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아둔 옛 작품 덧칠하고 가위로 잘라 ‘환생’…박세상 개인전, 갤러리 모나

2024-07-03

작업이 고통스러워지며 도피

생계 활동하면서 비공개 작업

“작품 짐처럼 느껴져 비울 다짐”

기존 화면 다양한 방식 변주

남해·제주 일상적 풍경 담아

“작품, 언제든 재활용하면 돼”

박세상 작가의 삶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노마드(nomas·한 곳에 머물지 않고 이동하며 사는 사람)다. 공무원이었던 부친의 부임지를 따라 이동하며 성장기를 보냈다. 왜관에서 태어났지만 학창시절은 강원도, 영주, 안동 등에서 보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자발적인 이주를 감행했다. 서울어린이회관 미술파트에서 2년간 일하고, 대구로 내려와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대구 활동 25년 만에 불현듯 남해로 터전을 옮겼고, 5년 후에 제주로 이주했다. 그의 방랑가적 기질은 끝이 없어 이제는 경남 하동으로의 이주를 계획하고 있다.

잦은 이주 이면에는 부침이 많았던 그의 삶과 예술이 있다. 그는 25년전, 구상화가로 유명세를 떨쳤다. 전시만 열면 그림이 완판 됐고, 갤러리들로부터 전시 의뢰도 쇄도했다. 그는 꽃이나 화병 등을 세련되면서도 감각적으로 표현하며 구상이 강했던 대구에서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구상화가로 살았다.

명성이 높아질수록 완급 조절은 필수다. 긴 호흡으로 작업을 계속 전개하려면 전력질주는 자제해야 한다. 일찍 지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당시 작품이 팔릴수록 기는 심정이었다. 스스로 “더 많은 작업을 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시달렸다. 창작자라면 무릇 끊임없이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을 찾고 제시해야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들인데, 당시 자기복제적인 그의 작업 방식은 창작자의 본성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작업이 즐거움이 아닌 고통이 됐고, 점 점 고뇌가 깊어졌다.

결국 그는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를 스스로 차단하는 선택을 감행한다. 당시 그는 “더 이상 작품으로 세상과 소통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혼자만의 예술세계로 침잠해 갔다. 세상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욕망을 스스로 차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가족의 생계까지 놓을 순 없어, 작품 판매 수입을 대체할 대안으로 아내와 카페형 꽃집을 차렸다. 그렇게 15년간 열심히 자영업에 종사하며, 혼자만의 작업을 계속 이어갔다. 이 시기 구상에서 비구상으로의 변화가 시작됐다. 더 이상 세상 눈치 볼 일없이 원하는 작업을 하면 됐다.

하지만 세상은 또다시 사지로 그를 내몰았다. 갑작스럽게 뇌졸중이 찾아온 것. 다행히 신속한 대처로 부작용 없이 치료 됐지만 “이제는 도시를 떠나야 할 시기”임을 직감했다. 망설임 없이 평소 매료됐던 남해로 거처를 옮겼다. 남해살이 시기에도 비구상 작업은 계속됐다. “비구상인데도 전시를 하면 작품이 팔렸어요. 깜짝 놀랐죠.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해도 작업이 팔린다는 경험하며 기뻤어요.”

생경한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용기다. 그러나 막상 실행하면 낯선 곳에 적응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그는 오히려 낯선 곳에서 적응하려고 동분서주하는 자신에게서 청년의 열정을 발견했다. 그에게 이주하는 삶은 스트레스이기보다 새로운 삶의 기운을 불어넣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 시기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개념 하나가 등장한다. 그것이 바로 리사이클링(Recycling)이다. 리사이클링 작업이 새롭다 할 순 없지만, 놀라운 것은 리사이클링의 대상이 자신의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대구에서 남해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쌓여있는 작품들을 새삼스럽게 의식하게 됐고, 과감하게 리사이클링을 결심했다. “작품을 계속해서 쌓아놓는 것 또한 쓰레기가 쌓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하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이사하면서 쌓여있는 작품들이 짐이 됐어요. 비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작품을 해체해서 또 다른 작품의 재료로 활용 하겠다”는 작가로서 혁신에 가까운 발상은 지구가 인류가 토해내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의 현실과 무관치 않았다. 자신부터 쓰레기를 줄이는 일을 실천하겠다는 결심을 했고, 문제의식이 발동하자 쌓여있는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부터 작품들을 액자에서 떼어 내 새로운 작업의 재료로 재활용했다. 작품을 떼어내고 남은 액자틀도 재활용됐다. 떼어 낸 작품들은 수십에서 수백 조각으로 잘려졌다. 잘려진 조각들은 그의 손끝에서 새로운 조형언어인 ‘풍경’으로 생명을 얻어갔다. “남해나 제주의 풍경이 너무 아름답고, 그런 풍경을 일상적으로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풍경을 리사이클링 방식으로 구현하게 됐어요.”

작업 과정은 그야말로 지난하다. 기존의 화면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고, 그 위에 색을 칠하기도 하는 등의 변형을 가한 후에 커트 칼로 자르고, 화면에 붙이는데 그 조각들이 셀 수 없이 촘촘하다. 잘린 조각들은 다시 색을 칠하고 그라인더로 갈아내는 과정을 부가한다.

최근 개막한 갤러리 모나 개인전에 걸린 작품들에서 발견되는 것은 제주풍경이다. 제주의 바다와 하늘, 유채와 메밀과 하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제주의 밭들이다. 풍경 속에는 보일 듯 말듯 한 작은 집 한 채가 등장한다. 그가 제주 귤 밭에서 본 귤 창고다. 작가라면 누구나 염원하는 작업실에 대한 갈망을 귤 창고에 이입했다.

이처럼 작가의 작업은 철저하게 자신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예술이 예술가와 따로 떼어 놓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작업의 진정성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을 때 가장 농밀하게 담아낼 수 있다는 소신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자신의 예술을 “일기”라고 명명했다. “제게 예술은 일기와 같기 때문에 작품을 보면 그날 어떤 일이 있었고, 날씨는 어땠으며 그날 무슨 생각을 했는지가 단박에 떠올라요. 글이 아닌 그림으로 쓴 일기인 것이죠.”

그는 구작을 재활용하는 것을 ‘환생’에 비유했다. 창고에 먼지를 머금고 쌓여있는 구작들이 또 다른 작품으로 재탄생하는 것이 환생과 다르지 않다는 논리였다. 리사이클링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고 하지만 구작에서 나름의 의미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과감하게 자신의 작품에 칼을 대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가 구작에서 발견한 가치는 ‘시간성’이었다. 작품 속에 적어도 10년 이상의 깊이 있는 시간성을 담아내는 것이 작가의 본문인데, 구작이야말로 그가 작업했던 시간성과 창고에서 홀로 고독하게 외로움을 달랬던 시간들이 배어있다는 것. “구작을 오려서 붙이고 사포로 갈면 옛날에 칠했던 색들이 올라옵니다. 제게 중요한 개념이 시간성인데, 배어 올라오는 색에서 시간성은 충분히 확보되는 셈이죠.”

지난 10여 년 간의 투혼으로 그 많던 작품들은 새로운 작업의 재료가 됐고, 지금은 거의 비워진 상태다. 더 이상 구작은 남지 않았다는 것은 작업의 재료가 소진됐다는 의미다. 그는 “지금의 작품을 다시 활용하면 된다”며 “전혀 아깝지 않다”고 했다. 작업이 완성이 아닌 과정이 중요하다는 철학에 따라 정리한 입장이었다.

“작업을 생계수단으로 삼지 않겠다고 한 순간부터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 졌어요. 작품을 또 다른 작품의 재료로 쓰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으니 사라졌다고 할 수 없지 않겠어요?” 갤러리 모나 박세상 개인전은 20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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