른 정비사업과 비교해 "지주택만 95%를 요구하는 것은 역차별이며 사업을 가로막는 가장 큰 지체 요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 "땅주인을 파트너로"…'지주조합원 제도' 법제화 주장
토지 소유자가 조합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주조합원 제도'를 법제화해 토지 매입 협상을 원활하게 하고 사업 지연 요인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또 다른 발제자인 김혜겸 변호사(법무법인 영)는 지주택 제도의 실패 원인으로 토지 소유주가 조합원으로 참여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꼽았다. 현행법상 토지 소유주는 다주택자이거나 대형 평수 주택을 소유했을 경우 조합원 자격이 없어, 터전을 떠나야 하는 매도인으로 전락한다.
김 변호사는 "토지 소유자들은 50년 넘게 산 토착 원주민으로, 땅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사람들"이라며 "현행 제도는 이들을 단순히 팔고 나가야 할 존재로 만들어 상호 협력보다 대립 구조를 형성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토지 소유자가 조합원으로 참여해 주택 분양권을 받는 등 상생 관계를 만들고 협력적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국장도 "내 땅이 사업지에 포함돼도 조합원이 될 수 없으니 동의를 안 해주는 것"이라며 "이들에게 조합원 자격을 준다고 해서 형평성에 어긋날 것이 없다"고 힘을 보탰다.
지주조합원 제도는 특히 지주택 사업의 명운을 좌우하는 사전 토지 확보에 큰 장점이 있다는 평가다. 일례로 '부산 서면 e편한세상 더 센트럴'은 기존 토지 소유자들의 지주조합원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빠른 토지 소유권 확보가 가능했다. 김 변호사는 "사전 토지 확보는 사업이 5년 안에 마무리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폐지 아닌 정상화"…업무대행사 등록제·지자체 감독 강화로 투명성 확보
지주택 사업 추진 과정에서의 전문성 결여도 지적됐다. 전문가들은 투명성과 전문성을 담보할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 변호사는 ▲토지 확보 지연 ▲분담금 증가 구조 ▲업무대행사 문제 ▲지자체 관리 부재 등을 실패 원인으로 꼽았다.
이 중 업무대행사와 지자체의 전문성·적극성 부족이 두드러지게 지적됐다. 비전문가가 상당수인 지주택 조합은 업무대행사를 통해 사업 자문을 구하지만, 사업 실패에 대한 업무대행사의 책임 소재 규정이 미비해 무책임한 운영이 비일비재하고 일부는 비리를 저지르기도 한다.
더욱이 업무대행사의 전문성을 검증하는 장치가 없고 조합의 비위를 감독할 체계조차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김 변호사는 "자격 제한 없이 업무대행이 가능하고 실패했을 때 책임을 물을 제도도 없다"며 "(지자체도) 인허가 절차 검토에 국한된 현 제도상 조합 운영 감독 권한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분쟁 조정 기능도 없어 조합원의 피해를 구제할 주체가 없는 상황이 속출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전문성 없는 업무대행사 난립을 막기 위한 등록제 도입 ▲허위 광고 및 조합 자금 유용에 대한 처벌 강화 ▲조합 운영 실태조사 정례화 등 지자체의 행정 감독 강화가 입법 개선 방안으로 제시됐다.
김 국장은 소유권 확보 요건을 80%로 완화하고 지주조합원 제도를 도입할 경우, 사업화 단계 진입 비율이 현재 49%에서 87%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를 통해 약 9만4000가구의 주택을 추가 공급하는 효과를 낼 수 있으며, 이는 창원시 또는 성남시 전체 주택 공급량에 해당하는 규모라고 설명했다. 김 국장은 "사업계획승인 토지 확보 요건을 80%로 완화하고, 잔여 토지는 수용 절차를 병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주택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주최자인 전용기 의원을 비롯해 박문수 한국부동산산업학회장, 김옥진 전국지역주택조합총연합회 회장 등이 참석해 제도 개선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김병기 원내대표와 소병훈 의원 등은 축사를 통해 제도 개선을 위한 국회의 노력을 약속했다.
전용기 의원은 "그동안의 정책이 위험을 줄이기보다 진입장벽을 높여 사다리 자체를 오르기 어렵게 만들었다"며 "지역주택조합이 국민 스스로 집을 만들어가는 소중한 선택지임을 인정하고 '잘 관리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dos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