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제임스 웹이 우주 끝에서 발견한 '작고 붉은 점'의 비밀

2025-06-02

[비즈한국] 제임스 웹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새롭게 마주한 미스터리가 있다. 바로 ‘작고 붉은 점(LRD, Little Red Dots)’이다. 2024년 제임스 웹이 본격적으로 심우주 관측에 돌입한 후 우주 끝자락에서 수많은 붉은 점이 포착됐다. 이는 천문학자들을 당황스럽게 했다. 허블 망원경을 비롯해 어떤 지상과 우주 망원경 관측에서도 이런 천체는 포착된 적 없었다. 오직 제임스 웹의 적외선 관측을 통해서만 발견되는 이상한 존재다.

작고 붉은 점, LRD는 특히나 아주 먼 과거의 우주에서 발견된다. 빅뱅 직후 6억에서 16억 년 정도 지난 시점에서 발견된다. 지금까지 발견된 LRD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32억 년 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현재까지 벌써 300개 넘는 LRD가 발견되었지만, 천문학자들은 이들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 온갖 추측만 쏟아질 뿐이다. 이 작은 점 하나하나가 아주 먼 과거 초기 우주에 존재한 원시 은하인지, 아니면 태초에 존재한 하나의 거대한 별이었는지, 별인지 은하인지조차 확실치 않다. 쉽게 이해할 수 없기에 가끔 LRD가 ‘기존의 빅뱅 이론을 위협한다’는 식의 헤드라인을 단 뉴스가 쏟아지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이들의 정체에 대한 굉장히 색다른 가설이 등장했다. 천문학자들은 잘 알려진 LRD 중에서 MoM-BH*-1라는 천체를 분석했다. 그리고 지금껏 생각해본 적 없는 놀라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어쩌면 최근까지 제임스 웹을 통해 우주 끝자락에서 발견된 수백 개의 LRD는 작은 원시 은하도, 육중한 태초의 별도 아닐지 모른다. 지금껏 생각해본 적 없는, 별도 은하도 아닌 전혀 다른 종류의 천체일 수 있다.

LRD는 유독 붉은 색을 띤다. 지금까지 발견된 LRD는 대부분 적외선 영역에 걸쳐 아주 균일한 스펙트럼 형태를 보인다. 우주에서 붉은 색은 무언가 거대한 먼지 구름으로 에워싸여 있을 때 만들어진다. 다른 광원에서 방출된 빛을 받아 미지근하게 달궈진 먼지 입자들이 적외선 영역에 걸쳐 붉은 빛을 방출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먼 우주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퀘이사의 한 형태에 해당하는 뜨거운 먼지로 짙게 둘러싸인 은하들이 있다. 천문학자들은 이들을 줄여서 Hot DOG(hot dust-obscured galaxies)라고 부른다. 하지만 Hot DOG는 LRD를 설명하지 못한다. 단순히 먼지 밀도가 높은 은하라기에는 LRD가 지나칠 정도로 강렬한 붉은 색, 적외선 빛을 방출하고 크기도 너무 작게 보이기 때문이다.

LRD 대부분은 높은 함량의 수소를 품고 있다. 그래서 수소에서 방출된 빛의 흔적인 발머선이 스펙트럼에서 보인다. 그런데 많은 LRD가 발머선이 예리하지 않고 양옆으로 펑퍼짐하게 넓게 퍼진 형태를 자주 보인다. 이것은 LRD가 품은 수소 구름이 매우 빠른 속도로 맴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한 경우 초속 1000km에 육박하는 아주 빠른 속도로 LRD 중심의 무언가를 빠르게 공전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중심에 아주 무거운 초거대질량 블랙홀을 품고 있는 은하들에서 많이 발견되는 특징이다. 이를 근거로 천문학자들은 LRD가 초기 우주에서 일찍이 형성된 초거대 질량 블랙홀을 품은 원시 은하일 가능성을 제기해왔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완벽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초기 우주라면 갓 형성된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매우 격렬한 단계를 거치고 있을 것이다. 주변에 높은 밀도의 가스 구름을 게걸스럽게 집어삼키면서 블랙홀의 자전축을 따라 막대한 에너지를 토해내는 모습도 관측돼야 한다. 은하 중심 블랙홀의 아주 극단적인 상황은 블랙홀에서 적외선뿐 아니라 X선, 자외선 등 다양하고 풍성한 스펙트럼을 만든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임스 웹으로 포착된 LRD 대부분에선 이런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단순히 초기 우주에서 형성된 난폭한 블랙홀, 활동성 은하핵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게다가 많은 LRD가 발머 브레이크(Balmer break)라고 알려진 매우 뚜렷한 특징을 보인다. 발머 브레이크는 별이나 은하의 스펙트럼에서 유독 364.5nm보다 짧은 파장에서 스펙트럼이 절벽처럼 뚝 떨어지고 빛이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양성자 하나와 전자 하나로 이루어진 중성 수소에서, 에너지 준위 n=2에 머무르던 전자는 364.5nm보다 짧은 파장의 빛을 흡수하면서 더 높은 준위로 올라가거나 아예 이온화된다. 보통 표면 온도가 미지근한 나이 많은 별은 표면 대기에 에너지 준위 n=2에 머무르는 전자를 많이 품고 있다. 그래서 주로 나이가 많은 별이 모여 있는 은하에서 n=2에 머무르던 다수의 전자들이 빛을 흡수하면서 364.5nm보다 짧은 파장에서 스펙트럼이 뚝 떨어지는 발머 브레이크를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LRD를 더욱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 제임스 웹이 발견한 LRD는 모두 우주의 나이가 채 10억 년밖에 안 되는 극초기 우주에 살고 있다. 당연히 이 시기의 은하들은 이제 막 별 탄생을 시작한 아주 어린 원시 은하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발머 브레이크는 어린 별보다는 나이 많은 별로 주로 채워진 은하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이 모순은 마치 LRD가 너무 빠르게 나이 들어버린 조숙한 은하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런 난감한 문제들 때문에 한때 일부 언론에서 LRD의 존재가 빅뱅 이론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분석은 LRD의 발머 브레이크 특징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사실 중성 수소에서 전자는 n=2 준위에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이 상태에 놓인 전자는 매우 불안정하다. 겨우 1-2나노초 만에 그보다 더 에너지 준위가 낮고 안정적인 n=1 준위로 떨어지면서 라이먼 계열에 해당하는 빛을 방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LRD 대부분이 스펙트럼에서 뚜렷한 발머 브레이크를 보인다는 건, LRD가 품고 있는 수소 원자 속 전자들 대부분이 n=2 준위 상태에 계속 머무르게 강제하는 메커니즘이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아주 극단적인 상황을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수소 원자들이 너무 지나치게 높은 밀도로 모여 있는 경우다. 이러한 고밀도 가스에서는 수소 원자끼리 충돌이 빈번해지고, 각 원자가 품고 있는 전자들도 n=1 준위로 떨어지려고 하다가 다시 에너지를 얻어 n=2 준위로 튀어오르게 된다. 만약 수소 원자의 밀도가 너무 높고 바글바글해서 n=2 준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려고 하는 빈도와 다시 n=2로 튀어오르는 빈도가 비슷하게 유지된다면, 일종의 평형을 이루게 되면서 가스 구름 속에서 n=2 상태에 머무는 전자의 수가 계속 일정하게 높은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심지어 별이 하나도 없더라도 가스 구름 자체 내에서 계속 n=2에 놓인 전자들이 특정한 파장보다 더 짧은 파장의 빛을 계속 흡수하게 되고, 스펙트럼 상에 뚜렷한 발머 브레이크의 특징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러한 가설을 그대로 적용하면 굉장히 흥미로운 상황도 생각해볼 수 있다. 중심의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매우 극단적으로 높은 밀도의 수소 가스 덩어리로 감싸 있다. 여기에는 별은 없다. 아주 높은 밀도의 짙은 가스 구름 중심에 초거대 질량 블랙홀만 숨어 있을 뿐이다. 블랙홀이 하나의 거대한 수소 가스 구름 ‘고치’ 속에 살고 있는 것과 같다. 모델에 따르면, 이 초거대 질량 블랙홀을 품고 있는 수소 가스 고치의 밀도는 일반적인 별의 상층 대기권 밀도에 맞먹는다! 보통 은하 속 휑한 성간 물질의 밀도 수준이 아니라, 더 높은 밀도로 빽빽하게 원자들이 가득 채워진 별의 대기권 수준으로, 고치가 빽빽하게 중심 블랙홀을 감싸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 분석에서 천문학자들은 제임스 웹의 적외선 분광 관측을 통해 LRD 중 하나인 MoM-BH*-1의 스펙트럼을 분석했다. 그리고 중심의 초거대 질량 블랙홀을 감싸고 있는 가스 구름 고치 모델을 적용했을 때, 실제 관측된 스펙트럼이 아주 완벽하게 설명된다는 결과를 확인했다. 중심에 초거대 질량 블랙홀을 품고, 그 주변에 평범한 별 대기권 수준의 밀도 높은 가스 구름으로 감싸인 천체. 가스 구름의 반지름은 겨우 40AU 수준이다. 은하는커녕 우리 태양계보다 크기가 더 작다! 이건 원시 은하라기보다는 중심에 초거대 질량 블랙홀을 품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붉은 별’처럼 보인다. 그동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그 어떤 별이나 은하와도 다른, 지금껏 생각해본 적 없는 새로운 종류의 천체다. 천문학자들은 이 새로운 천체에 ‘블랙홀 스타’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LRD를 ‘블랙홀 스타’라는 새로운 종류의 천체로 설명한다면, 최근까지 LRD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였던 지나치게 무겁게 보이는 질량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천문학자들은 새로운 모델을 적용하면, 이들이 품은 초거대 질량 블랙홀의 질량이 훨씬 가볍게 계산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기존에 추정한 수준보다 100배 이상 가벼운, 태양 질량의 10만~1000만 배 수준으로 줄어든다. 이 정도면 초거대 질량 블랙홀보다는 중간 질량 블랙홀 수준이다. 이제 막 반죽되기 시작한 아주 어린 시절 우주의 초기 블랙홀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적당한 수준의 질량이다. 빅뱅 직후부터 질량이 너무 무거워서 혼란을 일으켰던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이번 논문이 제시한 LRD의 놀라운 가능성은 현대 천문학의 오래된 수수께끼 중 하나인, 은하와 그 중심 초거대 질량 블랙홀의 연결고리에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한다. 여전히 천문학자들은 은하가 먼저 탄생한 이후 중심에 블랙홀이 성장하는지, 아니면 블랙홀이 먼저 만들어지고 그 주변에 은하가 형성되는지,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고민하고 있다. 이건 천문학의 오래된 닭과 계란 문제다.

그런데 이번 시나리오는 초기 우주에서 극단적으로 높은 밀도의 가스 구름이 반죽되고 그 중심에서 가장 먼저 별이 아닌, 중간 질량 블랙홀이 형성되고 있다는 단서를 제공한다. 이렇게 형성된 ‘블랙홀 스타’가 이후 서로 부딪치고 충돌하면서 덩치를 더 키우게 되면, 오늘날 수준의 더 무거운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완성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주변에 평범한 별이 만들어지면서 오늘날의 은하 모양을 갖추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드디어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은하와 블랙홀 중 누가 먼저 우주 역사의 첫 단추가 되었는지를 내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참고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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