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총생산(GDP)의 약 15%, 지역경제의 20% 이상을 책임지며 200만 명 이상의 고용 창출을 담당하는 한국경제의 버팀목이 건설산업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건설 현장 곳곳에서 산업의 붕괴 신호가 울리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신동아건설을 포함한 9개 중견 건설사가 기업회생 절차에 돌입했고, 지난 1분기 종합건설업체 폐업 신고 건수는 200건을 돌파했다. 이 여파로 협력 업체와 자재공급업체 등 수많은 중소기업이 연쇄적으로 위기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특히 지역을 기반으로 한 중소·중견 건설사들은 생존을 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미분양 급증, 폐업 신고도 속출
인력 이탈, 부실 시공…안전 우려
적정 공사비 확보가 최우선 과제

지난해부터 심화한 미분양주택은 지난 3월 기준 약 6만9000호였다. 이 가운데 준공 후 미분양은 2만5000호를 넘었다. 이는 13년 만에 최고치다. 건설업계에서 30여년 일해온 필자는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을 모두 겪었는데 지금처럼 산업 전반이 동시에 얼어붙은 적은 없었다.
건설업체들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코로나19 영향,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른 원자재 가격 급등의 충격이다. 여기에다 실물 경기 침체에 따른 민간건축 물량 실종 상태에서 공공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마저 축소되고 있어 어려움을 가중하고 있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위기 상황이다.
이번 조기 대선에서 선출될 차기 대통령은 건설투자 활성화를 주요 정책과제로 삼아주길 제안한다. SOC 투자 확대와 공공 공사비 산정 기준의 현실화, 민간시장 활성화를 위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위험의 선제적 관리와 유동성 공급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적정 공사비 확보를 건설 경기 회복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추진할 것을 호소한다. 지금 건설업계가 마주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비현실적으로 낮은 공사비다. 업계는 공사원가의 90%도 안 되는 공사비를 15% 이상은 인상해야 적정수준이라고 본다.
최근 정부도 이런 현실을 반영해 공사비 정상화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고사 직전의 건설업을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다. 공사비 산정기준 등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윤이 보장되지 않으면 시공 품질은 물론 인력과 자재 수준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불법 하도급, 부실시공, 안전사고로 이어질 우려가 커진다. 장기적으로는 유지보수 비용 증가, 시민 불편, 인명 피해라는 사회적 비용을 키울 수 있다.
적정공사비 미확보는 건설인력의 이탈이라는 구조적 악순환을 낳고 있다. 단가가 낮다 보니 젊은 기술인들이 현장을 떠나고, 결국 건설산업 고령화와 숙련 기술 단절로 이어져 건설산업이 기반부터 무너지고 있다. 이는 단지 건설산업의 위기를 넘어 국가 인프라의 신뢰 위기다.
사정이 이런데도 제도적으로나 관행적으로 적정 공사비를 보장받기 쉽지 않은 것이 한국 건설산업의 현실이다. 정부는 적정한 투자를 통해 국민이 사용하는 공공시설물의 우수한 품질을 추구하기보다 공사비 절감을 위한 단기 예산 절감에 치중하는 근시안적인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삭감 일변도의 소극적 공사비 정책에 따라 ‘공공공사 시공은 곧 적자’라는 인식이 건설업계에 팽배해 사업 참여를 꺼리거나 재검토하는 업체도 늘고 있다.
민간 공사 부문은 사정이 더 심각하다. 근로시간 단축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규제 때문에 공사비가 상승해도 재정비 사업을 추진하는 조합 측이 공사비 인상을 거부해 공사 중단과 소송이 빈발하고 있다. 도저히 사업성이 나오지 않아 유찰과 사업 지연도 다반사다. 장기 계속 공사에서 총공사 기간이 연장될 경우 추가비용 지급을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국가계약법을 속히 개정해야 한다.
민자사업도 공사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급격한 공사비 상승과 고금리에도 물가변동분을 총사업비에 제대로 반영해주지 않다 보니 주요 사업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GS건설의 위례신사선 사업 포기, GTX-C 착공 지연이 대표적인 사례다.
적정공사비 확보는 단지 건설사 생존을 위한 요구가 아니다. 건설산업은 모든 산업의 기초가 되는 인프라 구축과 국민의 주거 안정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산업이기 때문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손성연 대한건설협회 경기도회 부회장·씨앤씨종합건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