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귀를 막아도 들리는 비명(悲鳴)소리] 생지옥의 교육장(1)

2024-10-05

이번에는 내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번쩍 팔을 들며 일어섰다. 옆자리의 친구가 오줌을 갈겼을 때 사정없이 주먹을 날리던 친구였다. “보소! 그라모 우리가 삼팔선을 넘었는데 설마 휴전선을 넘어가지는 않겠지예? 죽더라도 죽는 곳을 알고 죽어야 될 낀데 도대체 여기가 오데고…? 우리가 교육을 받을 곳이 오데란 말입니까?”

“하모, 하모.”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부 경남 어디선가 온 친구 같았다. 나는 웃음이 나왔지만 그 말의 대답이 궁금해 귀를 세웠다. 모두들 마찬가지였다.

“아 예…, 여기는 경기도 포천입니다. 여러분이 교육받게 될 곳은 포천군 이동면에 있는 특전부대입니다. 공수부대라고 부릅니다.”

“공수부대요?” “인자, 우리는 다 죽었다. 공수부대라 했지요? 그기 특전부대 아닙니까?” 내 옆자리의 친구가 불쑥 한 마디를 하고는 말했다. “아이고! 관세음보살님! 관세음보살님! 흐유… 흐유…”

어지간히 먼 길을 달려온 버스가 연병장에 멈추려 하자 호송 경관은 앞자리에서부터 차근차근 수갑을 풀어가며 가방에 담았다. 연병장에는 베레모를 쓴 병사들이 줄을 서 상관으로부터 무언가 지시를 받고 있었다. 그들이 뿔뿔이 흩어져 도착하는 차에 올랐다. 한 병사가 차에 올라와 호송 경관으로부터 서류를 주고받고 나서 차 안을 휘둘러 보았다.

“주목.” 그는 대뜸 위엄을 보이며 자기를 소개했다. 버스 안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지고 누구 하나 느린 동작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여기 장병들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이곳이 어디인 줄은 다 알 것이다. 여기는 대한민국 육군의 최강 부대이다. 각자가 낙오되지 않도록 알아서 잘해 주길 바란다. 그럼 모두 차에서 내려 3열 종대로 집합한다. 가지고 온 관물은 하나도 빠짐없이 가지고 내린다. 알았나?”

“예.”

“실시.”

모두들 후다닥 뛰어내려 버스 앞에 줄을 지어 섰다. 나는 줄을 서서 내리는 순간 첫눈에 ‘여기는 마음을 순화시키거나 마음에 끼어 있는 때를 씻어내는 곳이 아니라 바로 생지옥이다’하는 생각을 했다. 산자락을 깎아 만든 연병장에는 돌들이 촘촘히 박혀 있고 흙먼지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그 사이 버스에서 막 내린 교육생들에게 보리타작을 하듯 곤봉으로 두들겨 패는 모습이 보였다. 동작이 굼뜨다는 이유였다.

곤봉을 얻어맞고 비틀거리는 사람, 귀를 쥐고 앉은 자세로 걸어가는 교육생들 모두가 우리 속을 나와 주인을 따라가는 오리 떼의 모습들 뿐이었다. 한쪽에선 군가를 부르며 가고 있는 행렬이 있는가 하면 우리보다 먼저 입소한 교육생들이 먼지가 자욱한 땅에 엎드려 포복 훈련을 하고 있었다.

일순간에 변해버린 광경들이 생지옥일 수밖에 없는 곳임을 눈으로 확인케 하는 것이었다. 생지옥으로 비친 것은 그들 대부분이 후려치는 곤봉에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교육생들은 지급받은 훈련복을 갈아입느라 홀랑 벗은 채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 호송 경관의 말을 되받아 능청을 떨던 광경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가 하나 같이 시곗바늘처럼 시키는 대로 따라 움직였고 그렇듯 잘 따라 움직이고 있어도 휘두르는 곤봉에 맞아 비틀거리며 쓰러지거나 군화 발길에 차이고는 주저앉아 신음하는 소리를 내는 교육생들만 보였다. 아수라장이었다. 모든 행동이 분초를 다투어 전개되는 속에서 사실 나는 자신이 비참하다는 생각을 해볼 겨를도 없었다. 만약 내가 그런 광경을 보면서 이건 불법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항의를 하고 나섰거나 처참한 그런 모습에 눈살이라도 찌푸렸다면 바로 그 순간에 나는 송장이 되어 나갔을 것이다. 잠시 바라본 풍경이었지만 곧 그런 생각을 쉬 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포악한 집단들의 놀잇감이 될 뿐이었다. 남보다 먼저 줄을 서야 하고, 남보다 먼저 옷을 벗거나 입어야 하고, 남보다 먼저 신발 끈을 매고 뛰어야 했다. 한 사람이라도 대열에서 뒤떨어지는 느릿한 행동을 보일 때는 그가 속한 분대나 소대가 단체 기합을 받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한 규칙들에 습관화되어 있던 교육생들도 그 같은 환경에 길들어진 것 같았다. 불과 한 시간이 안 된 시간이었는데도 완전히 잘 훈련된 현역 군인이 된 것 같았다. 곤봉과 마구 쥐어박는 주먹이, 또 발길질이 그렇게 만들어버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서 나는 경찰서 유치장에서 같이 지내다 이곳으로 온 자들을 찾느라 고개를 돌려가며 이리저리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같이 온 녀석들인데 보이지 않았다.

“임마, 뭘 보는 거야?” 곤봉이 등을 치고 군홧발이 옆구리를 차는 바람에 나는 선 자리에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금방 일어날 수도 없었다. “이 새끼야, 니들 때문에 우리 전우들이 광주에서 개죽음을 당했어! 개자식들아! 일어나! 안 일어나?”

그는 우리를 광주에서 선량한 학생들이 폭도로 몰려버린 소위 깡패로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깡패가 아니며 광주는 가보지도 않은 곳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러다가는 반항하는 자로 몰리고 더 심한 폭행을 당하고 말 것이었다.

다시 곤봉 세례를 당하고 나서 나는 벌떡 일어나 대열에 끼었다. 훈련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이발병들이 늘어선 곳으로 가 머리를 깎았다. 머리칼이 떨어질 때마다 허무함이 잘려 나간 머리카락에 묻어 땅에 떨어졌다. 이제야 내가 생지옥으로 왔구나, 하는 허탈감은 더 아픔으로 몰려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출가한 승려들이 세상 번뇌를 이겨내듯이 시련과 고난도 내가 이겨내야 한다는 각오를 해보았다. 머리를 다 깎고 일어서던 나는 허망한 마음을 참지 못해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머리를 깎아준 이발병이 측은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기간 사병들에게 눈물을 보인다면 찍사게 얻어맞기만 하지 동정은 전혀 받을 수 없을 터이니 절대로 눈물로 나약함으로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타이르는 것이었다.

최종두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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