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얼굴을 복원하는 일” 소설가 조해진이 들여다 본 활동가의 삶은

2025-09-17

중년여성 김은희는 인권센터에서 일하는 활동가다. 장애인과 미혼모를 지원하고 노숙인을 돕는 반(反) 빈곤 활동을 한다. 2년간 항암 치료를 했지만, 최근 암이 재발해 집을 떠나게 됐다. 그렇게 김은희는 동료 활동가 동준에게 소개받은 초면의 여자, 함수연을 만난다.

요양병원으로 향하는 나 대신 고양이들을 돌봐줄 사람. 김은희에게 함수연은 가벼운 인연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은희는 집에 들어온 수연에게 문자로 주의사항을 안내하며 이렇게 생각한다. ‘무무 씨에 대해서도 얘기해주고 싶었는데…’

은희는 돌연사한 애인 한상무, ‘무무 씨’의 흔적을 자신의 집에서 지낼 수연이 알아봐 주길 기대하고, 고대한다.

조해진(49) 작가의 신간 경장편소설 『여름밤 해변의 무무 씨』(다산책방)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는 넷플릭스 시리즈 '로기완'(2020)의 원작 『로기완을 만났다』(2011)와 『단순한 진심』(2019), 『환한 숨』(2021) 등 12권의 소설 단행본을 낸 21년 차 소설가.

이번 신간은 다산책방의 한국문학 시리즈 ‘다소 시리즈’ 1권으로, 2023년 문학잡지 릿터에 공개된 단편소설 ‘여름밤 해변에서, 우리’를 읽은 다산책방 편집자의 제안으로 쓰게 됐다.

지난달 28일 중앙일보 사옥에서 만난 조해진 작가는 “작가로서 인물을 더 알고자 할 때 중·장편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며 “확장 제안을 받았을 때는 단편에선 분량이 적었던 수연과 그의 친구 활동가 동준 등을 더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했다.

소설엔 일상에서 볼 법한 인물들이 나온다. 이들에게 특별한 점이 있다면 사회가 규정한 ‘평범함’의 밖에 놓인 ‘경계인’이라는 것. 활동가 은희와 동준, 세무사 보조원으로 일하다 해고된 수연, 공장에서 일하다 병을 얻고 산재를 인정받으려 여러 시민단체를 찾아다니는 ‘무무 씨’는 모두 경계에 서 있다.

작가는 “은희는 나의 이상형 같은 사람”이라며 “제도권을 벗어나 가난의 구조적 문제를 고민하는 용감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수연은 변화가 많은 인물”이라며 “‘유별나다’고 치부했던 사람들을 알고 싶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알아가게 되는 이야기를 쓰려 했다”고 전했다.

은희는 활동가이지만 질병을 앓는 사람이기도 하다. 작가는 “은희를 통해 1인 가구 여성으로서 투병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주위의 시선을 받는 과정은 어떨지 녹이려고 했다”고 밝혔다. 그런 은희를 묘사하는 방식은 마냥 어둡지 않다. 은희는 아팠기 때문에 교사라는 직업을 그만뒀지만, 활동가라는 직업을 갖게 된다. 아팠던 동안 주변의 반응에 상처를 받았지만, 아팠던 몸으로도 무무씨를 향한 애정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누구나 질병을 겪을 수 있다. 나도 아픈 사람을 무능하다고 치부하진 않았는지, 내가 이런 대우를 받은 적은 없는지 독자들이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다.”

은희와 동준을 통해 활동가라는 직업을 다룬 이유도 비슷하다. “한국사회는 ‘특정 나이에 무엇을 달성해야 한다’는 규정이 뚜렷하다. 활동가들을 볼 때 ‘자기 앞가림도 못 하면서 남들을 위한다’는 시선도 있는데, 나는 (삶의 방식이 다양한 것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해진 작가는 “소설은 인간의 얼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회가 그어 둔) 경계 밖, 혹은 경계 위의 사람들을 ‘한 인간의 얼굴’로 기억되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것이 내가 소설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고,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로 인해 세상이 바뀌진 않겠지만 바뀌리란 믿음이 나를 살게 한다.” 소설에서 은희는 이 문장을 붙들고 산다. 소설가인 조해진에게도 이 문장은 유효했다.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가 책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책은 결국 세상을 바꾼다. 완전히 바꾸지는 않지만, 티스푼 한 술 만큼은 바꾸는 것 같다.’ 이 말이 참 좋았다. 나도 이런 마음으로 소설을 쓴다. 그 마음이 없었다면 20년 동안은 못 썼을 것 같다.”

그가 다음 소설로 들여다볼 것은 재일조선인의 얼굴이다. “내년 초에 나올 소설에서 재일조선인 이야기를 하려 한다. 자료들을 찾아 읽으며 역사 속에 살았던 사람들을 많이 떠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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