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원자력추진잠수함 건조를 승인했다. 한·미는 지난 14일 발표한 조인트 팩트시트를 통해 “미국은 원잠 조선사업의 요건들을 진전시키기 위해 연료 조달방안을 포함해 한국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 군의 30년 숙원인 원잠 확보를 위한 첫발을 떼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이와 관련해 2023년 3월 미국·호주·영국이 오커스(AUKUS, 미·영·호 안보동맹) 정상회담에서 발표한 최대 13척의 미국산 원잠 판매 및 건조 계획(오커스 안보협정 필러 1)은 향후 한국의 원잠 도입 과정에서 중요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
2023년 오커스협정 참고할 만
마스가 투자, 미 건조 지원하되
속도 빠른 한국도 병행 추진
‘원잠협정’ 별도 체결이 효율적

미 원잠 건조능력, 연간 1.2척 불과
먼저, 원잠 건조 장소와 관련해 한국은 신속 건조를 위해 ‘한국 내 건조’ 입장이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화오션이 인수한 필리조선소 건조를 언급한 바 있다. 문제는 미국의 낙후된 원잠 건조능력이다. 미 의회예산국에 따르면 미국의 연간 잠수함 건조 능력은 1.2척에 불과하다. 이는 미군 함정 증강 계획과 오커스 협정 이행을 위해 필요한 2.33척에 크게 못 미친다. 자국에 필요한 원잠조차 제때 건조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로 인해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오커스 협정은 위기에 처해있다. 협정에 따라 미국은 2030년대 초까지 최소 3척의 최신 버지니아급(배수량 7800t급) 원잠을 호주에 인도해야 한다. 그러나 미 국방부는 지난 6월 “오커스 재검토는 동맹들이 집단 안보에서 자기 몫을 완전히 책임지도록 하고, 방위산업의 기반이 우리의 수요를 (먼저) 충족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협정 재검토를 시사했다. 다만, 지난달 미·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호주가 계획에 따라 원잠을 받게 될 것”이라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현재 호주는 이행 가능성이 불투명한 미국의 원잠 인도와는 별도로 호주 내 건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협정에 따르면 호주와 영국은 미국의 기술 지원을 받아 원잠을 공동 개발해 각각 자국 조선소에서 건조한 뒤 2030년대 후반 영국에, 2040년대 초반 호주에 첫 원잠을 인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호주는 지난 9월 서부 퍼스의 헨더슨 단지에 원잠 건조와 유지·보수를 위해 향후 10년간 120억 호주달러(약 11조1000억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한국도 호주 사례를 본다면 향후 미국과 한국 내 건조를 병행하는 방식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 조선업 부흥에 15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하지만 국내 건조와 미국으로부터의 핵연료 반입이 속도 면에서는 빠를 수밖에 없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팩트시트 관련 브리핑에서 “잠수함은 국내에서 짓고 원자로도 우리 기술로 할 수 있다”며 “미국으로부터 연료를 받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배수량 5000t급 이상의 원잠을 2030년대 중반 이후 4척 이상을 건조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원잠 도입은 ‘법률적 마라톤’
미국의 핵연료를 공급받기 위한 법적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도 오커스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호주도 한국처럼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두 협정은 모두 미 원자력법(AEA) 123조에 근거한 것으로, 핵무기 확산 방지를 위해 원자력 물질과 기술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조건과 절차가 명시돼 있다. 미국과 호주는 이를 우회하기 위해 기존의 원자력협정 개정 대신 원자력법 91조에 기반해 별도의 협정을 맺었다. 91조에는 미국의 국가 안보 및 기타 특정 조건을 충족할 경우, 의회 승인을 거쳐 예외적으로 핵물질 이전을 허용하고 있다.
지난해 3국은 해군 원자력추진정보(NNPI) 관련 물질과 장비의 합법적 이전을 허용하는 해군 원자력추진잠수함협정(NNPA, Naval Nuclear Propulsion Agreement)을 맺었다. 이 협정을 통해 핵물질과 관련 장비의 호주 이전이 가능하게 됐다. 위성락 실장도 “미국 원자력 관련 법률 91조에 있는 예외조항을 적용하는 오커스 방식이 있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호주가 받을 핵연료는 미국 원잠과 동일한 고농축우라늄(HEU)을 사용하되, 원잠의 수명 내내 교체가 필요 없는 밀봉형 쪽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호주의 핵연료 접근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 것이다. 이는 농축우라늄의 핵무기 개발 전용을 감시·추적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증에도 유리한 측면이 있다.
미국의 중국 견제 요구, 변수될 수도
오커스 협정 사례는 호주가 명시적으로 원잠 도입 목적이 대중국 견제임을 밝혔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있다. 이로 인해 미 정부는 물론 핵확산에 부정적인 의회의 협조를 받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대신 중국 외교부는 즉각 “엄중한 핵확산 위험을 초래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의 목적과 취지에 위배되는 만큼 결연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중국 글로벌타임스는 ‘원잠은 호주를 흉가로 만들 것’이라는 제목의 협박성 사설을 게재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중국과의 관계를 감안할 때 호주와 같은 스탠스를 취할 수 없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 이런 한국의 소극적 대중 견제 움직임은 최소 수십 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원잠 확보 과정에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은 최근 중앙일보 기고문에서 “한국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공식 인정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에서 미 의회와 해군은 과연 향후 중국에 맞선 한·미 연합 대응에 한국의 원잠이 사용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게다가 내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이 될 경우엔 미 의회 기류도 한층 강경해질지 모른다. 돌발 변수가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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