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환자실이나 응급실 등에서 없어서는 안될 ‘아티반 주사제’의 국내 공급이 끊길 위기에 놓이면서 의료 현장에 비상이 걸렸다. 국내 유일 공급처였던 일동제약(249420)이 올해 말 생산 중단을 예고한 데 따른 것이다. 정부는 위탁생산 업체를 물색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과도한 무균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GMP) 강화에 따른 부작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9일 의료계와 제약업계에 따르면 일동제약은 올 5월 주요 대학병원에 아티반주사의 생산 중단을 알리는 공문을 보냈다. 아티반은 벤조디아제핀 계열 향정신성 의약품인 로라제팜 성분의 주사제다. 수술·검사 전 진정, 경련 억제 등의 용도로 임상에서 빈번하게 처방된다. 정부가 퇴장방지의약품으로 지정해 생산원가를 보전해주고 있지만 원료 수급 등의 문제로 반복적인 공급 차질을 겪어왔다.
일동제약은 화이자의 국내 판권을 확보해 1982년부터 아티반 주사제를 독점 공급해왔다. 이 회사가 연내 생산 중단을 결정하자 의료현장의 긴장감은 고조되고 있다. 재고가 소진되면 사실상 대체제가 없기 때문이다. 김태정 서울대병원 중환자의학과 교수는 “아티반은 경련 등의 상황이 수시로 발생하는 중환자실에서 반드시 필요한 약이다. 경련 시 신속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뇌전증 중첩증이 생겨 사망률이 높아질 수 있다”며 “공급이 끊기면 환자 치료에 심각한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제약업계에서는 일동제약의 아티반 생산 중단 결정에 식품의약품안전처의 GMP 강화가 적잖은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식약처는 의약품실사상호협력기구(PIC/S) 재가입을 앞두고 무균의약품 GMP를 국제 기준에 맞춰 개정했다. 완제의약품의 경우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올 연말부터 강화된 기준이 적용된다. 이 기준에 맞추기 위해 추가 설비투자를 해야하기 때문에 채산성이 낮은 의약품은 생산을 포기하는 경우가 이어지고 있다. 중소제약사 관계자는 "강화된 GMP 기준을 충족하려면 상당한 비용 투자가 필요하다"며 "아티반은 향정약이라 관리 비용도 만만치 않아 수익성이 낮다"고 말했다.
식약처도 다방면으로 해결책을 모색 중이지만 아직 성과가 없다. 삼진제약(005500)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본 계약은 성사되지 않았다. 무균 완제의약품의 최신 생산 설비를 갖춘 업체가 많지 않은 데다 아티반의 경우 손해를 감수하며 공급하던 약이라 선뜻 나서는 곳이 없는 상황이다.
근본적으로 원료의약품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국산 원료를 사용한 필수의약품에 대한 약가우대 정책 등을 시행 중이지만 체감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라며 "파격적이고 직접적인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수입 원료에 의존하는 의약품들은 언제든 생산 중단 위험에 노출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