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통신] 중앙아시아의 새해 맞이 풍경

2026-01-05

중앙아시아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모습은 과연 여기가 이슬람 국가인지 의심을 가질 만큼 크리스마스 풍경과 유사하다. 도시의 광장에는 온갖 장식을 메단 트리가 세워지고 시민들은 새해맞이 공연을 즐긴다.

중앙아시아의 새해 맞이 풍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제드 마로스’라는 겨울 할아버지이다. 제드 마로스는 슬라브 신화의 인물인데,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의 정교회 문화권에서는 산타클로스의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흰 수염과 흰 머리에 푸른 옷을 입고 말 3마리가 끄는 썰매를 타고 기다란 지팡이를 지니고 다니면서 성탄절과 새해에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준다.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중앙아시아

최근 한국에서 해외 트래킹 여행지로 중앙아시아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천산산맥의 만년설과 아름다운 계곡, 광활한 초원과 야생화 등이 매혹적인 중앙아시아는 유명 여행 유튜버들의 인기 방문지가 됐고 이들이 올린 다양한 영상들로 인해 친숙한 곳이 돼가고 있다.

또한 우리 주변엔 중앙아시아에서 온 유학생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미 건설 현장과 산업 현장에는 이곳 출신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어느덧 중앙아시아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우리 사회와 문화에 대한 관심과 지식에 비하면 우리는 일본, 중국, 동남아에 비해 중앙아시아에 대해 잘 모르고 있고 여전히 심리적으로 먼 나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중앙아시아는 현대적 의미에서 구소련에서 독립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스탄’ 5개 독립국을 지칭하고 있다. 이곳에 산재해 있는 ‘~스탄’은 페르시아어로 "~의 땅"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서쪽으로 카스피해부터 동쪽으로는 중국까지, 북쪽으로는 러시아부터 남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지역이다. 중앙아시아의 넓은 초원 지역은 동유럽의 초원 지역과 동일한 지리학적 지역으로 분류되며, 두 지역을 합쳐 유라시아 초원이라 부르기도 하며 고대부터 인류사의 변곡점마다 등장했던 유목민들의 활동 무대였다. 천산산맥과 파미르 고원에서 발원한 시르다리야 강과 아무다리야 강을 따라 발달한 오아시스에는 예부터 농경문화가 발달하여 실크로드가 기능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중앙아시아의 정확한 범위에 대해서는 다양한 정의가 존재하지만, 중앙아시아 사람들은 비단길과 유목민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동서양의 문화교류와 인류 역사발전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그러나 이 지역은 18세기 중반부터 시작해 19세기 말까지 약 150년에 걸쳐 서서히 러시아에 편입된다. 당시, 이 지역은 카자흐칸국과 히바칸국, 부하라칸국, 코칸트칸국 등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후 20세기 초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의 영향으로 소련의 일부가 됐다.

러시아의 영향을 받은 이슬람문화권의 새해 맞이, 가족 명절로 자리잡아

중앙아시아의 새해 풍경은 한때 소련이라는 공통의 역사를 공유한 중앙아시아가 오늘날 각자의 전통과 현대적 라이프스타일을 어떻게 함께 품고 있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문화적 창이다.

중앙아시아에서의 1월 1일 새해는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시간 즉, 가족 명절의 성격이 강하다. 이들은 해가 바뀌기 전날인 12월 31일, 집을 정돈하고 식탁을 풍성하게 차린 뒤 자정의 카운트다운에 맞춰 샴페인(혹은 탄산음료)을 들고 소원을 빈다.

도시에선 광장에 모인 시민들을 위한 새해 축하 공연이 열리며, 자정 무렵 폭죽이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이때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손님은, ‘제드 마로스’이다. 제드 마로스는 슬라브 신화의 인물인데,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의 정교회 문화권에서는 산타클로스의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흰 수염과 흰 머리에 푸른 옷을 입고 말 3마리가 끄는 썰매를 타고 기다란 지팡이를 지니고 다니면서 성탄절과 새해에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준다. 러시아 문화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공식적인 새해(1월 1일) 이후에도 공연과 모임, 파티가 한동안 이어지는데, 러시아정교권에서 사용하는 구력에 따른 새해(1월 13일)까지 설 분위기가 지속되기도 한다. 마치 우리 선조들이 설날에 장만한 음식을 정월 대보름 때까지 먹으면서 새해 분위기를 이어가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각 나라별로 살펴보면, 카자흐스탄의 경우 새해를 카자흐어로 “자나 질”이라고 한다. 12월 31일 밤이 되면 광장과 거리에서 공연과 축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자정에는 대규모 불꽃놀이가 이어진다. 아이들은 러시아 ‘제드 마로스’에 해당하는 ‘아야즈 아타’ 와 그의 동행 캐릭터인 ‘눈 소녀’를 기다리며 선물을 기대한다.

흥미로운 점은 카자흐스탄은 새해를 두 번 맞는다는 것인데, 우리네 춘분에 해당되는 3월 22일에 ‘나우르즈’라고 하는 전통적 새해를 다시 한번 쇤다. 이는 여타 ‘~스탄’ 국가들도 마찬가지인데, 1월 1일이 도시적, 현대적 설날이라면, ‘나우르즈’는 전통적, 공동체적 의례로 확장된 새해라는 이중 구조 속에서,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기억을 함께 이어주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새해는 ‘얀기 일’로 불리며, 해가 바뀌는 밤의 가족 만찬이 핵심이다. 카자흐스탄과 마찬가지로 트리를 장식하고, 아이들은 ‘코르 보보’와 ‘코르 키즈’가 선물을 가져다 줄 것을 기다린다. 각 가정의 안주인들은 샐러드와 디저트, 각종 요리를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여 가족들의 식탁에 올린다.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의 새해 풍경도 기본적으로는 트리와 선물, 자정 카운트다운이라는 러시아권 문화에 가깝다. 이 나라에서는 새해 준비는 집을 깨끗이 치우고 장식을 달며, 아이들과 함께 새해 트리를 꾸니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러한 준비 과정 자체가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새해를 환영하는 의식”처럼 여겨진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연말연시는 국가적 연출이 특히 두드러진다. 수도 아식하바트의 ‘국가 대표 새해 트리’ 점등식은 매년 중요한 행사로 다뤄지며, 제드 마로스와 눈 소녀가 아이들과 함께 등장해 축제 행력을 이끄는 장면이 연출된다.

여기서 새해는 “사적 공간의 가족 명절”이면서 동시에 “공적 공간의 국가 축제”이기도 하다. 중앙광장의 조명과 공연, 동화 캐릭터들의 행렬은 새해를 맞는 국민적 분위기를 한꺼번에 끌어올리는 장치다.

한편, 새해 상차림의 주역은 ‘쁠롭’(볶음밥), 만띄(만두), 샐러드류 등이다. 자정이 가까워지면 과일과 디저트, 탄산음료가 더해져 명절 분위기를 북돋운다.

다섯 나라의 겨울 새해는 모습은 비슷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각자의 문화적 선택이 겹겹이 쌓여 있다. 트리와 선물, ‘겨울 할아버지’ 캐릭터는 소련 시기부터 이어진 공통의 기억을 환기하고, 가족 명절과 지역 음식은 각 민족의 생활문화를 붙잡아 둔다. 여기에 봄의 나우루즈가 더해지며 “새해”는 단발이 아니라 계절을 관통하는 서사로 확장된다.

결국 중앙아시아에서 새해를 맞는다는 것은, 달력 한 장을 넘기는 행위를 넘어선다. 집을 정리하고, 가족과 식탁을 나누고, 아이들에게 선물을 건네며, 광장에 모여 불꽃을 올려다보는 순간들 속에서 사람들은 ‘올해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오래된 믿음을 반복해서 확인한다. 겨울 새해는 “현재의 시간”을, 봄 새해는 “뿌리 깊은 시간”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두 시간이 나란히 공존하는 곳이 바로 오늘의 중앙아시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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