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줌인 아웃] 가치 있는 승리, 아름다운 패배

2025-01-16

때는 남북전쟁이 2년차에 접어든 1862년 봄, 헨리 플레밍은 첫 전투에서 탈영하고 다른 연대에 운 좋게 합류했다가 자기 부대로 돌아오더니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 즉 두려움에 떨던 겁쟁이에서 용맹스런 전사로 환골탈태한 것. 결국 전투에서 이기고 모두가 알다시피 북군의 승리로 남북전쟁은 끝난다. 남북전쟁을 통해 자유롭고 강인한 남자로 다시 태어난 이야기. 스티븐 크레인의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존 휴스턴이 만든 ‘전사의 용기’이다.

‘전사의 용기’는 전쟁의 두려움을 극복한 청년의 성장기 외에 특별한 감동이나 스펙터클과는 거리가 멀다. 지나치게 목적 지향적이고 플롯은 단조롭다. 그럼에도 유효한 질문. 존 휴스턴은 단지 전쟁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관이 바뀌고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려고 68분짜리 영화를 만들었을까? 여기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세 개의 지점이 있다.

첫 번째 쇼트. 영화 초반 달빛 아래서 야간보초를 서던 헨리에게 개울 건너 남군 병사가 말 건넨다. “달빛에서 멀찍이 떨어져있게, 눈에 잘 띄니까. 전투도 아닌데 우리끼리 총질 할 필요 있겠나?” 사상 초유의 내전 중에도 인간애를 고수한다는 점. 때가 1860년대라는 걸 감안해도 신선하다.

두 번째 쇼트. 마침내 전쟁의 분수령이 될 고지탈환전이 시작되고 북소리와 진군나팔 소리에 펄럭이는 성조기를 든 헨리와 병사들이 전진한다. 감독은 다양한 카메라워크로 북군의 기세를 표현하는데, 풀숏으로 시작하여 바스트숏과 클로즈업으로 병사의 비장한 표정을 드러내더니 점차로 웨스트숏으로 이동한다. 걷다가 속보로 바뀌더니 힘차게 달리는 발걸음. 선봉에 선 헨리가 성조기를 들고 고지를 향해 올라갈 때 그의 앞에는 깃발을 꼭 쥔 채로 쓰러진 남군 병사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숨을 거둔 남군 병사의 깃발을 조용히 받아들고 성조기와 남부연합 깃발을 양 손에 든 헨리. 두 청년은 적도 아군도 아닌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이데올로기가 낳은 비극의 희생양일 따름이라는 거장의 전언. 평범한 계몽영화라는 비아냥거림 속에서 빛나는 순간을 포착한 ‘전사의 용기’의 미덕이 여기에 있다.

세 번째 쇼트. 전투가 끝나고 북군 병사가 남군 포로에게 묻는다.

“어디서 왔소?”

“테네시”

“난 오하이오”

“오하이오 사람과는 처음 얘기해요.”

“나도 테네시 사람은 처음이오.”

노예해방을 부르짖던 북부도 미국식 전통을 고수한다는 남부도, 승리한 북군도 포로로 잡힌 남군도 다 같은 아메리카합중국 국민이라는 사실. “전쟁이 끝나고 화약연기가 걷히면 새들도 다시 노래하겠지”라는 자막과 함께 영화는 끝나지만 위대한 죽음은 감동으로 남고, 영광으로 그들 가슴에 새겨질 것이다. ‘전사의 용기’는 1시간 남짓 짧은 시간 동안, 똑똑히 보여주고 또박또박 말한다. 가치 있는 승리와 아름다운 패배가 왜 필요한지, 그것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백정우·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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