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를 생각하지 않고 세계를 살아가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폭염과 폭우를 피할 수 없을 것 같아 여름은 시작부터 두렵다. 채소와 과일 가격이 오른다는 소식 한 귀퉁이에도 기후위기가 있다. 플라스틱 용기에서 편리함이 읽히던 시절은 오래전 끝났다. 모두의 삶과 모든 곳에서 연결된 문제가 기후위기라는 데 이견이 없다. 그래서 ‘전환’이라는 화두에 관심이 모인다. 하지만 어떻게 전환하자는 이야기가 공론장에 오르는 일은 별로 없다.
무언가 만들고 쓰고 버릴 때마다 온실가스가 나온다니 어쩌라는 것인지 엄두가 안 난다. 석탄을 태워 전기를 만들고 용광로를 달구어 철강을 만들고 연료를 태워 자동차가 달리고. 그렇게 출퇴근하며 배달에 기대 겨우 하루씩 살아내는데 어디에서 전환이 시작될 수 있을지 막막하다. 그러던 중 취임 연설에서 기후위기를 언급하는 대통령이 등장했다.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세계적 흐름에 따라 재생에너지 중심 사회로 조속히 전환”하자고 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에너지 전환은 기후위기 대응의 열쇠 중 하나. 이제 전환이 시작될까?
이명박 정부는 ‘해상풍력 3대 강국’을 만들자 했고 문재인 정부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냈다. 재생에너지가 주목받은 시간이 무색하게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여전히 10% 남짓으로 매우 낮다. 역설적이게도 재생에너지 자체가 목표였기 때문이다. 정부 역할은 새로 시장을 만들어주는 데 그쳤다. 산업 발전을 뒷받침할 에너지 공급이 중요했기에 전체 발전량은 줄지 않았고 전환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산업에 대한 대대적 투자”와 함께 “힘차게 성장 발전하는 나라를 만들” 에너지 고속도로는 다를까. RE100이 수익성을 높이니 기업들에 재생에너지를 더 보내자고, 풍력과 태양광이 어디서든 생산되고 판매될 수 있도록 송배전망을 구축하자는 것이 에너지 고속도로다. 세계는 그대로다.
달라지는 것은 희미한데 사라지는 것은 선명하다. 대선 전날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충현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김용균의 죽음 이후 구성된 특조위 권고만 이행했더라도 막을 수 있던 죽음이다. 위원회는 공정을 분리해 소통을 단절시키는 외주화 자체가 위험을 만드는 요인이라고 짚었다. 외주화 철회가 첫 번째 권고였으나 이행되지 않았다. 폐쇄될 발전소보다 먼저 생명이 폐쇄당했다. 재생에너지 고속도로는 이 세계에 닿아 있지도, 다른 세계로 길을 내지도 않는 듯하다.
전환은 세계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사라지는 세계를 남기고 떠나는 일을, 떠나는 이들은 작별이라 부를지 모르나 남겨진 이들은 약탈이라 불렀다. 성장의 지표만 보게 하려는 세계에서, 어떤 존재들은 보이지 않게 지워졌고 사라진 세계는 흔적도 잊혔다. 댐을 건설한다며 누군가의 삶을 수몰시키고 송전탑을 짓는다며 공동체를 파괴해온 세계는 그렇게 제 길을 갔다. 수익성이 자원의 이용과 배분에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고 무엇이든 쓰고 버리는 일이 아무렇지 않은 세계가 기후위기를 불렀다. 기후위기 대응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로부터 시선을 빼앗아 햇빛과 바람을 기업의 이윤 수단으로 만드는 사업에 소모된다면 이런 모순이 따로 없다.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이 시작되었다. 공공이 소유하고 함께 운영하는 재생에너지 체제로 전환하자는 제안이다. 김용균과 김충현으로부터, 가장 밀려나고 버려지기 쉬운 곳에서부터 방향을 바꾸는 일을 시작하자고 한다. 그래야 전환일 것이므로. 공공재생에너지법 제정 청원이 열렸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로 삶이 폐쇄당할 위기에 처한 발전소 노동자들이 큰 걸음을 내디뎠다. 더 많은 이들이 연결될수록 더 큰 전환의 분기점이 될 것이다.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 접속해 연결을 시작할 수 있다. 모두의 전환, 우리가 시작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