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포비아에…"美핵우산 불충분" 26→47% 급증했다 [한국 안보, 국민에 묻다]

2024-10-07

한·미 동맹이 핵 기반 동맹으로 격상됐다는 정부 평가와 달리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이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국민의 불신이 불과 1년 사이 크게 높아진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일보와 동아시아연구원(EAI)의 공동 기획 여론조사 결과다. 동맹에 대한 방위공약에조차 손익계산서부터 들이밀고 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오는 11월 5일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기존의 확장억제 관련 약속도 되돌릴 수 있다는 ‘트럼프 포비아’가 수치로 확인된 셈이다.

"美 핵우산, 충분치 않다" 급증

중앙일보와 EAI는 지난해와 올해 공동 기획 여론조사에서 공통적으로 확장억제와 관련한 질문을 던졌다. 올해 조사(8월 26~28일, 전국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6명 대상 웹 조사)에서 응답자의 47.4%는 “북핵 위협 대응은 미국이 제공하는 핵 확장억제(핵우산)로 충분하다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동의한다”는 비율(41.2%)보다 6.2%p 높았다.

지난해 조사(2023년 8월 25일~9월 13일, 전국의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8명 대상 심층 대면 면접조사)에서는 한·미 양국의 대북 확장억제 강화 방안을 담은 '워싱턴 선언'(2023년 4월 발표)에 대해 설명한 뒤 ‘워싱턴 선언이 북한의 위협에 대한 적절한 대응으로, 한국의 안보 우려를 해소하기에 충분하다는 평가에 동의하느냐’고 물었을 때 응답자의 57.6%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6.2%에 그쳤다.

불과 1년 사이에 확장억제를 ‘믿는다’는 쪽에서 ‘못 믿겠다’는 쪽으로 여론의 추이 자체가 달라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양국 정부가 지난 1년간 확장억제 강화를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실질적 조치를 취했다는 점에서 이런 결과는 더 주목된다. 한·미 정상은 지난 7월 ‘한·미 한반도 핵 억제 핵 작전 지침’에 서명하고, 미국 핵전력이 한반도에 상시 배치되는 수준으로 미국 전략자산 전개의 빈도와 강도를 확대하기로 했다.

'트럼프 포비아' 수치로 나타나

한·미의 확장억제 강화 움직임과 여론이 오히려 반대로 움직이는 모순된 현상의 배경에는 트럼프가 재임 시 보였던 동맹 경시 기조에 따른 ‘학습 효과’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 행정부 교체와 관계없이 한·미 동맹은 공고하다”는 정부의 설명을 국민이 쉽게 수긍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여지가 있다.

실제 트럼프는 정례적·방어적 성격의 한·미 연합훈련을 “비싼 워 게임”으로 폄하했다.(2018년 6월 12일 1차 북·미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 북한과의 대화를 지원한다는 명분이었지만, 결국 그의 임기 중 연합훈련은 중단되거나 축소됐다.

이에 더해 최근 워싱턴 조야에서 ‘북한 비핵화’ 목표를 조정하려는 듯한 기류가 감지되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지난 7~8월 차례로 발표된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강에서 한반도 비핵화 관련 문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북핵, '실존적 위협' 진화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에 더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말부터 남한을 동족이 아니라 ‘교전 중인 적대국’으로 규정하고, 지속해서 대남 핵 공격을 위협하는 것도 주요한 원인이다.

이와 관련, ‘북한은 필요하다면 선제적으로 남한을 향해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평가에 “동의한다”는 응답이 54.6%로 과반이었다. 기존에는 종심이 짧은 한반도에서 북한의 대남 핵공격은 공멸이자 자살행위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지만, 이제는 일반 국민도 북핵이 ‘실존적 위협’이 됐다는 위기의식에 공감하는 셈이다.

동시에 북한과 불법 무기 거래를 지속하며 북한의 핵 보유를 정당화하는 듯한 행보를 이어가는 러시아에 대한 반감도 크게 늘었다. 군사적으로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국가를 묻자 러시아를 꼽은 응답자가 지난해 19.9%에서 올해 44.8%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여론의 비관적 전망과 달리 전문가들의 확장억제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학자, 전·현직 관료, 언론인 등 전문가 102명을 대상으로도 별도 조사한 결과 “북핵 대응은 미국이 제공하는 핵 확장억제(핵우산)로 충분하다”는 응답은 61.7%였다. 전문가 집단에서는 한·미 동맹의 공고함이 ‘트럼프 변수’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트럼프 호감도 대폭 하락

한편 트럼프에 대한 국민의 비호감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71.3%는 트럼프에 대해 “나쁜 인상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는 응답은 13.4%에 그쳤다.

이는 트럼프 재임 3년 차이던 2019년 “좋은 인상”이라는 응답이 52.7%이었던 것에 비해 대폭 떨어진 수치다. 당시에는 한국을 압박하는 트럼프의 여러 행태에도 남·북·미 간 연쇄 정상회담 등을 통해 그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현직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는 응답은 지난해 33.4%에서 올해 49.9%로 증가했다. 트럼프의 부상으로 인한 반사 이익과 함께 자진 사퇴를 통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후보 자리를 넘기며 민주당의 승리 가능성을 높인 데 따른 호감도 개선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한·미 관계를 긍정적으로 전망하는 비율은 낮아졌다. 미래의 한·미 관계가 “좋아질 것”이라는 응답은 지난해 46.6%에서 올해 22.5%로 반 토막이 났다. 반면 “나빠질 것”이라는 응답은 지난해 3.6%에서 올해 14.2%로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올해 응답자의 63.3%는 “현재와 같은 것”이라고 응답했는데, 미국 차기 행정부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평타’ 수준을 전망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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