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이 의대 광풍에 휩쓸려 있는 동안 중국은 세계 1위 미국과 경쟁할 정도로 급속도로 성장했다. 자율주행차, 휴머노이드 로봇 등 중국의 기술 수준이 놀랍다. 특히, 중국의 인공지능(AI) 신생 기업인 딥시크(DeepSeek)의 급부상은 AI 기술이 단순한 모방을 넘어 독자적인 혁신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딥시크를 만든 중국 토종 천재 창업자 량원펑(梁文鋒)을 비롯해 베이징대·저장대 등 중국 국내 대학 출신들이 세계 최상위권 AI 모델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다. 한국 부모들은 ‘스카이 캐슬’에 몰두할 때 중국 부모들은 “우리 아이는 일류대학 이공계에 간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 의대 광풍, 중국 이공계 열풍
과학자·엔지니어 우대 인식 중요
과학 영재 집중 육성, 처우 개선을

그렇다면 한국의 의대 광풍을 중국처럼 이공계 대학 진학 열기로 바꿀 수 있는 묘안은 없을까. 첫째, 가장 시급한 것은 과학자·엔지니어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중요하다. 인식 변화를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1999~2000년엔 카이스트 공대생·교수·대학원생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카이스트’가 좋은 사례다. 방송 이후 카이스트 진학을 꿈꾼 학생이 늘었을 정도로 과학계에 준 영향이 컸다.
과학기술과 산업 분야에서 롤모델이 될 수 있는 과학자와 엔지니어 출신들의 사회적 역할도 필요하다. 이들이 청소년 대상 강연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과학기술자의 장점과 매력을 전파해 과학기술에 관심과 흥미를 유도하는 것이다.
둘째, 영재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과학기술 인재 확보의 장애물은 의대 광풍뿐 아니다. 급속한 인구감소도 악영향을 준다. 따라서 단순히 양적 확대에 그치지 않고, 정예 인재 양성에 무게를 둬야 한다. 영재교육이 중요한 이유다.
공대 교육을 강화하는 가천대의 경우 영재교육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초등 4~6학년, 중학 1~2학년 대상으로 반도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자동차·로봇·기중기 등을 레고로 직접 만들어 보면서 반도체 부품을 이해한다. 레고를 통해 반도체 8대 공정도 배운다. 아이들은 장난감 갖고 놀듯 즐겁게 수업에 임하고 있다.
조선시대 봉수대의 원리를 통해 디지털 개념도 공부한다. 얼마 전엔 SK하이닉스 팹투어도 진행했는데, 아이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전국의 많은 대학에 설치한 영재교육원도 유사한 반도체 교육이나 AI 교육을 진행하면 좋겠다. 이런 교육은 반도체와 AI에 대한 단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공학에 관심을 갖게 해서 향후 대학 진학 시점에 공대를 선택하도록 바라는 목적도 있다. 공학은 즐겁고 재미있다는 생각을 체험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좋은 공학도·과학자 인재양성을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물질적 대우를 개선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기업들부터 노력해야 한다. 우수한 엔지니어들은 정년 없이 계속 연구에 매진할 수 있어야 한다. 사장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최고의 엔지니어를 한 명 이상 만들어야 한다. 젊은 엔지니어가 일에 도전하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고, 얼마든지 세계 누구와도 당당하게 경쟁해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줘야 한다.
한국에서도 인재들이 이공계를 선택했던 시절이 있었다. 1980년대에는 물리학과·전자공학과·기계공학과가 인기학과였다. 한국경제가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공대를 선택한 인재들이 1980년대에 디지털 대전환을 잘 준비하고 대처한 결과다.
당시 “한국은 아날로그 TV에서 30년 뒤진 기술로는 평생 가야 1등 할 수 없다”는 일본 기업들의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그렇지만 디지털TV 시대를 한국 기업이 먼저 열었고 일본 기업을 이길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반도체·이동통신 분야에서도 디지털화를 선도했다. 뛰어난 이공계 인재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정부의 병역 특례 정책 등도 주효했다.
지금은 디지털 대전환을 넘어 AI 대전환이 본격화하는 시기다. AI 3대 강국을 위해서는 인재들이 동참해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디지털 대전환 성공의 역사를 AI 분야에서도 다시 써보자. 우리도 할 수 있다. 다만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기술 전쟁은 인재 전쟁이다. 과학·산업기술 인재 육성을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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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가천대 반도체대학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