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200억달러 “외환시장 불안 없게” 한·미 합의했지만…‘어떻게’ 공란

2025-11-14

한국과 미국 정부가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를 조건으로 관세를 15%로 낮추는 내용의 공동 설명자료(팩트시트)를 공개했다. 대규모 달러 투자가 한국 외환시장 충격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가 합의문에 담겼지만 구체적이지 않아, 불확실성이 여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국이 14일 발표한 팩트시트에 따르면 총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는 1500억 달러 규모의 조선 분야 투자와 2000억 달러 규모의 전략적 투자로 나뉜다. 논란이 됐던 2000억 달러 전략적 투자에 대해 김용범 대통령실 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연간 200억 달러의 자금 조달액 상한을 설정하고 외환시장 불안이 우려될 경우 한국이 자금 조달 규모 및 납입 시기 조정을 요청하는 안전장치를 반영했다”고 말했다.

세부적으로는 ▶가능한 한 미화를 시장에서 매입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 조달하고 ▶공약의 이행이 원화의 불규칙한 변동 등 시장 불안을 야기할 우려가 있을 경우 한국은 조달 금액과 시점을 조정할 것을 요청하고 ▶이에 미국은 신의를 가지고 요청을 적절히 검토한다는 내용이다.

한국 정부가 공약한 3500억 달러는 만만한 액수가 아니다.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 4288억2000만 달러(지난달 기준)의 80%가 넘는 금액이다. 연간 투자액 200억 달러(상한)도 마찬가지다. 기획재정부 통계를 보면 지난해 한국의 해외직접투자액은 639억5000만 달러다. 기존 해외직접투자액 3분의 1 수준에 이르는 돈을 미국 측의 요청에 따라 쏟아부어야 한다는 의미다. 여기에 필요한 돈은 달러로 조달해야 하는데 가뜩이나 불안한 외환시장에 위험 요소일 수밖에 없다.

양국이 팩트시트 내에 ‘외환시장 안정’을 별도 항목으로 두고 명문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외환시장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연 200억 달러 이하’란 가이드라인만 공개됐을 뿐 언제, 어떤 방법으로, 어디를 통해 한다는 내용은 여전히 공란이다. ‘독소조항’으로 비치는 문구도 있다. 달러 투자 조율에 대한 한국에 요청에 대해 미국이 “적절히 검토한다” 정도만 명문화돼 있다. 의무 사항이 아니란 얘기다.

이미 외환시장은 살얼음판이다. 미국 달러당 원화가치가 1470원대로 주저앉는(환율은 상승) ‘외환위기급’ 변동성에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직접 구두 개입에 나섰다. 이날 오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이억원 금융위원장, 이찬진 금융위원장과 시장상황점검회의를 연 자리에서, 구 부총리는 “가용 수단을 적극 활용해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연금과 수출업체 등 주요 수급 주체들과 긴밀히 논의해 환율 안정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급증하는 해외 투자가 외환시장 불안을 부추긴다는 판단 아래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비중 확대나 전략적인 대규모 환 헤지(환율 변동성에 대비하기 위해 미래 환율을 고정해 놓고 거래)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날 1470원대로 개장했던 달러당 원화값은 구 부총리의 발언 직후 1450원대로 추락했지만, 근본적 처방은 아니다. 원화가치를 끌어내리는 외부 요인이 한가득이라서다. 이주원 대신증권 연구원은 “수급 측면에서 달러 유출 및 원화 약세 압력이 지속하고 있다”며 “내국인의 해외 투자 수요가 꾸준히 유입된 가운데 최근 채권을 중심으로 매도세가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원화를 달러로 바꿔 해외에 투자하는 ‘서학개미’, 원화 표시 채권을 팔고 달러를 챙겨 떠나는 외국인이 원화값 추락을 더 부추기는 상황이다.

한편 이번 팩트시트 공개로 관세와 관련한 불확실성은 어느 정도 걷혔다. 이날 회견에서 김용범 실장은 “반도체 관세는 주요 경쟁국인 대만 대비 불리하지 않은 조건으로 합의했다”며 “쌀ㆍ쇠고기 등은 우리 농업 민감성을 고려해 추가 시장 개방(내용)은 담지 않았다”고 재자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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