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드라마 촬영장에서 조명팀 스태프가 “야간 촬영이 너무 잦아 휴식이 필요하다”고 항의하자, 방송사는 “프리랜서 계약이니까 직접 계약한 업체에 이야기하라”며 교체를 통보했다. 예전엔 그랬다. 그러나 2026년 3월 시행 예정인 ‘노조법 2·3조 개정’,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현실이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노란봉투법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특수고용직, 프리랜서, 플랫폼 종사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 둘째,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자”는 직접 고용 관계가 아니어도 단체교섭의 상대방이 될 수 있다. 셋째, 위법한 쟁의행위로 손해가 발생한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개별적으로 판단하도록 했다.
중요한 건, 이 법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 판단 기준 자체를 바꾼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법원은 여전히 “사용자의 지휘·감독 여부, 근로시간·장소의 구속, 대가의 성격 등”을 보고 개별 판단한다. 다만 노조 결성과 교섭 권리는 근로자성과 무관하게 확대됐고, 교섭 의무는 실질적 지배력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제작 현장, 무엇이 바뀌나?
첫째, 플랫폼도 교섭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 글로벌 OTT 플랫폼이 제작사에 오리지널 시리즈를 발주하고, 제작사는 용역업체를 통해 조명·촬영·미술 스태프를 투입하는 구조라면, 지금까지는 용역업체만 고용 주체였다. 하지만 주연 배우 캐스팅을 승인하고, 시놉시스와 대본을 검토하며, 회차별 러닝타임을 조정하고, 제작비와 촬영 일정을 통제하는 주체가 플랫폼이라면 ‘실질적으로 근로조건을 지배·결정하는 자’로 인정될 수 있다. 방송사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지상파나 케이블 채널이 외주제작사를 통해 드라마를 만들 때, 편성 시간을 정하고, 작가와 연출자를 승인하며, 제작비를 집행한다면 실질적 결정권자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실질적 지배인가’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조명 스태프 노조가 플랫폼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면, 플랫폼은 “우리는 콘텐트를 사는 것이지 스태프를 고용한 게 아니다”라고 다툴 것이다. 이 판단이 내려지기까지 법원 소송을 거쳐야 하고, 그 기간 동안 제작 현장의 불확실성은 지속된다.
둘째, 손해배상 구조가 바뀐다. 촬영 중인 미니시리즈에서 스태프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고 가정해보자. 위법한 방법으로 촬영이 중단되어 제작사에 수억 원 손해가 발생했다. 과거에는 파업 주도자 외에 단순가담자에게도 손해 전액을 청구할 수 있었다. 개정법은 이를 바꿨다. 노조에서의 지위(위원장인지 평조합원인지), 파업 참여 정도(주도했는지 단순 참여했는지), 임금 수준 등을 고려해 개별적으로 책임을 정하도록 했다.

이는 양측에게 새로운 계산을 요구한다. 제작사는 조명감독, 미술감독, 촬영 보조 등 각자에게 얼마를 청구할 것인지 개별 입증을 해야 하고, 스태프는 자신의 참여 정도가 어떻게 평가될지 예측해야 한다.
셋째, 분쟁 경로가 복잡해진다. 용역업체 소속 스크립터와 스태프들이 노조를 만들어 플랫폼에 교섭을 요구했다고 가정해보자. 플랫폼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응하면 전국 모든 제작 현장에 선례를 남기고, 거부하면 부당노동행위로 형사 고소될 수 있다. 정당한 이유 없는 교섭 거부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이다. 교섭이 결렬되면 파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때 제작사가 자사 직원을 투입해 촬영을 강행하면 대체근로 금지 위반으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제작사도 ‘사용자’로 인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측 모두 새로운 법적 리스크를 안게 된다. 플랫폼과 제작사는 형사 책임 가능성을, 스태프는 실질적 지배력 입증 부담을 각각 지게 된다.
넷째, 사전 준비가 핵심이다. 이 불확실성을 줄이는 방법은 사전 준비뿐이다. 플랫폼과 방송사는 제작사·용역업체와의 관계 구조를 전수 점검해야 한다. 배우 캐스팅, 대본 수정, 촬영 일정 결정 과정에서의 관여 정도를 문서화하고, 필요하다면 프로세스를 재설계해야 한다. 제작사 정규직과 용역 스태프 간 처우 격차를 줄이고, 사전 협의 채널을 만들어 분쟁을 예방해야 한다.
스태프는 자신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노조 가입이 가능한지, 누구를 상대로 교섭할 수 있는지, 파업 시 어떤 책임을 질 수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집단행동 시 자신의 역할과 참여 정도가 향후 법적 책임 판단의 근거가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노란봉투법은 양측 모두에게 새로운 게임의 룰이다. 플랫폼과 제작사는 더 명확한 고용 구조와 예측 가능한 노사관계를 만들어야 하고, 스태프는 권리와 함께 책임도 개별적으로 져야 한다.
20년간 PD로서 제작 현장에서 일하며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 좋은 콘텐트는 편법에서 나오지 않는다. 명확한 룰, 예측 가능한 비용, 안정적인 인력이 있을 때 창작이 꽃핀다. 법 시행까지 5개월. 양측 모두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필자소개

이용해 변호사는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20여년간 SBS PD와 제작사 대표로서 ‘좋은 친구들’, ‘이홍렬 쇼’, ‘불새’, ‘행진’ 등 다수의 인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후 법무법인 화우의 파트너 변호사 및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팀장으로서 넷플릭스·아마존스튜디오·JTBC스튜디오 등의 프로덕션 법률 및 자문 업무를 수행해왔다. 현재 콘텐트 기업들에 법률 자문과 경영 컨설팅을 제공하는 YH&CO의 대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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