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롯데‧신라‧신세계‧현대 등 4대 면세점이 3분기 연속 실적이 고꾸라지면서 면세업계에 매서운 칼바람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왔지만 면세점 업황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국제 정세와 여행객 수요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에 우리나라 면세업계는 여전히 ‘풍전등화’다.
면세점 쇼핑의 주요 타깃층이었던 중국은 내수 진작을 위해 하이난성 등에 면세점을 키우고 있어 국내 면세업계는 그야말로 불안에 떨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반영하듯 일부 업체들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 등 생존 방안에 고심하고 있다.
이들은 자구책 외에도 비용 부담을 가중시키는 정부의 면세업 규제의 완화와 인천공항공사의 임대료 책정 기준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악화일로를 겪고 있는 면세점 산업의 현재를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해 본다.
면세업계…잇따른 실적 부진 ‘인력 감축’으로 자구책 마련
올해 3분기 면세업계 빅4로 꼽히는 롯데‧신라‧신세계‧현대 면세점이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면세업계는 희망퇴직을 통해 조직을 슬림하게 하고 비상 경영 체제로 전환하는 등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자구책 실시로 분주해졌다.
호텔롯데 면세사업부는 영업손실 460억원을 기록, 1‧2분기에 이은 3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신세계면세점도 162억 영업손실을 냈다. 신라와 현대도 각각 382억과 80억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5분기 연속 적자가 난 롯데면세점이 지난 8월 2022년 12월 이후 두 번째로 희망퇴직을 공지했다. 임직원도 2023년 923명에서 올해 9월 30일 기준 779명으로 144명이 감소했다.
신세계면세점을 운영하는 신시계디에프는 근속 5년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공지했다. 이 회사가 희망퇴직을 시행한 것은 지난 2015년 창사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이에 더해 유신열 신세계디에프 대표이사를 포함한 임원 7~8명의 급여 20% 반납까지 결정했다.
면세점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팬데믹 기간 제공했던 특허수수료 감경 혜택도 내년부터는 적용되지 않는다”며 “수백억원 비용이 더 발생할 것으로 우려돼 정부 차원의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세판매장 특허수수료 부과 기준 영업이익으로 바꿔야
면세업계에서는 대부분 단기간 실적 반등은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오히려 적자가 더 불어날 공산이 크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이어진 보세판매장 특허수수료 감경 혜택이 올해부터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면세점 이익에 사회 환원을 위해 부과하는 이 수수료는 매출의 0.1%~1% 수준으로 책정된다. 팬데믹으로 업황이 악화하자 지난 4년간 수수료의 절반을 깎아줘 면세점들은 매년 수백억원씩 비용을 절감했다. 하지만 올해치 수수료는 감경 혜택 없이 100% 부과될 가능성이 높다. 납부 기한은 내년 3월까지다.
업계 관계자는 “면세점 사회 환원을 위해 도입한 특허수수료 부과 기준을 기존 매출에서 영업이익으로 바꾸고 특허 기간 한시제도 폐지 등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항 임대료가 오른 것도 면세업계는 부담으로 남아있다. 특히 주요 사업장인 인천공항 임대료가 크게 상승했다. 지난해 인천공항에서 철수한 롯데면세점을 제외한 3사가 인천공항에 입점했다. 원래 인천공항은 고정 임대료 방식을 채택했는데 2022년부터 여객 수를 기준으로 임대료를 책정하고 있다.
공항 이용객이 많을수록 임대료가 높아지는데 올해 여객 수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할 전망이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출국하는 여객(3528만명)을 기준으로 하면 3사가 부담해야 하는 임대료는 7000억~8000억원 수준이다.
그동안은 인천공항 확장 공사 등으로 임시 매장을 운영해 매출과 연동한 임대료를 냈지만, 정식 매장이 문을 연 뒤로는 여객 수에 따라 임대료를 내야 한다.
문제는 여객 증가가 꼭 면세점 매출 증대로 이어지지 않는 점이다. 고환율과 중국 내수 침체로 면세점 업계 큰손인 중국 보따리상이 줄고, 단체에서 개별 여행객으로 여행의 흐름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2021년 266만 4000원에 달했던 면세점 객단가는 올 상반기 53만 5000원으로 낮아졌다. 자연스럽게 재고 부담도 늘었다. 면세품은 보통 현금으로 매입한 후 판매한다.
업계 관계자는 “임대료 산정 방식을 여객 수 기준이 아닌 매출과 연동한 임대료로 다시 복귀해야 한다”면서 “이대로 가다간 매장을 운영하면서도 적자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정부, 오는 12월 제도 개선위원회 통해 ‘특허수수료’ 논의할 것
정부는 이러한 면세업계의 현황을 파악해 특허수수료 제도 개선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기획재정부는 지난 9월 ‘제4차 보세판매장 제도운영위원회’를 개최하고 특허수수료 부과 기준에 대해서는 현행 매출액 기준을 유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재부 관계자는 “보세판매장 제도개선위원회에서 특허수수료 기준을 영업이익으로 했을 때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해 곤란한 점이 있었다”면서 매출액 기준으로 특허수수료 부과를 진행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특허수수료 감경 방안에 대해서는 오는 12월에 면세점 업황 전망, 관광업계 전문가 의견 등을 수렴해 차기 보세판매장 제도개선위원회에서 논의해 추후 향방을 결정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관광산업 다변화 과제…소비업 아닌 관광업으로 봐야
전문가들은 국내 관광산업 포트폴리오의 다변화에 대한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체적인 노력과 정부의 정책이 함께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따이궁‧유커 등 중국 큰 손이 사라진 상황에서 이들 대신할 새로운 외국인 수요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국내 관광시장이 커져야 K-면세점도 반등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익성 동덕여자대학교 교수는 본지 취재를 통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다양한 고객층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 검증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면서 “중국이 최근 관광 무비자 정책을 펼친 것과 같이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관광 무비자 정책을 도입해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또한 “인천공항공사는 오프라인 매장뿐만 아니라 온라인 면세점 플랫폼을 구축해 고객들이 공항에 오기 전 미리 상품을 구매하고, 공항에서 픽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해 고객의 편의성을 높이고, 매출 증대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인천공항공사 플랫폼 구축으로 면세 협력업체들이 들어왔을 때 입점 수수료 등과 관련한 사항은 차후 논의가 더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정희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과거처럼 중국 관광객들이 한국 면세점에서 물품을 전부 쓸어가는 시대가 아니다”라며 “중국 경기가 악화된 측면도 있지만, 예전과 같은 묻지마식 쇼핑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아울러 “관건은 구매력 있는 해외 국가 고객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것”이라며 “그만큼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을 매력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K뷰티, K팝, K패션 브랜드 등 여러 제반 여건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변제문 세종대 교수는 지난 11월 14일 한국유통학회 토론회에서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외래관광이 인천공항과 면세점을 이용할 수 있게 해 파이의 크기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역 관광 축제 등과 연계하면 자연스럽게 공항면세점을 이용하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면세업에 대한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재호 인하공업전문대학 관광학과 교수는 “우리 정부가 면세업을 ‘관광업’이 아닌 ‘소비업’으로 봐, 산업 육성 개념이 약하다”면서 “중국은 남부 하이난을 세계 최대 면세시장으로 육성하기 위해 면세특별구역 건설 계획을 세우는 등 적극적”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중국 면세점이 국내 공항 진출을 시도하고 있는데, 만약 현실화할 경우 중국인의 국내 소비는 장담하기 힘들다”며 “국내 면세점을 다시 활성화할 수 있을지 복안 연구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 외에도 전문가들은 중국인 관광객 대상 비자 발급수수료 인하, 면세 한도 상향 등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중소기업 면세점은 대기업과 경쟁이 어려우므로 별도의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시내면세점과 공항면세점의 경쟁 심화와 입찰 조건의 변경에 따른 공정성 등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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