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인들의 도전과 열정 꺾이지 말아야

2025-01-08

계엄과 탄핵 사태로 정치가 혼란스럽지만, 이 정도라도 대한민국이 돌아가는 이유는 묵묵히 자기 역할을 다하는 국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땀 흘리는 전국의 산업 일꾼, 그리고 대학 실험실에서 묵묵히 연구에 몰두하는 학생들을 보며 마음 한쪽에서 미래의 희망을 찾는다.

새삼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경제적 풍요와 윤택함을 돌이켜 보면, 60여 년 전에 시작한 ‘공업 입국(立國)’과 ‘교육 입국’이 원동력이었다고 확신한다. 우리나라의 많은 공과대학이 이 두 기둥의 교차점에 자리 잡고 있다. 이들 대학에서 조선·건설·자동차·원자력·반도체 등 국부를 창출한 주역들이 탄생했다. 지난 50여 년의 경제 성장기에 크고 작은 정치적·경제적 위기로 부침이 있었지만, 난관 속에서도 공학도들은 희망을 가치로 실현해 왔다.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 학문은 더 이상 공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 불안으로 산업계 발목 잡혀

의대 입시 광풍까지 공학에 부담

‘공업 입국’의 꿈 다시 다져야 할 때

공학이 지향하는 인재상의 핵심은 세상을 바꾸는 도전정신이다. 토머스 에디슨의 백열전구로 인류는 빛의 세계에 들어섰고, 일론 머스크의 로켓 재사용은 인류의 화성 이주 가능성을 열었다. 1965년 그려진 ‘2000년대 생활의 이모저모’라는 만화 한 컷이 지금 봐도 흥미롭다. 소형 TV 전화기, 전기 자동차, 전파신문, 태양열 집, 움직이는 도로, 달나라 수학여행 등이 등장한다. 60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 실현됐다. 정치가 아무리 혼돈의 위기에 빠지더라도 공학도와 공학인들이 열정과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금세기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탄소중립으로 대표되는 ‘녹색 전환(Green Transformation)’이다. 미래 세대를 위해 이제라도 모두가 함께 시작해야 하는 숙명적 미션이다. 탄소 포집과 저장, 수소 분해, 신재생 확충, 무탄소 모빌리티와 탄소중립도시(Net-Zero City) 전환 등 첨단 공학기술 분야가 총출동하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난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시간에 쫓겨 어설프게 끌려가다 보면 탈탄소 산업 전환에 돈은 돈대로 쓰면서 미래 시장의 주도권을 놓치게 될지 모른다.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은 또 다른 도전이다. 지난해 11월 발표한 맥킨지 보고서는 2040년까지 AI가 매년 약 20조 달러어치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앞서 2023년에는 자율 로봇 공정, 맞춤형 생산, 품질 이상 예측, 스마트 팩토리 운영 등 제조업에서 AI 시장 규모가 3년 이내에 약 20억 달러 규모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

지난해 글로벌 AI 테크 기업들은 우주·방위산업·로봇·반도체·신약·헬스 등 거의 모든 산업 영역에서 대거 약진했다. 이런 소식을 보면서 한국 산업계는 마음이 급해진다. 한국 기업 중 AI를 도입한 비율은 아직도 40% 정도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할 일은 산적해 있는데, 정부 지원은 더디고 정치 불안이 발목을 잡는 형국이다.

공학기술이 이끌어온 나라인데, 정치 혼란과 의대 입시 광풍 등으로 인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공학기술의 중요한 사명을 짓누르고 있다. 기술 발전으로 정보의 문턱이 낮아지고 편의성이 높아지면서 오히려 음모론은 일상이 됐다. 기후변화의 신뢰성, 코로나19 백신의 효과, 원자력과 신재생의 필요성 등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선거 음모론과 무속 논란까지 횡행한다.

물론 인류의 역사와 비과학은 늘 함께했다. 그러나 과학과 공학기술은 잘못된 질문을 잠재워왔고, 새롭고 올바른 질문을 제시했다. 페이팔과 팔란티어의 공동 창업자인 피터 틸은 최근 인터뷰에서 “과학은 항상 두 전선에서 동시에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인습과 고정관념을 강요하는 극단적 교조주의와 싸우고, 합리와 진보를 거부하는 극단적 회의주의와도 싸우면서 동시에 복잡계 속에서도 균형을 맞춰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지금 혼돈과 위기의 대한민국에서 공학기술이 감당해야 할 역할은 자명하다. 온갖 유형의 극단주의와 싸우며 균형을 모색하고 세상에 제시하는 일이다. 정치와는 별개로 한국의 공학 인재와 산업이 나라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고 국제 사회에서 평가받는 그런 역할 말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영오 서울대 공과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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