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대전시가 『빵 산책 in 대전』을 발간했다. 성심당을 비롯해 지역 빵집 100여 개를 산책 코스 형태로 소개한 책자다. ‘빵의 도시’라는 정체성을 공고히 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촉진한다는 취지다.
전국 곳곳의 빵집을 찾아다니는 소위 ‘빵지 순례’ 정보는 언론·SNS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해 새벽부터 줄 서는 가게도 많다. 티맵모빌리티의 주행 데이터 분석에 의하면 여름 휴가철 맛집 상위 10곳 중 빵집은 2022년 한 곳에서 2024년 네 곳으로 늘었다.
작은 사치 즐기는 ‘립스틱 효과’
문화·사교 공간으로도 자리잡아
베이커리 제품·서비스 다양화
흥미로운 건 이런 현상이 세계적인 흐름이란 점이다. ‘빵 순례자(pastry pilgrim)’를 자처하며 유명 빵집, 이색 디저트 카페를 찾아다니는 사람이 많아져 ‘베이커리 투어(Bakery Tour)’가 부상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그랜드 뷰 리서치(Grand View Research)는 세계 베이커리 시장 규모가 2024년 5000억 달러에서 2030년 7000억 달러 수준으로 확대할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전통 방식으로 빵을 굽는 아티장(artisan) 베이커리는 2032년까지 연평균 4.8%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작은 사치 소비, 패션에서 식음료로
베이커리 붐의 배경은 여러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는데, 먼저 고물가 시대의 립스틱 효과(Lipstick effect)다. 고가품 소비가 어려운 불황기에 립스틱과 같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명품 브랜드 제품을 구매해 작은 사치를 즐기려는 현상이다. 식비 물가는 체감도가 높은 데다 팬데믹 이후 실제 상승 폭도 크다. 높아진 점심값 부담을 표현하는 신조어 ‘런치플레이션(lunchflation)’은 2022년 미국에서 등장한 후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한국도 2025년 7월 외식 물가지수가 2020년 대비 25% 상승해 전체 변동 폭인 16%를 크게 웃돈다.
기존의 외식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지자 전체 식비를 아끼면서 간편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베이커리를 찾는 소비자가 늘었다. 대신 고급스럽거나 이색적인 빵·디저트로 미식 욕구를 충족하고자 한다. 수퍼마켓에서 판매하는 1유로짜리 크루아상이 아닌 5유로대의 유명 베이커리의 크루아상을 선택하는 식이다. 얼마 전 한국·미국 등지에서는 피스타치오 크림이 특색인 고가의 두바이 초콜릿이 인기를 끌어 품귀 현상을 빚기도 했다.
딜로이트가 23개국 소비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패션·화장품 중심이었던 작은 사치 소비가 식음료 분야로 이동했고, 평균 지출액은 10달러 남짓이다.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는 부담스럽지만, 유명 베이커리의 인기 메뉴에는 기꺼이 지갑을 연다. 고소하고 달콤한 향기, 바삭하고 부드러운 감촉 등 베이커리에서의 감각 체험도 기분전환에 효과적이다. 더블린 대학의 아말리아 스캔넬(Amalia Scannell) 박사는 빵 굽는 냄새를 맡은 소비자의 89%가 기분이 좋아지고 63%는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린다고 분석했다.
세계건축상 받은 베이커리 카페도

베이커리는 식음료 매장을 넘어 문화와 사교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골목길 작은 카페부터 도시 외곽의 대형 베이커리까지 공간의 예술성을 더해 건축상을 받은 사례도 늘었다.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건축가 고성호가 설계한 베이커리 카페 세 곳은 지역성을 되살린 작품성을 인정받아 2025년 세계건축상(World Architecture Awards)을 동시에 수상해 화제를 낳았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로 유명한 제주도 글라스 하우스도 최근 베이커리 카페로 변신해 발길이 이어진다. 노년층에게는 베이커리가 간편한 식사와 친목 도모를 위한 필수 공간이다. 신한카드에 의하면 60세 이상 고객 중 이용 금액 상위 20%의 2024년 베이커리 이용 건수는 2022년 대비 30% 증가했다.


베이커리 제품과 서비스도 더욱 다양화되고 있다. 고급 원재료, 건강 친화적 요리법을 사용한 프리미엄 제품부터 독창적인 모양과 먹는 재미를 더한 이색 메뉴가 꾸준히 등장한다. 신세계백화점은 벨기에 피에르 마르콜리니(초콜릿), 프랑스 밀레앙(타르트), 일본 가리게트(밀푀유) 등 국내외 유명 브랜드를 한자리에 모은 디저트 전문관 스위트파크를 운영 중이다. 세계 곳곳의 베이커리를 둘러보고 체험하는 여행 상품도 많다. 글로벌 여행 플랫폼 겟유어가이드(Get Your Guide)는 파리 페이스트리 투어, 크루아상 베이킹 클래스, 런던 애프터눈티 버스 투어 등 다양한 체험 상품을 제공한다.
명품업체가 카페·레스토랑 여는 이유

베이커리 붐이 고물가 시대의 현상으로 조명받고 있지만, 기분 좋은 공간에서 식사와 음료를 즐기며 나누는 담소는 누구나 누리고 싶은 소소한 행복이다. 사람들이 모이고 교류하는 장소는 기업이 다양한 고객과 만나고 소통하는 접점으로도 중요성을 지닌다. 루이뷔통, 구찌, 디오르 등 명품업체를 비롯한 여러 기업이 세계 주요 도시에서 카페·레스토랑 개점을 이어가는 이유다. 최근 발렌티노는 중국 상해에서 한국의 베이커리 브랜드 버터풀앤크리머러스(Butterful & Creamorous)와 함께 팝업 행사를 진행해 주목받았다. 뉴욕의 제네시스 하우스는 한식과 전통차를 매개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한다. 지난달 오픈한 테슬라 다이너는 전기차 충전, 영화 감상과 함께 햄버거, 디저트 등 간단한 식사가 가능한 곳으로 미래 지향적 이미지를 강조한다.
최근 빵값 급등으로 소비자 부담이 커지고 일부 대형 베이커리가 절세 수단으로 운영되는 등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베이커리 창업 열풍으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SNS 노출이나 외형 성장에 급급하기보다 충성고객을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반 기업도 판매나 전시 공간이 아닌 소비자가 일상적으로 찾는 제3의 공간을 통해 브랜드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만하다.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빵과 디저트, 개성 있는 공간의 분위기는 기술로 대체하기 어려운 영역 중 하나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