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선 '형량예측' 1년도 안돼 퇴출…75년전 법에 막힌 법률 AI

2025-08-14

2020년 11월 리걸테크 기업 로앤컴퍼니는 국내 최초로 ‘형량 예측 서비스’를 선보였다. 해당 서비스는 합법적으로 수집한 1심 형사 판결문 약 47만 건을 기반으로 통계 데이터를 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형량에 대한 통계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로앤컴퍼니 측은 형량 예측 서비스가 법률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변호사의 업무 효율성 향상에도 기여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혁신은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21년 9월 서비스 종료로 막을 내렸다. 대한변호사협회가 형량 예측 서비스를 두고 “변호사 광고에 해당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법무법인 대륙아주가 출시한 인공지능(AI) 법률 자문 서비스 ‘AI 대륙아주’ 역시 비변호사의 법률 사무 수행 논란이 불거지자 서비스를 철수했다.

14일 법조계와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해외 리걸테크 시장이 점차 확대되는 가운데 국내 리걸테크 산업은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법적 기준이 모호해 기술 기반의 혁신이 반복적으로 좌초되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기술이 어디까지 허용되고 어디서부터 금지되는지 정한 법이 없다”며 현행 변호사법이 새로운 형태의 법률 서비스를 수용할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리걸테크 기업들이 주로 제공하는 서비스는 법률 문서 작성 자동화, 법령·판례 검색, 변호사 중개, 소송 통계 예측 등이다. 그러나 이들이 외부 투자를 받거나 수익 모델을 구축하려는 순간 변호사법 위반 논란에 직면하게 된다. 현행 변호사법 제34조 제5항은 “변호사가 아닌 자는 변호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업무를 통해 보수나 이익을 분배받아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이는 본래 사무장 로펌이나 브로커 개입 등 불법 구조를 막기 위한 조항이지만 현재는 AI 기술과 자동화 서비스, 플랫폼 사업 전반에 걸쳐 ‘법적 불확실성’을 유발하는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변호사법 어디에도 ‘AI 기반 자동화 서비스’가 법률 사무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명시적인 기준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판단은 해석에 따라 달라지고 해석 권한 역시 협회·정부·법원 등 기관마다 엇갈려 혼란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변협과 서울지방변호사회가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취소 소송에서 서울고등법원이 원고(변협) 승소 판결한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변협과 서울변회는 로톡과 같은 법률 플랫폼이 변호사법이 금지하는 ‘변호사 알선’ 등에 해당한다고 보고 로톡 가입 변호사들에게 서비스 탈퇴를 요구했으며 이에 응하지 않은 변호사들에게는 견책, 과태료 부과 등 징계를 내렸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해당 징계가 공정거래법상 부당한 경쟁 제한에 해당한다며 시정명령을 내리고 과징금 각 10억 원을 부과했지만 서울고법은 “고도의 공공성과 윤리성이 요구되는 변호사 직무에 대해선 리걸테크 등 기술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상당한 재량이 인정돼야 한다”며 변협 측의 손을 들어줬다. 해당 소송은 현재 대법원에서 심리가 진행 중이다. 이처럼 명확한 기준 없이 법적 다툼에 매몰된 사이 미국·일본·독일 등은 법률과 기술이 공존하는 구조 속에서 투자와 수익 배분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법원의 판결문 공개 제한도 국내 리걸테크 산업의 더딘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헌법 제109조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판결문은 제한적으로만 공개되는 실정이다. 또한 공개된 판결문을 열람하거나 발급받기 위해서는 건당 1000원의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가장 핵심적인 학습 데이터인 판례 수집이 양적으로나 비용 측면에서 모두 제약을 받는 셈이다.

리걸테크 관련 플랫폼을 직접 운영 중인 한 변호사는 “하급심 판결문은 아예 공개되지 않거나 일부 공개된 경우에도 돈을 주고 사야 하기 때문에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사실상 접근이 어렵다”며 “수백만에서 수천만 건의 판결문을 열람할 수 있고 이를 조합해 의미 있는 서비스를 만들 수 있도록 환경이 조성돼야 경쟁력 있는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변호사법은 1950년대에 제정된 법으로 지금 시대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인간 변호사와 AI 간 협업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법제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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